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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지 May 08. 2024

전업주부? 백수? 싱크족!

우리에게는 우리를 말하는 단어가 필요해, 싱크족!

저는 전데... 뭐라 말할 게 없네요

오랜 연인과 혼인신고를 먼저 하고 결혼 준비 중이다.


혼인 신고를 먼저 하게 된 이유는, 함께 동거를 하면서 법적 보호자가 서로에게 반드시 필요한 순간들이 있기도, 결혼하는 편이 청약이나 각종 복지에서 이득이 되는 부분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냥 특별한 날에 혼인신고를 하고 싶었다. 2022년 2월 22일에 신고를 했다. 둘만 있는 날이었다.)


그 전에도 백수인 적이 있었지만, 혼인 신고를 하며 이제 '그냥 백수'가 아니라는 느낌이 가장 크게 들었다.

일단 직업을 묻는 질문에 '백수' 이외에 '전업주부'라고 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물론 이걸 '취집(취직+시집)'했다고 혐오스러워하는 말들을 볼 때면 그냥 스스로 존재가 사라지고 싶어지기도 한다. 가능성은, 없는 거구나, 어떤 식으로도, 라는 생각 때문이다.


'전업주부'라는 말은 오염된 지 오래라 썩 마음에 들지는 않고 경쾌하지도 않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게 왜 그래야 하는 건가 싶은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자취만 해봐도 우리는 모두 알지 않는가. 집에서 해야할 일이 대체 얼마나 많은지, 티도 잘 나지 않는 일들이 일상을 유지하는 데에 얼마나 큰 공헌이 필요한 지 말이다.


그 많은 먼지와 머리카락은 대체 지치지도 않고 어디서 생성되는지, 철인의 심장으로 매일을 쓸고 닦아야하는 그 단단하고도 끈질김을. 이런 말을 오염시키는 건 어떤 마음에서 나온 칼날인가.




한껏 쪼그라들어있는 시절의 나는 해외여행 나갈 때 적는 직업란만 봐도 마음이 할퀴어졌다. 'student'라고 적는 데에도 (스스로 붙인) 한계가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의 내가 'House Wife'라고 적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그냥 'Freelancer'라고 쓴다. 크나 큰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말이다. 이게 딱히 문제된 적은 없는데, 사실 나에 대해 뭐라고 정의해야 할 지 아직도 모르겠기 때문에 이렇게 적는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확실한 건, 전업주부라는 말로는 나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가사노동을 전담하며 가족들의 살림을 책임지는 사람'을 전업주부라고 한다면,

나는 전업주부가 아니다.


당연히 반려인은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고, 나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내가 집안일을 (거의 대부분) 하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이 내가 집안일을 '담당'했기 때문에 전적으로 나에게 책임이 있다는 합의를 하고 지내는 것은 아니다. '전업주부'이기 때문에 집안일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집에 자주 있는 사람이 집안을 돌보게 되는 것이다. 선후 관계가 다르다.




그렇다면 그냥 '백수'라고 하면 내 상황에 맞는 말인가?

전업 주부 보다는 좀 더 가까운 느낌이 든다.

'직업이 없는 상태'를 뜻하는 게 백수라면 말이다.


하지만 결혼 상대와 공동의 경제생활을 분명하게 하고 있고,

나와 반려인 두명을 가족의 구성원으로 미래를 함께 구체적으로 그리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단순히 '백수'라는 말로 설명되기 어렵다.


특히나 우리나라에서 '백수'는 취업을 준비하는 중이라는 과정을 내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나의 상황을 정확히 설명하기엔 어려움이 따른다. 나는 분명하게 취업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언어가 필요하다.

나의 상태를 정확히 설명할 수 있는, 나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연대할 수 있는 단어가 필요하다.


'딩크족'만 봐도 그렇다.

"쟤들은 둘 다 돈 벌면서 애도 안 낳는대"라는 숙덕거림의 대상이 되던 특이한 사람들에게 단어가 생겼다. 

매번 번거롭게 "저희 부부는 둘 다 직장을 다니는데, 아이 생각은 없습니다"라는 묘하게 작아지는 변명을 할 필요 없이 "저희는 딩크족으로 살려고요"라고 말하면 되는 거다.


보다 섬세하고 세밀하게 사람을 표현하는 단어가 생기면 좋겠다.

다양한 해시태그로 사람들이 뭉치고 스스로를 표현하게 된 것처럼,

'#싱크족'이라는 해시태그가 생기면 좋겠다.


혼자라고 느낄 때 무한한 구멍 속에 혼자 남겨진 듯한 공허함을 안다.

그럴 때 사람은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다. 한숨이라도 조금 크게 쉬면 훅 빨려들어가 존재 자체가 사라질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한다. 숨도 크게 못 쉬면서, 크게 기지개 한번도 못 펴면서 살고 싶지 않다.

이런 마음을 느낄 비슷한 사람들에게 아주 작은 산소라도 불어넣어주고 싶다.


단 한명의 사람이라도, 나를 이해하고 나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느끼면

나는 천천하지만 분명하게 움직여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전업주부라는 말에도, 백수라는 말에도

어느 구석에서도 나를 표현하는 말이 없이 밀어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이들에게

바로 여기로 모여보자고 말하고 싶다.


싱크족, 이 단어 어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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