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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림의 왕 수니 May 07. 2024

엄마, 해가 넘어졌어.

봄날의 석양을 본 적이 있나요?

24년 3월 어느 날.

20개월 아이와 맞는 두 번째 봄날, 늦은 오후.

여느 때처럼 육아에 매진 중인 분주한 하루였다.


하지만 베란다 너머의 경치는 아주 오랜만에 여느 때 같지 않았다.

봄날의 방해꾼인 미세먼지와 황사가 없는 맑은 공기와 더불어 예쁜 구름이 군데군데 어우러져

햇빛이 또렷하게 보이는, 마치 한 폭의 풍경화 같은 모습이었다.


이런 날은 창문을 활짝 열어 상쾌한 바람과 따스한 햇빛의 아름다운 조화를 온몸으로 여유롭게 느끼는 것은 나의 오래된 로망이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난 후로는 아쉽게도 대부분의 시간을 커튼뷰와 함께 보내고 있다.


그 이유는 날이 좋으면, 아이가 햇빛에 눈이 상하거나 얼굴이 그을리지 않을까

날이 추우면, 아이가 찬 바람에 감기에 걸리진 않을까 하는ㅡ 바로 그 '-까봐' 병 때문이다.


그날도 발동한 병은 재빨리 커튼 끝자락을 움켜쥐게 했고,

베란다에서 천진하게 놀고 있던 아이에게 황급히 말을 전하게 했다.


"쟈니야, 오늘 햇빛이 너무 강하네. 눈 상하니까 거실안쪽으로 어서 들어와."


하지만 그런 엄마의 마음보다는 밖의 모습들이 먼저 눈에 보이는 나이이기에

치려는 커튼을 작은 몸으로 힘껏 막으며, 창문에 더욱더 매미처럼 찰싹 붙었다.

그러더니 놀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어? 어? 엄마?!"

"응?"

"해가 넘어졌어. 흐잉.. 어떡해?"


"어머! 그렇게 보였어? 그러게~! 해가 아까는 위쪽에 있었는데, 어느새 저기 아래로 내려갔네?

해가 집에 가려다가 넘어졌나 봐!"

"응, 깜짝 놀랐어."

"그랬구나. 엄마도 깜짝 놀랐어! 그런데 괜찮을 거야. 해가 집에 갔다가, 내일 다시 짠-하고 나타날 거야.

우리도 저녁 먹고, 코~ 자고 일어나서 내일 아침에 해도 잘 일어났나 인사해 보자~^^"

"응~!"




출산 이후, 모든 신경은 아이에게만 쓰었고,

이 때문에 커피 한잔과 함께 창 밖을 바라보는 ㅡ

그런 작은 여유가 사라졌음이 때때로 나를 우울감과 무기력함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그날을 시작으로 해가 눈부시게 빛나는 날이면, 우리는 ‘해가 넘어지는 모습'을 잠깐씩 바라본다.

함께이기에 배가 된 따스한 석양을 느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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