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by 이두

“비 와요, 비”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경비실 창문을 두들기며 청소하시는 김여사가 말을 건네왔다. 박물관 경비인 나는 서둘러 밖으로 나가 박물관 앞마당에 놓인 놀이기구를 거두어들였다. 놀이기구에 비를 맞지 않게 하는 것이 나의 주된 임무 중의 한가지였다. 올해는 장마가 띄엄띄엄 몰려왔다. 서울과 중부지방에는 많은 비가 온다고 해도 이곳 지방에는 십여 일 전에 한번 온 후 이번이 두 번째다,


나이 들어 다니던 공무원을 퇴직하고 이곳 박물관에 경비로 근무하게 된 지도 거의 보름이 다 되어 간다. 어디인들 사람 사는 곳이 아니랴. 새로운 곳에는 새로운 곳의 규칙이 있다. 나는 이곳의 규칙에 익숙해져 나갈 것이다.


비 오는 날의 박물관은 한산하다. 나는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밖을 본다, 유리창 밖 나뭇가지들이 흔들린다. 배롱나무 꽃 잎이 붉다. 배롱나무 마젠타 빛 꽃잎이 빗속에 떨어진다. 나는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먼 과거를 회상한다. 비 오는 날


그것은 내가 국민학교, 아니 지금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일이었다. 그날도 비나 내렸다. 비 오는 그날 아침에 나는 어깨에 메는 가방을 메고 우산을 들고 할교에 간다고 길을 나섰다. 길은 멀었다. 학교까지는 대략 8킬로미터 남짓되었다. 4킬로라면 대략 20리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원래 우리 집은 정릉천 하천변에 살았다. 하지만 무허가 건물 일제 정비로 집은 뜯겨나갔고 대신 사람들은 천호동에 임시 막사를 배정받아 생활하였다. 종암동에서 천호동까지 이사를 해야 했고, 그것도 제대로 된 집도 아니고 천막에 불과한 집을 내어 준다고 하니 아버지는 어린 자녀들과 그런 집에서 산다는 것이 싫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안암동에 셋집을 얻어서 살기로 했다. 지금도 생각나는데 그 안암동의 셋집으로 이사를 가기 위해 리어카에 짐들을 싣고 밀고 지금의 고려대 앞을 지나던 생각이 난다. 그것이 벌써 50년 전의 일이다.


무허가 건물이 헐리고 그곳에 시민아파트가 지어지는데 그 아파트를 짓는 대로 무허가 집에 살던 사람들에게 집을 한 채씩 주길 했다. 하여서 그동안만이라도 참고 안암동에 살러 가게 된 것이다.


월세집은 안암동 개운사 옆에 있었다. 개운사에는 당시 큰 연못이 있었고, 그곳에는 금빛 잉어들이 뛰어놀고 왕 잠자리들이 날아들었다.


비 오는 날의 20리 길을 걸어가는 일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안암동에서 출발하여 고려대학교 정문까지 나와야 했고, 그곳에서 다시 대로변을 타고 걸어 숭례초등학교까지 또 한 10리 길이었었다.


그때 우산을 들었는데, 지금과 같이 양산도 아니고, 비닐우산이었다. 비닐우산은 비닐로 만든 우산이다. 가운데의 중앙은 대나무로 만들었고, 우산살도 대나무를 쪼개서 만들었다. 우산을 펴고 하는 부분에는 철사를 구부려 우산이 접히지 않도록 지지해 준다, 옛날에는 우산 없이 길을 나섰다가 저녁때쯤 소나기가 오면 이 비닐우산을 팔러 다니는 사람들이 있었다. 서울 지하철이 열리던 1970년 대만 해도 이런 비닐우산을 비 오는 날 지하철 입구에서 많이들 팔았다.


하지만 이 비닐우산은 지금의 우산처럼 튼튼하지도 않았고, 비를 잘 막아주지도 않는다. 그것 하나만 들고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 비 오는 날 20리 길을 걸어 학교에 가기,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길을 나설 때 어머니는 단단히 옷깃을 여며주며 잘 다녀오라고 했다, 나는 매번 가는 길이니 이번에도 잘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방안에는 어머니와 동생이 따신 방 안에서 나를 배웅했다.


하지만 길을 나서 얼마 가지 않아, 그것이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 금방 알게 되었다. 비는 쏟아져 내리고 비닐우산 위로 사납게 퍼부었다. 어린 나는 우산대롤 꼭 잡고 한 발 한 발 디디며 앞으로 나아갔다. 비닐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처량하게 들렸다. 사람들은 종종걸음으로 달려갔고, 자동차들의 바퀴에서는 비에 젖은 노면과 스치며 세에엑, 세에엑 하는 소리를 냈다. 이제 겨우 등굣길에 올랐는데 나는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그럴수록 우산대를 더욱 꽉 잡았다. 하지만 바람이 문제였다. 바람이 불어왔다. 처음에는 그런대로 잘 바티는 듯했다. 하지만 바람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급기야는 우산이 휘청휘청 댔다. 이런 상태로는 학교에 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때 지나가는 차에서 흙탕물을 내 몸 쪽으로 쏟아부었다. 간신히 피한다고 피했지만 바지는 이미 아랫단이 다 젖어 버렸다. 빗물에 오른쪽 어깨며 왼쪽 어깨도 이미 다 젖어 있었다. 울고 싶었다. 하지만 울면 안 된다고 마음을 다잡고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아직 고려대학교 정문도 나오지 않았다. 정문까지 만이라도 가면 반이라도 가는 셈이었는데 그것이 안된 것이다. 나무들은 바람에 휘날려 휘청휘청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검은 구름이 하늘에 가득했다. 다시 머리를 내리고 종종걸음항 앞으로 나갔다.


그때 한줄기 바람이 밀려와 우산을 뒤집어 버렸다. 우산은 뒤로 뒤집어 진체 바로 되지 않았다. 머리 위로는 비가 쏟아져왔다. 겨우 우산을 접었다 다시 피니 그제야 우산은 바로 펴졌다. 비는 계속 내렸다, 하지만 이미 나는 학교까지 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눈물이 나오고,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할 수없이 온길을 되돌아 집으로 향해갔다.


도저히 학교에 갈 수가 없어요. 그렇게 생각하자 나는 패닉 상태에 빠져들었다. 엉엉 울면서 집으로 되돌아갔다, 이것이 아마도 내가 인생에서 처음 맞이했던 시련인 것 같았다. 비는 쏟아져내리고 길은 멀고, 도와줄 사람은 보이지 않는 상황, 이후 세상을 살면서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때의 어려움이 지금껏 가슴에 남아있다,


이러한 어려움은 많은 경우 되풀이되었다, 군대시절에도 같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때는 훈련을 나가 아영지에 텐트를 치고 잠을 자고 있었다. 전날 텐트를 치고 나와 한조인 선임은 어디서 구했는지, 수통에 담긴 소주를 마셨다. 그리고 짐은 텐트 안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었다, 캄캄한 밤에 보이지도 않는 군용 텐트 안이라 물건들은 내일 해가 밝는 대로 치우기로 하고 우리들은 침낭 속에 들어가 잠이 들었다. 하지만 웬걸 캄캄한 새벽 4시나 되었을까, 전원 완전군장 태세로 집합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그 캄캄한 밤중에 널브러진 물건들을 정리하여 배낭에 정리하여 싸기, 그것도 남은 시간은 20분뿐이었다. 원래는 이곳에서 아침까지 유숙하기로 했다가 명령이 바뀌어 새벽 4시에 출발하여야 한다고 한 사실이다. 이때도 나는 그 낭패감을 맛보아야 했다. 선임은 하나라도 챙기지 못하고 버리고 가면 부대에 귀대하여 각오하라고 엄포를 놓았다. 캄캄한 밤에 라이터를 켜가며 겨우겨우 군장을 싸서 집합을 했다,


근대시절의 어려움은 초등학교 1학년이 맞이한 그 비 오는 날의 어려움보다 쉬웠다, 그때는 울면서 집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집의 어두운 부엌을 지나 방문을 열자 어머니는 동생을 재우고 있었다. 비에 흠뻑 젖는 나를 붙잡고 말했다


“아이고, 야야, 이게 웬일이고, 이렇게 비가 오는데 너를 홀로 보낸 내가 잘못이다,”

그렇게 어머는 울고 있는 나를 달랬다, 겨우겨우 진정한 나를 어머니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동생을 포대기로 엎고 나는 앞세워 다시 학교에 가자고 했다


나는 그때 어머니의 든든한 지원 아래 학교를 향해 갔다. 비가 왔지만 어머니는 나에게 우산 한 개를 들려주었고, 어머니도 우산 하나는 쓰고 우리는 그렇게 학교에 갔다. 그렇게 비 오는 날 하루쯤 쉬다거나, 결석한다 해도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는 듯했지만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학교까지 갔다. 나는 그때 머니의 비호 아래 무사히 학교까지 갈 수 있었다.


학교에 가니 이미 수업이 시작했다, 나는 겨우 교실에 들어가 앉았다. 유리창 밖에 서계신 어머니의 모습이 그렇게 든든하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지금도 그날 교과서에 실려있는 그림이 생각난다, 50년도 더 지난 과거 그 1학년 책에 실려있던 그림이 생각난다. 그것은 무지개 그림이었다, 학생들은 그 무지개에 색칠을 해야 했던 것이다. 어머니가 창 밖에 서 계신 그 든든한 풍경 위로 무지개가 떠 있었다. 밖은 비도 그리고 해님이 고개를 내밀었다,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있는 그 짧은 순간에 더올린 생각이다.


여기도 비가 그치는가 보다. 청소하시는 여사님이 어깨들 툭치며 말씀하신다.


“뭐 하세요, 여기 옥수수 좀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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