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렸을 때 이야기이다. 그때의 아이들은 다양한 곳으로 원족(遠足)을 갔다. 내가 종암동에 살았는데, 예를 들면 퇴계원으로 간다던가 중랑천으로 수영을 하러 가는 일이 흔했다. 퇴계원까지 가는 길은 생각 같아서는 대단히 먼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때의 형들과 함께 가고 싶다는 생각은 일종의 모험에 동참하는 기분이었다.
“나도 데려가줘.....”
하면 형들은 대부분 난색을 표했다.
“자식아, 너는 너무 어려서 잘 걷지도 못하는데 거기 까기 가기보다는 그냥 동네에서 놀아.....”
그러고 어떻해서든지 나를 떼어 놓고 가려고 했다. 그럴 즈음 형들은 퇴계원에 가서 개구리 뒷다리 구워 먹은 이야기 등 여러 가지 신기한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 뱃속의 회가 동한 나는 칭얼대고 떼를 썼다. 그러다가 그 형들은 나를 떼어놓고 서로 교묘하게 흩어졌다. 모종의 곳에서 만나 그 퇴계원의 먼 곳까지 원족을 갔다.
중랑천으로 수영을 하러 간 여름은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이나 2학년 경으로 생각된다. 자세한 나이는 생각나지 않는다. 종암동에서 중랑천까지 지금 생각해 보아도 대략 4에서 5킬로미터의 거리였다. 그런데 그날은 나도 따라가게 되었다. 나와 친하게 지내던 친구 하나와 여러 형들과 같이 가게 되었다. 버스를 탔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하긴 뭐 버스 편도 제대로 없던 시절인지라 아마도 걸어서 갔지 않았을까 싶다.
그때는 대략 60년대 후반으로 서울이 아직도 발전되지 않았던 시기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기였다. 그래서 그런지 아직도 물은 맑았고 여름이면 수영도 가능했다. 그렇게 깨끗했다. 그러니까 근방에 사는 아이들의 여름 나기 물놀이 코스 중의 하나가 이 중랑천 투어였던 셈이다.
이때는 나보다 두 살 어린 형과 같이 갔다. 그래서 나의 기억과 형의 기억이 엇갈리고 하여 결합되어 기억을 재생하고 있는 것이다.
나와 내 친구 한 놈은 옷을 홀랑 벗어 풀숲 아래에 보관하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때는 이렇게 아무것도 입지 않고 물속에 뛰어드는 일이 흔했다. 그런대로 깨끗했고 여기저기에 물놀이하는 사람도 있고 낚시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와 친구 놈은 신나게 얕은 물가에서 물장구를 치고 놀았다. 형들은 형들대로 또 옆에서 놀았다. 물은 시원했고 얼마 전에 비가 와서 그런지 수량도 많았다.
그런데 같이 왔던 친구 놈이 옆에서 물속에서 놀다가 소리 질렀다.
“어어....”
그 소리에 돌아다보니 깊은 물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듯했다. 그때 몸을 돌려 기슭으로 나왔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상한 호기심으로 친구 놈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나 역시 깊은 물속으로 빠져들어가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때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올려다보는 하늘은 물속에 비쳐 코발트 빛을 띠고 있었다. 나는 한없이 밑으로 밑으로 빠져 내려가는 중이었다. 하늘 모양만 보이는 것이 정상이겠으나 나는 작은 몸뚱이 전체가 그 묵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듯한 영상 전체가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었다.
한없이 평화롭다고나 할까, 투명하게 비친 그 코발트 빛의 하늘 아래서 모든 소리는 점점 멀어져 갔다. 일종의 죽음의 순간이라고 해야 할 것 같았다. 고요하고 투명한 속으로 끝없이 떨어져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도 나는 아마도 내가 죽을 때쯤에는 그 물속에서 올려다보는 그 하늘빛이 되살아 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내가 죽음과 가장 가깝게 다가간 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 뒤의 생각은 나지 않는다. 나는 죽은 것일까?
형의 기억에 의하면 그때 나와 친구 놈이 자맥질을 하다가 물속으로 몇 번 오르내리는 것을 본 근처 낚시꾼이 뛰어들어 우리를 구했다고 한다. 친구 놈은 곧 깨어났는데 나는 인공호흡까지 시켜서야 겨우 숨이 돌아왔다고 했다. 형은 그때의 기억을 말하며 식겁했다고 한다. 어머니에게 집에 가서 들을 꾸중이 생각나서 오금이 저려왔다고 했다.
죽지 않을 놈은 어떻게 하든 죽지 않는다. 거의 죽음 직전까지 갔으나 이렇게 하여 나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하도 어렸을 때라 그 나를 구해준 낚시꾼의 얼굴도 인상착의도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형의 기억에 의하면 그 낚시꾼을 고맙게도 우리들은 택시를 태워 집으로 보내 주었다고 했다. 죽음에서 살아왔는데 택시까지 타고 금의 환향하는 형국이었다.
그해 여름, 죽음과 가장 가까이 다가가 바라본 하늘은 코발트 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