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비가 퍼붓다 수굿하다. 나는 아들이 싸둔 쓰레기봉투를 들고 아파트 현관을 나섰다. 비가 좀 덜 오니 쓰레기도 버리고 산책도 하려는 요량이다. 우산 하나를 챙긴다. 엘리베이터는 더디 왔다. 승강대 앞에서 폰을 들여다본다. 조금의 시간도 인터넷과 연결되지 않으면 불안이 찾아왔다. 인터넷에는 별 것이 없었다. 스레드를 펼쳐보다가 쨉 싸게 유튜브 쇼츠를 본다. 20초짜리 쇼츠를 들여다보니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1층을 눌렀다.
1층 현관의 차단문이 열렸다. 어둠 속으로 비가 약하게 내리는 듯했다. 나는 서둘러 쓰레기 하치장으로 향한다. 하치장은 어둡다. 두 군데로 나누어져 있다. 한 곳은 종이와 각종 플라스틱과 공병, 깡통 등을 모으는 곳이고 다른 한 곳은 쓰레기봉투에 담긴 쓰레기를 모으는 큰 통과 음식물을 모으는 음식물 통이 있다. 음식물 통은 버리는 양에 따라 카드 금액이 차감되는 형식이다. 그래도 음식물을 쓰레기봉투에 버리지 않아 가는 가끔 애용한다.
쓰레기를 모으는 공간으로 들어서자 시간제한 등이 희미하게 켜졌다. 나는 큰 통에 내 쓰레기봉투를 던졌다. 이미 많은 쓰레기봉투들이 산 같이 통 위에 쌓여 있었다. 사람들은 휴일이면 치킨과 맥주를 먹었다. 쓰레기에서 그 냄새가 났다.
고개를 들고 쓰레기 하치장을 나오자 비가 모자 위로 떨어지며 뚜덕뚜덕하는 소리를 낸다. 하늘은 어두컴컴하다. 비가 계속 올 것인가? 아니면 조금 그칠 것인가? 집에서 들으니 천둥 치는 소리, 번개 치는 환한 빛이 유리창으로 전해져 왔었다. 우산을 받쳐 들고 빗 속으로 나섰다. 우산에 툭툭하고 소리가 들렸다.
나는 우산을 들어 늘어선 아파트들을 바라다보았다. 20여 층의 건물들이 줄지어 서있고 그 사이를 소방 전용 도로로 혹은 사이사이의 길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 사이사이로 나무들이 늘어서 있었다. 대왕참나무의 큰 잎으로 빗가 떨어지며 툭툭하고 소리를 낸다. 나는 후문을 지났다. 저수지를 한 바퀴 돌 생각이었지만 언제 또 큰 비가 쏟아져 내릴지 몰라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도는 것으로 마음을 정했다.
오늘 저녁을 그래도 성공적인 저녁이었다. 두 아이와 내가 머리를 맞대고 식사를 무사히 끝마치었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아이와 식사를 하는 것이 일주일에 이 일요일 오후 단 한 차례뿐이었다. 우선 아들은 하루 한 끼 밖에는 식사하지 않았다. 그 한 끼도 회사에서 하는 식사로 대신한다. 아들은 현재 스물여덟이다. 딸아이는 현재 7급 고용노동부 공무원인데 일주일 내내 야근이다. 그래서 같이 마주하는 시간이 주말인데, 그 마저도 또 회사에 나가 잔업을 하다 보면 저녁시간을 넘기기 일쑤이다. 즉 일주일에 하루도 같이 식사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오늘은 딸아이에게 일찍 오라고 신신당부했다.
딸아이가 집에 들어오자 나는 마트에서 사 온 양념된 돼지고기를 프라이팬에 넣고 여기에 양파 하나를 썰어 넣고 파 한줄기를 썰어 넣었다. 다른 화로 구멍에는 그제 만들어 놓은 카레를 덥혔다. 물을 조금 더 붓고 끓였다. 제육볶음이 완성되자 그 화로에는 어제 만들어 놓은 콩나물 국을 올렸다.
아이들은 제육볶음과 콩나물 국이 맛이 있다고 했다. 이렇게 일주일에 하루라도 식사를 하다 보면 어떤 일체감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 마저도 없다면 가족 간에 냉랭함을 어찌할 수 그래서 기를 쓰고 요리를 하는지도 모른다. 하늘의 별이 된 아내는 이렇게 요리하는 내 모습을 보면 아마도 웃을 것이다. 요리를 싫어하던 내가 이렇게 변할 줄은 몰랐으리라
저수지로 가는 길 대신 아파트 단지를 일주하는 코스를 잡았다. 아스팔트 2차선의 길이 뚫려 있고 그 뒤로 거대한 아파트 단지 1400여 세대의 아파트가 자리하고 있다. 도로에는 가끔 차들이 빗소리의 마찰음을 내고 지나쳤다. 도로 지나 있는 숲에서 비가 떨어지는 소리가 둔탁하니 울렸왔다. 아파트의 담벼락을 끼고도는 길은 보도블록이 잘 깔려 있었다. 나는 우산을 받쳐 들고 그 어두운 길을 걸었다. 사람들은 없다.
서른둘, 정확히는 31세 6개월에 접어드는 딸아이는 결혼할 생각이 없다. 연애를 하는 눈치도 아니다. 지 엄마만 살아있어도 여기 저리 중매자리라던가 하다못해 결혼에 대해 압박을 했었으리라. 하지만 아빠로서는 이도저도 못하고 그저 지켜보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공무원이 그렇게 일이 많은 지 몰랐다. 일주일 내내 야근을 하고 주말에 이틀을 또 나가서 일한다. 근로 감독관, 우체국을 정년 한 나로서는 우체국이야 말로 그야말로 칼퇴근을 하는 좋은 직장임을 깨닫는다.
차가 드나드는 후문을 지난다. 후문 경비초소에 경비원 아저씨가 희미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이윽고 언덕길, 정문으로 향하는 길이다. 한 300미터를 걸어 올랐다. 아파트에 딸린 상가 건물들 세탁소가 있고, 미용실이 있고, 김밥집이 있다. 일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모두 캄캄하다.
비는 조금씩 더 거세지기 시작한다. 뱃속도 걷는 것에 비례해 편안해진다. 저녁을 먹고 걷는 습관은 좋은 습관이다. 이 습관을 하는 근 서너 달 계속해오고 있다.
캄캄하다. 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있다. 발 뒤꿈치로 물이 튕겨 허벅지가 젖어온다. 이윽고 정문을 지난다. 차단기가 내려서 있는 정문으로 차들이 들어오고 나간다. 나는 가끔 이용하는 동네 마트와 고깃집을 한번 쓱 하고 본다. 동네마트에서 주로 사는 것은 주로 상추이다. 대략 가격은 1350원. 고깃집에서는 양념된 제육볶음 돼지고기를 산다. 대략 400그람 6천 원어치의 고기를 사다가 프라이 팬에 볶으면 3인 가족이 충분히 먹는다.
비는 점점 더 많이 오기 시작하다. 나는 물웅덩이를 조심스레 피하며 걷는다. 집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저벅저벅 물웅덩이를 밟는 내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이윽고 집 앞이다. 나는 우산을 털며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리고 조용히 외워본다.
지금 저 어둠 뒤로 무엇이 오고 있는가, 그것이 궁금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절대로 알 수 없다.
검은 하늘에서 비가 쏟아져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