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플란트를 했다. 발치한 후 6개월 만이다. 발치할 때를 기억한다. 득과 실. 어느 쪽이 큰가? 발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생 이를 보존한다는 명목상의 이점(利點)이 있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안으로는 점점 곪아가는 형국이다. 발치를 하면 더 이상 곪아가는 것이 멎는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곪아가는 형국이 계속 그 앞의 둘째 어금니에도 영향을 미쳐 그 환부를 넓혀간다는 문제가 있었다. 마지막 어금니는 아래 잇몸이 다 녹아내리고 있다. 그래서 몸이 안 좋거나 하면 불시에 엄습하는 치통은 거의 참을 수가 없었다. 타이레놀로 버티기, 치과에 가도 별 뾰족한 수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깊숙한 곳까지 스케일링을 해서 치석들을 긁어낸다고 해도 녹아가는 잇몸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저 그놈의 통증이 멈추고 수굿하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타이레놀이라는 약도 좋을 일가 없다. 아무리 안전한 약이라고 한들 약은 독이지 않은가?
더욱이 맨 안쪽 어금니 그 앞의 어금니도 점점 안으로 곪아가기 시작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었다. 일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 맨 마지막 어금니를 발치함으로써 그 앞의 어금니에 시작된 염증을 줄일 수 있을 거라는 의사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발치한 왼쪽 어금니는 사실 15년부터 빼자는 말이 있던 이빨이었다. 하지만 어디선가 주워들은 말, 발치를 하기보다는 최대한 살릴 수 있다면 살려서 쓰는 것이 임플란트보다는 백배가 좋다는 그 말에 따라 울산 최고라는 치과에 가서 그 이빨을 살렸다. 왼쪽 턱이 다 붓고 엄청난 치통에 시달리다가 울산 모 치과에서 어금니 한복판에 구멍을 뚫고 그 안에 항생제를 넣어 이빨을 살렸다. 그래 놓으니 매번 몸이 안 좋을 때마다 그 이빨이 아픈 것은 당연 지사였다. 그래서 과감하게 뺐다.
오늘은 그 이빨의 임플란트를 하는 날이었다. 비용은 150만 원이라고 했다. 오스템 임플란트로 하는 것으로 했다. 물론 좀 더 싼 임플란트도 있다고 110만 원에도 가능한 임플란트도 있었다. 하지만 최대한 범용, 다른 어떤 치과에 가서라도 치료가 가능한 그 범용성을 택하기로 했다. 150만 원이면 치과에서도 그리 남는 돈은 없다는 말을 들었다. 임플란트라고 하는 것이 여러 번의 사후 치료와 진행 중의 치료 등이 필요한 과정이라고 했다. 당연히 치과의 선별에서는 오랫동안 유지하는 치과가 중요했다. 1~2 년 만에 사라질 치과라면 일종의 애프터서비스 면에서 불리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다행히 내가 다니는 이 치과는 잇몸 질환으로 고생할 때마다 도움을 받은 단골 10년 이상의 병원이어서 신뢰가 갔다. 지금 당장 발치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는 이를 근 4~5년간 유지하며 지켜주었다. 그래서 조금 비용이 더 든다고 해도 이 치과에서 임플란트를 하기로 했다. 의사도 싹싹하고 환자에게 설명도 잘하는 의사여서 믿음이 갔다.
수술은 1층에서 진행하였다. 수술실은 2층의 치과와 같이 치과용 의자가 있고 의자 앞에는 모니터가 달려 있었다. 왼쪽 옆에는 입안을 헹구어 뱉을 수 있는 배수대가 있었다. 나는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신경이 곤두섰다. 간호사에게 물었다.
“오늘 턱뼈에 구멍도 뚫고 그 뚫는 자리에 임플란트도 심고 하나요”
“물론이지요.”
“아픕니까? 예를 들면 턱뼈를 갈아낼 때 통증이 있나요”
“통증은 없어요. 마취를 하기 때문에 그래요. 단지 마취할 때 바늘에 찔리는 통증은 있을 거예요”
얼굴에 마스크처럼 투명한 플라스틱 보호대 장구를 착용한 치위생사는 그렇게 대답했다. 나는 그래도 신경이 곤두섰다.
이윽고 의사가 명랑한 소리로 인사를 하면서 다가왔다. 그리고 오늘 할 프로세스 과정을 설명했다. 턱에 구멍을 낼 것이고 지주대를 심을 것이다. 물론 현재 잇몸 뼈가 부족한 상태여서 잇몸 뼈를 추가로 심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잇몸 뼈 아래로 흐르는 신경을 최대한 다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조금이라도 잇몸 통증이 느껴지면 바로 말해야 한다고 주의를 주었다. 임플란트 할 때 턱뼈 아래로 흐르는 신경 문제는 이미 여러 유튜브 방송을 통해 들었던 사안이라 나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의사가 마취를 시작했다. 부분 마취였다. 바늘을 어금니 있던 자리 앞뒤 그리고 안쪽까지 골고루 찔렀다. 처음에는 따끔 하였지만 그마저도 마취가 작동하여서 그런지 갈수록 바늘의 따끔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윽고 미리 본을 떠 놓는 플라스틱 이빨 모형을 내 이빨 위에 씌웠다. 이것은 정확히 절개할 지점과 구멍을 뚫을 자리를 표시하기 위해 행하는 것이었다.
이윽고 쓱쓱 하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 드릴 소리가 들렸다. 윙윙 그러나 아프지 않았다. 마치 제삼자의 이빨에 구멍을 뚫는 듯 나는 그것의 소리를 들었다. 물론 얼굴 전체에는 입만 남겨놓은 푸른 천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돌려 넣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임플란트 지주대를 집어넣는 듯했다. 그러다가 의사는 4.5 줘봐 하다가 다시 5.5도 괜찮겠다고 말했다. 아마도 임플란트의 높이가 5.5센티를 지칭하는 듯했다. 이윽고 의사가 다시 무언가를 돌려대는 느낌이 들었다. 지주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시술이 끝났다. 의사는 잘 마무리되었다고 했다. 솜 한 덩이를 입에 물고 있으라고 했다. 그러고는 끝이었다. 임플란트 식립이 잘 마무리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아래 수납에서 오늘 지불할 돈 40만 원을 수납했다. 집에 와서 물고 있던 솜마저 빼버리고 약을 먹었다. 통증도 없다. 잇몸에서 피가 나는 것도 멈추었다.
그리고 나는 형에게 전화를 했다. 형은 임플란트를 몇 개나 했냐고 물었다. 형은 1개의 오른쪽 어금니 임플란트를 하고 있다고 했다. 내가 제차 물었다. 아래 앞니도 부러져 있지 않냐고 물었다. 그 아래쪽 앞니는 아주 어렸을 때 형이 동네 양아치에게 맞아 이빨이 부러진 사건이었다. 무려 50년도 더 전의 일이었다.
“그건 브리지로 다른 이빨에 걸어 사용하고 있어 그런데 위의 앞니가 친구 놈이 때려 빠졌다고, 근데 치과 의사가 빼는 게 좋겠다고 해서 뺐는데 치료 도중 다른 앞니 3개도 빼야 하는 상황이 발생해 모두 뺐어”
그것은 치과의사 잘못이니 그 의사가 물어주고 임플란트를 해 주던지 해야 하는 것은 아니냐고 내가 물었다. 형은 우리 같은 약자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냐고 했다. 내가 말했다.
“그렇게 매번 당하고만 사니 이빨이 그 모양이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빨이란 삶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우여곡절을 이빨은 간직하고 있다는 생각, 그리고 그 생각은 부친의 틀니로 옮겨갔다. 부친이 돌아가신 지는 이미 25년도 더 지난 일이다.
“아버지, 이빨 뺀 거 들었어? “
내가 물었다.
“괌도에서 풍치가 생겨 치과에 갔더니 이빨을 빼라고 한다고 해서 이빨을 7~8개를 한 번에 빼버렸다고 했잖아” 아버지는 미국 괌 섬에 목수라는 노동자로 일하러 갔었다. 1970년대 이야기이다. 그러나 치과에서는 무조건 빼라는 말을 들어 그렇게 해버렸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을 때 살릴 수도 있는 치아가 아닌가 해서 형에게 말했다. 그러자 형이 이렇게 말했다.
“몰라, 내가 듣기는 괌도의 치과는 미국 치과의사라 비용이 많이 들었다고, 그래서 충치로 병원에 갔는데 엄청난 비용을 불러 그냥 되돌아왔다고 들었어, 니 이야기를 내 기억 속에 저장해 놓을 께. 근데 아버지가 그 충치를 어떻게 했는지 알아? 집에 와서 뻰찌로 이빨을 잡고 뽑았다고 하더라”
나는 가히 결단력 있던 부친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이빨이란 어쩌면 사람의 나이테와 같은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