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 재미

by 이두

“당근”


하고 휴대폰이 알람을 알려왔다. 드디어 걸렸구나. 누군가가 내가 올린 중고 물건에 입질을 하는 모양이다. 나는 기쁜 마음에 휴대폰을 열어 보았다. 벌써 여러 건의 문자가 와 있었다. 왜 문자들을 놓쳤을까?


전용면적 74제곱미터의 아파트에 입주한 지도 벌써 2년째로 접어들고 있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여러 가지 쓸데없는 물건들이 구석구석 쌓여가고 있었다. 출입구 앞에 있는 작은 창고 용도의 방에는 딸아이가 고양이 물품을 위주로 보관하고 있었다. 하지만 제대로 치울 생각은 안 하고 그대로 물건이 들어오는 대로 쌓아 두고 있었다. 그래서 두서가 없다고 할까, 필요 없는 물건과 꼭 쓸데가 있는 물건들이 서로 겹쳐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황이 되고 있었다. 또 물건을 계속 들어오는데 쌓을 공간이 줄어드는 현상도 발생했다.


예를 들면 갑 티슈 같은 것은 부피도 꽤 차지했다. 두루마리 휴지 또한 상당한 부피를 차지했다. 이런 것들과 고양이 사료와 여기저기서 받아온 선물들과 또 고양이 장난감이 혼재되어 쌓여 있었다.


결정적으로 유튜브에서 본 방송이 나를 자극했다. 사연은 버리지 못하고 강박적으로 물건을 집안에 쟁여두는 저장 강박증 환자를 보고 결심했다. 이렇게 물건을 쌓아만 두어서는 안 되겠다. 방송에서 강박증 환자는 집안에 가득 쓰레기로 채우고 있었다. 화장실과 안방 그리고 부엌을 드나드는데 산처럼 쌓인 쓰레기들을 헤집고 다녀야 했다. 그 가운데 있는 강아지 한 마리가 쓰레기 더미 속에서 애처로웠다.


그래서 나도 별 쓸데없는 물건들을 모았다. 앞서 말한 창고에서만 고양이 장난감 하나, 고양이 자동 급수기 하나, 그리고 PGA 우산타월 선물 세트 하나, 스위스밀리터리 타월 우산 세트 하나, 탁상용 미니 선풍기, 루아 칼림바라는 악기가 하나 있었다. 이 악기는 챗지피티를 찾아보니 아프리카 전통 악기로 엄지 손가락으로 금속 건반을 튕겨 연주한다고 쓰여 있었다. 정교한 나무 판 위에 실로폰 같은 작은 금속 판들이 늘어서 있었다. 나름 정교하게 보였고, 정품 등록증까지 있었다. 나는 이 물건이 어쩌다 여기 우리 집까지 흘러 들어왔는지는 몰랐다. 아마도 딸아이가 무슨 필요에 의해 샀거나 선물 받았다고 이곳 우리 집 창고에서 쳐 박혀 있게 된 것이리라.


나는 급하게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당근에 올린 사진이니 잘 찍어야 했다. 정성 들여 다른 이상한 것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나씩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딸아이에게도 카톡을 보내 이 물건들을 당근에 팔아도 되냐고 확인을 받았다. 앞서 여러 차례 창고에 쓰지 않는 물건을 팔아버린다고 언질을 해 놓았기 때문에 별 반대는 없었다.


여름이라 그런지 탁상용 미니 선풍기는 여러 명이 입질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제법 좋아 보이는 데 단돈 5천 원에 올렸으니 서로 사려고들 했다. 나는 내가 사는 곳과 제일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에게 팔기로 했다. 장소는 아파트 단지 정문 앞에 있는 씨유 편의점 앞에서 하기로 했다.


저녁 7시 편의점 앞은 박명에 어슴푸레했다. 몇 개의 테이블이 놓여 있고 그 자리는 편의점에서 술을 사서 사람들이 마시는 노천 카페 같은 역할을 하기도 했다. 7시에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같은 아파트 주민이라고 했다.


한 아주머니가 다가와 선풍기를 가리켰다.

“아, 우리 할머니가 사달라고 하셔서……”

나는 돈 5천 원을 받고 미니 선풍기를 건넸다. 여름이라 지금 가볍게 방 안에서 얼굴 주변으로 바람을 쐬면 딱인 제품이었다.


이렇게 선풍기를 팔고 5천 원에 내놓은 칼림바가 안 팔려 3천 원으로 값을 내렸다. 칼림바도 결국은 찾는 사람이 있어 싸게 해치웠다.


스위스 밀리터리 수건 우산 세트는 5천 원에 판다고 하는 것이 아까웠다. 정품을 사려면 거의 3만 원 정도를 들여야 하는 제품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아무도 산다고 하지 않는다. 이 당근 거래는 돈을 취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좁아터진 아파트 공간에 숨구멍을 뚫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싼 가격에 내놓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드디어 스위스 밀리터리 수건 우산 세트가 팔렸다. PGA 수건 우산 세트도 5천 원에 팔렸다. 이것저것이 팔리다 보니 나는 어슬렁 거리면 집안에 쓸데없이 오래 처박힌 물건들을 찾았다.


싱크 대 앞의 선반에서 이윽고 팔아버리고 싶은 물건을 찾았다. 유리로 된 소주잔인데 묘하게 이쁘게 생겼다. 제목을 찾아보니 크리스털 아르크 롱샴 와인 잔이라고 나온다. 상자 곽 안에 여섯 개의 유리잔이 고요히 들어 있었다. 한마디로 소주잔 밑에 받침대가 붙어 있는 형국이다. 유리잔이라고 해도 깎임이 예사롭지 않았다. 상자갑 표지에 보니 프랑스라고 적혀 있다. 한마디로 물 건너온 수입품이다. 내가 집에서 술을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 이 술잔은 한 번도 꺼내서 사용하지 않았다.


아마도 하늘의 별이 된 아내가 시집올 때 사 온 물건인 듯하다. 햇수로 따져보면 거의 32년간 우리 뒤를 따라다녔다. 다섯여섯 차례의 이사에도 이 술잔은 굿굿이 부엌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이것이 집 안에 더 있을 이유가 없었다. 32년 간 우리 집을 지켜준 터주대감인가? 혹은 하늘의 별이 된 아내가 아낀 물건인가? 그래도 나는 이것을 당근에 올렸다. 추억은 이렇게 구석진 곳에서 처박혀 있는 것이 아니다.


올렸더니 바로 입질이 왔다.

5천 원 프랑스제 크리스털 아르크 롱샴 와인잔은 어떤 아주머니가 사가셨다.

고맙습니다. 나로서는 30년이나 된 집안의 귀신을 그 주인에게 헐값에 팔아넘겼다.

이것이 당근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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