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전쟁

by 이두

전쟁은 누구에게나 참혹한 것이다. 그래도 그 전쟁 당시 20대의 꽃다운 청춘을 맞이한 사람에게 그 전쟁은 더 참혹은 것임은 말할 나위 없다. 1927년 생인 아버지는 1950년 한국동란이 발생했을 때 스무세 살이었다. 푸른 옷에 실려간 꽃다운 내 청춘이라고 하던가


아버지는 1949년에 결혼을 했다. 내가 들은 이야기로는 이랬다. 양남면에서 산길로 40리 떨어진 효동리 밀밭이라는 곳에 이미 시집와 있던 친척의 소개로 어머니는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총각과 결혼을 한 것이다. 신랑은 잘생겼다고 하고, 농사일도 잘한다고 했다. 한마디로 사람은 다 좋은데 한 가지 흠은 망해가는 집안의 차남이라는 것이었다. 할아버지가 술을 좋아하셔서 집안의 많은 재산을 팔아 치우고 남은 재산이라고는 논 몇 마지기, 밭 몇 뙤기가 전부라고 했다. 어머니는 사람만 좋다면 그까짓 재산이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시집와서 보니 정말 신랑은 인물이 훤하니 모든 일이 시원시원했다고 했다. 집안의 모든 일을 알아서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시어머니 한 분에 시동생은 읍내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하려고 하는 이야기는 아버지와 전쟁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에 더 집중해 보자. 전쟁이 1950년 6월에 발발하여 8월경부터 낙동강 전선이 고착화되고 그것이 9월까지 이어졌다. 당연히 전쟁으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인적자원이었고, 군대에 갈 장정들이 필요했음은 불을 보듯 당연한 것이었다.


경북으로 기계, 안강까지 인민군이 쳐내려 오는 상황에서 경주 월성 군 양남 면이 고향인 아버지로서는 군대에 가는 것은 당연한 상황이었다. 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8월 농사를 어느 정도 끝내 놓은 상황에서 양남면 읍내에서 산골짜기의 총각들은 모두 읍사무소 마당으로 집합하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 나이가 스무셋, 한국 나이로는 스무네 살이었다.


읍사무소 마당에는 이미 많은 장정들이 들어서 있었다. 아버지 사촌도 그 명령을 피할 수 없이 나와 있었다. 무슨 이유인지 몰라 다들 웅성거리고 있을 때 단상으로 군복을 차려입고 대위 계급장을 한 군인이 뛰어올랐다. 그리고 날카로운 눈으로 장정들을 쏘아보며 소리쳤다.


“조용히 안 하나”

군모를 깊게 눌러쓴 사이로 날카로운 눈빛이 좌중을 훑었다. 그리고 말했다. 지금이 어떤 시기인지 아느냐고, 적이 코 앞까지 와있는데 이렇게 희희낙락하고 있을 수 있냐고 말했다. 그러고는 모두 조국을 위해 한목숨 바칠 각오의 애국정신을 지녀야 한다고 했다.


이윽고 자신이 단상에 오른 취지를 설명하는데 조국은 지금 적과 싸울 한 명의 장정이 간절하게 필요하다고 했다. 읍사무소 마당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근 70여 명의 장정들이 모두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때 단상의 대위는 말했다.


“자신이 꼭 이 성스러운 조국 수호 전쟁에 참여하지 못할 피치 못할 사연이 있는 사람은 손들고 말해보시오. 그때 아버지 뒤의 한 사람이 손을 들고 말했다.


“아직 논농사도 끝나지 않았고, 저가 없으면 우리 집 소는 누가 키울 수도 없어서 어찌하면 좋을까요.....”


그러자 대위는 말한 농부를 앞으로 불러 세웠다. 그리고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구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군홧발이었지만 엎드려 뻗쳐를 시켜 놓고 곡괭이 자루를 들고 패기 시작했다.


“나라가 백 척 간두에서 위태로운데, 그깟 일로 나라의 부름을 거절할 수가 있겠어”

읍사무소 마당은 금세 고요해졌다.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러면 다들 차례로 저기에 서 있는 60 트럭에 탑승한다. 알았나”

그때 아버지가 손을 들었다.


“제가 치질이 있어 잘 걷지를 못합니다.......”

대위는 아버지를 나오라고 해서 엉덩이를 까고 엎드려 보여달라고 했다. 아버지는 그 말대로 아래춤을 벗어 엉덩이를 들어 올렸다. 항문 근처가 시뻘겋게 부어오른 모습이 보였다. 걷는 것도 힘들 것이 뻔하여 군사훈련을 하는 것은 도저히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대위는 말했다.


“너는 열외”


아버지는 다른 동네 친구들이 군대 트럭에 타는 것을 지켜보았다. 사촌이 타는 것도 지켜보았다. 이윽고 장정들을 싣고 그 트럭이 읍사무소 마당을 빠져나가자 아버지는 힘없이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나에게 말했다. 그때 그 트럭을 타고 간 사람들 중 살아 돌아온 친구는 거의 없다고. 물론 자신의 사촌도 결국 전사자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그 후 아버지는 그해 농사를 마치고 그다음 해 1951년 3월에 입대했다. 입대 후 백마고지 전투에서 죽을 고비를 넘겼다. 진격 앞으로 명령에 고지를 행해 뛰어가는데 꽝하고 수류탄이 터졌다. 결국은 대퇴부 파편 관통상으로 후방으로 이송되어 대구 국군 병원에서 치료했다.


아버지는 그날의 장면을 나에게 몇 번이고 설명했다. 캄캄한 밤에 돌격 앞으로 명령이 떨어진 거라, 무작정 앞으로 달리는 꽝하고, 이윽고 정신을 잃었다가 의무병에게 간신히 발견되어 후방으로 이송되었고 힘주어 말했다.


그 후 아버지는 1956년 말에야 제대할 수 있었다. 이후 천수를 누리다 80세에 눈을 감으셨다.


육군하사, 화랑무공 훈장 수여자, 부친은 지금 대전현충원에 누워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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