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은 chatGPT 제왕의 꿈을 꾸는가
사무직 노동 현장에 불어닥친 chatGPT 열풍에 거는 실낱같은 기대
규모가 제법 큰 공공기관에 근무하면서, 금년 들어 업무 중 chatGPT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자주 만나게 된다. 그중 실제로 chatGPT가 일말의 개입이라도 할 여지가 있는 일을 하는 듯 보이는 인원은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일단은 판단을 유보하고 세 개의 가설을 세웠다.
첫째로 흔히 가상화폐를 비트코인으로 통칭하듯 chatGPT 이외의 생성형 AI에 대해서는 금시초문일 대화 상대를 배려했을 뿐, 실은 이들이 각종 페이웨어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진짜 전문가일 수 있다. 그러나 간단한 PT 자료 제작조차 30만원씩 내고 외주 맡기는 실태가 전혀 바뀌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미지 생성이나 캐치프레이즈 작성 등에 특화된 AI 플랫폼을 적극 활용하고 있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또 다른 가능성은 스프레드시트에 기껏 숫자를 적어놓고 계산기를 두드리며 엑셀을 메모장처럼 사용하던 이들이 chatGPT는 제3의 메모장으로 삼는 것이다. 이처럼 한 식경에 마칠 일에도 주말 출근을 요하던 인원은 10여 년 전만 해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거의 다 퇴직하여 작금의 chatGPT 신봉자 중에서는 소수에 그친다.
결국 IT업계도 사기업도 아닌 공공기관에서 그마저도 일반행정 직렬이 chatGPT에 열광한다면 담당 업무가 질보다 양으로 승부하는 것임을 자백하는 격이다. 모범납세자들이 격노할지도 모르나, 실제로 공공기관 행정업무 중 상당량은—국운을 걸고 한 몸 바친다며 몹시 진지하게 임할 수도 있지만—문서 공란을 너무 허전해 보이지만 않게 채우는 수준이다. 물론 많은 경우 박근혜 정권 말 전경련 출자로 세운 두 기구인 K-스포츠재단과 미르재단의 회의록이 토씨 하나까지 똑같았던 사례와 같이 복사·붙여넣기로 해결한다. 하지만 간혹 완전히 새로운 문구를 적어야 할 일이 가뭄에 콩 나듯이 생기기도 한다.
유튜브 중독이 심각한 자녀를 훈계할 자격이 전혀 없을 정도로 활자를 읽은 지 오래라 조어 능력이 처참한 절대다수에게 적어도 비문을 쓰지는 않는 AI가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각자 남몰래 적재적소에 활용하면서도 가슴 한편에 수오지심이 들어 출력 문구나마 찬찬히 읽고 한국어 능력을 계발한다면 희극으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혁신을 위시한 퇴보가 대개 그러하듯 공공기관 내 chatGPT 추앙으로 인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절대적으로 부족하며 시급히 요구되는 역량이 한국어 문법 및 작문임에도 AI 시대에 뒤처지면 낙오된다는 불안감 속에 엉뚱한 시장을 형성하고 마는 것이다. 숱한 공공기관에서는 심지어 노조가 앞장서 지난해부터 chatGPT 활용법을 가르치는 재교육 과정을 대대적으로 개설하라며 인사·교육 부서에 탄원했다. 내년도 예산안을 짜는 12월 현재는 여전히 교육 기회가 턱없이 부족하다며 더 확대하라 아우성친다. 덕분에 리더십이나 문제해결 특강을 해오던 인력개발 강사들은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기존 교안에 데이터마이닝의 정의조차 틀리게 적은 엉성한 자료 몇 장 추가하고서 chatGPT 전문 강사를 자처해도 일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자칭 전문 강사나 매달 몇 권씩 쏟아져 나오는 chatGPT 프롬프트 작법서 저자도 아닌 평범한 사무직 임금노동자가 생성형 AI 전성시대를 커리어 도약의 기회로 삼겠다는 발상은 흡사 메이지 시대 초기를 연상케 한다. 이 시기 일본에서는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훈몽궁리도해(訓蒙窮理圖解)』(1868)를 필두로 물리학 입문서가 불티나게 팔렸다. 비교적 간단한 기계장치를 발명해 벼락부자가 된 사연을 들은 평범한 농민들이 “나도 혹시 발명왕?”이라는 헛된 희망을 품고 너도나도 물리학을 공부한 것이다.
공부 끝에 떼돈을 번 이는 물론 극소수지만 이때의 평민 독서 열풍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일본의 독서 문화 정립에 영향을 주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훗날 돌이켰을 때 과열된 직장인 chatGPT 학습열이 무엇 하나라도 부수 효과를 창출하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e북의 르네상스를 꽃피운다면 더 바랄 것이 없고, 눈먼 공공기관 예산이 강사료와 교재비로 민간에 풀려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한국인이 한국어를 제대로 읽고 쓰지 못하는 데 대한 통렬한 반성만은 도무지 일어날 분위기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