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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민 Apr 22. 2024

성공회대학교 쓰레기 분리수거함의 품격

  일종의 평생교육원 수업을 듣기 위해 약 3년째 월요일 저녁마다 성공회대학교에 방문하고 있다. 길게는 수십 년의 건물 운영권을 담보로 하는 기부금으로 장엄한 지구라트를 세우고 있는 뭇 대학들과 달리 검박한 캠퍼스가 눈길을 끈다. 한국 최초의 성중립 화장실 또한 주요 관광자원 중 하나이다. 하지만 성공회대의 진정한 볼거리는 따로 있으니, 바로 각 층의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함이다.


  수많은 대학에서 건물 1층 출입문에 주로 단과대학장 명의의 음식 배달 및 취식 금지 안내문이 공허하게 붙어 있다. 감당할 수 없는 쓰레기 배출량 때문이다. 특히 시험 기간 도서실, 휴게실 앞이나 구내식당을 이용할 수 없는 일요일의 기숙사동 수거함에는 먹다 남긴 음식과 뒤섞인 쓰레기가 사찰 앞 조약돌탑처럼 아슬아슬하게 쌓여간다. 이윽고 넘쳐 쏟아진 쓰레기에 플라스틱, 병·캔류 문자가 가려지고, ‘깨진 유리창 이론’에 따라 노골적으로 분리배출을 위반하는 사례가 축적되면서 지옥도가 펼쳐진다.


   저녁 시간에 강의실이나 휴게실 앞을 지나다 보면 성공회대 학생들도 분명 배달 음식을 즐기는 것 같다. 피자, 비빔밥, 버블티까지 메뉴도 다양하다. 보통의 대학가와 달리 학교 앞 상가 건물이 단 두 채뿐이라, 배달 서비스 이용 빈도가 타 대학 학생들보다 더 높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난 3년 동안 성공회대에서 단 한 번도 쓰레기 석탑은커녕 얼음이 담긴 채 버려진 테이크아웃 전용 컵 하나조차 본 적이 없다. 항상 완벽에 가깝게 분리배출된 용기만이 있을 뿐이다.




2023년 10월 30일 당시 성공회대학교 새천년관 2층 쓰레기 분리수거함의 모습. 식음료가 제거된 재활용품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대학만이 아닌 국내외 어느 공적 공간에서도 성공회대만큼 성숙하다 못해 예술적이기까지 한 쓰레기 배출 실태를 보기란 어려울 것이다. 성공회대 소속이라 해서 전원이 성인·복자는 아닐 텐데, 대체 무엇이 인간의 게으른 본성을 억누르고 크나큰 차이를 만드는지 궁금해질 법하다. 해답은 일각에서 성공회대를 비방하는 문구 속에 들어 있다. 좌파 양성소, 빨갱이 소굴 등 다양한 별칭으로 불리는 이 대학만큼 노동 존중이 일상에 배어 있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쓰레기통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거처 이상으로 오랜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 직장이나 학교 건물의 미화 노동자가 누구인지 전혀 모른다면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반쯤 남은 용기를 플라스틱 수거함에 쏙 넣고 모른 체하기가 비교적 쉬울 것이다. 해당 수거함 담당자의 얼굴을 두세 번이라도 마주쳤다면 마음이 조금 불편해지고, 인사까지 나누는 사이가 되면 음료째로 버리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이렇게 식음료와 일회용품을 철저히 분리 중인 조직에 새로 유입된 인원은 피도 눈물도 없다는 평가를 면하기 위해서라도 관행에 따르게 된다. 하지만 대다수의 기업과 학교에서는 정확히 반대의 현상—동료를 피곤하게 하는 환경론자가 아님을 입증하기 위해 분리배출 미시행—이 일어나고 있다.


  자칭 일류 대학들은 언제나 품격을 높이겠다면서 총장단이 취임할 때마다 온갖 자문기구를 신설하고 시찰단을 파견해가며 서구 대학의 제도를 금과옥조로 삼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대개가 보다 학벌 세습이 쉬워지는 학제 개편, 대학 재정과 보직자의 주머니를 맞교환하는 민자 유입으로 끝나고 만다. 등록금 납부 대신 주식을 사는 편이 낫다는 농담이 농담에 그치지 않을 정도로 학위의 가치가 날로 떨어지는 시대에, 각 대학이 진심으로 품격을 높이고 싶다면 시찰단을 아이비리그 대신 1·7호선 온수역으로 보내기를 추천한다. 벤치마킹할 만한 기풍과 제도가 지하철역 출구에서 성공회대 새천년관 성중립 화장실에 이르는 매 걸음마다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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