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음들
- 이 글을 시작하면서 오래전에 쓴 글이라고 했습니다. 그때와 지금의 생각이 달라진 것은 조금 바꾸었습니다만 거의 그대로 그때의 글을 그대로 옮깁니다. 사람살이 따지고 보면 예나 지금이나 거의 같은 게 태반이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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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1일입니다.
미국 연방정부의 shutdown 소식과 한국의 국군의 날 퍼레이드 기사를 보다가 글 하나 써보자는 욕심이 생겨났습니다.
제 머릿속에 있는 세 개의 서로 다른 생각들을 이야기드리는 것으로 시작하려 합니다.
<첫 번째 생각>
ObamaCare라는 이름의 의료개혁안이 끝내 오늘 연방정부의 shutdown으로 이어졌습니다. 한국에서는 기초노령연금에 대한 정책 문제로 며칠 동안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두 문제 모두 복지에 대한 또는 돈에 대한, 나아가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최소한 서로 누리고 사는 하한선을 결정하는 문제에 대한 것입니다.
사회복지나 평등에 대한 문제들이 감히 저처럼 소시민이 감 놔라 배 놔라 할 정도로 쉬운 것들이 아님은 잘 알고 있답니다.
단지, 복지와 평등의 문제를 제 알량한 수준에 맞게, 아니 제 수준의 이해 정도가 이런 것이라는 이야기 정도는 한 번 정리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두 번째 생각>
여름 내내 글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할 만큼 답답한 시간들을 보냈답니다. 그래 모처럼 아내 치마폭에 쌓여 교회 나들이도 다녔고, 이런저런 모임들에도 참석했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의 소모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구순(九旬)을 넘기신 시아버님을 걱정하는 참 맘씨 고운 며느님의 이야기가 아직도 제 머릿속에 맴맴거린답니다.
“시아버님이 하늘나라 가셔야 하는데 천주교인이라….”
그날 이후 제 머릿속에 떠나지 않는 생각 하나가 바로 ‘하늘나라’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 생각>
어느 날엔 앞으로 십 년은 넉넉할 것 같고, 또 다른 날엔 바로 내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답니다. 바로 제 부모님과 처부모님의 모습이랍니다. (이 글을 올리는 시간엔 네 분 모두 하늘나라 가셨습니다만)
제가 네 분들에게 이즈음 웃으며 드리는 말씀 가운데 이런 게 있답니다.
“이젠 몰라요. 진짜 몰라요. 누가 먼저인지는… 저까지요. (죽음은 그저 과정일 따름이에요. 우리 모두는 참 축복받은 편이잖아요.)” <괄호 안은 입 밖으로는 못 내놓는 제 생각이지만 말입니다.>
부모, 처부모 네 분들의 성격과 특성들이 다르다 보니 그 표현 방법들 역시 조금씩 다르답니다.
아무튼 역사 이전이나 이후나 모든 생명체들이 피해 갈 수 없었던, 피해 갈 수 없는 마지막에 대한 생각이지요.
이렇게 세 가지의 다른 생각들이 마구 머릿속에 오가는 시월 초하루에 “하늘나라 이야기”를 시작해 보렵니다.
무릇 모든 생각들은 그 생각의 주체 곧 생각하는 사람이 태어나고 자란 환경, 교육, 문화, 종교, 특히 인간관계에 따라 형성되는 법이지요.
그런 전제 아래 “하늘나라 이야기”를 풀어가는 제가 성서 이야기로 시작하는 점에 대해 넉넉한 이해를 부탁드린답니다.
역사 이야기가 먼저일 겁니다.
성서와 역사 이야기로 들어가 전, 그 이야기를 늘어놓는 저를 거울 앞에 세우는 일이 먼저일 겁니다. 사람마다 다 다르니 말입니다.
기독교인이자 한국계 미국 이민자인 제 입장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역사 이야기를 하자면 한국, 미국, 기독교의 역사를 훅 한번 훑고 지나가는 일부터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