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천국 - 3

만나 – 신(神)의 무상급식법

by 김영근

“이제 내가 하늘에서 너희에게 먹을 것을 내려 줄 터이니, 백성들은 날마다 나가서 하루 먹을 것만 거두어들이게 하여라. 이렇게 하여 이 백성이 나의 지시를 따르는지 않는지 시험해 보리라.”(출애굽기 16장 4절, 공동번역)



성서에 나오는 출애굽 이야기는 대충 기원전 1500년경의 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고조선시대쯤일 것입니다. 인류의 발전과정으로 보면 아직 철기시대는 꿈도 꾸지 못하던 때입니다. 피라미드 제국인 이집트의 중간왕조 시대이니, 우리들이 아주 먼 서양역사로 생각하는 고대 그리스 문명도 동틀 기미도 없던 시절입니다. 동양으로 치면 중국의 은 (殷) 나라 시절쯤입니다. 은나라는 실제로 존재했다는 역사학자들의 이야기이고 보면 중국 역시 그때쯤 아직 완전히 깨어나지 못한 때입니다.

인류의 역사시대가 막 시작할 무렵의 이야기지요.


시각을 잠깐 돌려 3500여 년 후의 오늘을 한번 생각해 봅니다.


21세기 고도의 문명을 구가하는 시대에 단지 어제 있었던 사실에 대해 진실여부를 따지고 존재 여부를 따지는 2026년 현재를 생각해 보는 것이지요.


바로 어제 일어났던 일에 대한 영상과 각종 증언들이 무수히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일의 존재 자체를 믿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이 3500년 전 이야기들을 철썩 같이 믿고 있다면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바로 그 지점에서 제 이야기는 시작된답니다.


“진짜 일어나고 있었던 사실”과 “믿고 이야기(고백)하는 사실”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상관없음은 결코 옳고 그름의 싸움으로 딱 잘라 결과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진실입니다.

일테면 진짜 일어났었고, 있었던 사실이라도 그 사실을 보고 경험한 사람들의 고백에 따라 그 내용의 진실이 달리 알려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거나 역사가 그랬다고 기록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제가 시작하려는 이야기의 밑바탕이자 밑바탈(디석 유영모 선생이 쓰신 말인데, 그 어른께서 근본(根本)을 이렇게 풀어쓰셨는데 괜히 좋아서 흉내 한번)입니다.


아무튼 모세와 히브리인들의 이야기입니다.


지금으로부터 3500여 년 전 이집트 노예 무리들이었던 히브리족이 출애굽을 합니다. 출애굽이라지만 사실은 탈애굽입니다. 수십만 거의 백만에 육박하거나 그 수를 넘어선 한 무리들이 애굽을 탈출한 것이지요.


그들의 목적지는 분명했습니다. 가나안이었습니다. 야훼라는 신(神)의 계시를 받아 이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가 모세였습니다. 당시 모세는 신과의 직통대화가 가능한 인물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신과 직통대화가 가능하다는 수많은 인물들이 전 세계에 널려 있지만, 모세가 누렸던 특권에 비하면 언급할 가치가 없을 겁니다.)


애굽에서 가나안까지의 거리는 정상인의 걸음걸이로 약 보름이 걸리는 거리라고 합니다. (아! 물론 저는 걸어보진 못한 그냥 남들 이야기랍니다.) 백만 명 정도가 이 거리를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그건 도대체 가늠할 수가 없는 시간이랍니다. 여러 가지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3500년 전 백만명의 탈출 행로에 있어서 모세와 그의 부족들이 자신들이 계획대로 된 일들이 얼마나 있었을까요?


“가라! 모세!”라는 신의 명령으로 백만여 명의 노예들의 탈출 대열에 선봉이 된 모세와 그의 측근들이 아무런 계획도 없이 “그저 야훼를 믿는 마음으로”만 그 길을 떠났을까요? 거의 백만 명에 달하는 노예들이 단 하나의 이견(異見)조차 없이 그 길을 함께 했을까요?


만나이야기는 애급 탈출 후 약 한 달 반이 지난 이후에 일어난 사건이랍니다.


자! 이쯤 아주 중요한 지점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가야 할 목적지가 분명했던 탈출 노예들이 배고픔을 호소하고 그 호소를 신이 들어 응답했던 시점 말입니다. 탈출 후 한 달 반쯤 지난 때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적지까지 걸릴 것이라고 오늘날 우리들이 예상할 수 있는 시간 약 한 달 전후고요.


이야기의 진행상 최소 한 달 반 정도 탈출 무리들이 먹을 식량은 준비하고 떠난 일이라는 것쯤은 상상이 가능한 일이지요.


그런데 한 달 반은커녕 사십 년이 지난 이후에야 그들이 목적지에 도달했다는 것이 성서의 이야기이고요.

탈출 후 약 한 달 보름 후 최소한 배고픔을 면할 정도의 먹을거리조차 없었던 탈출 노예들인 히브리족에게 나타난 것이 바로 ‘만나’라고 하는 식사입니다.




제 나이 어렸을 때의 기억입니다. 아마 국민학교 입학 전후 무렵일 터이니 1950년대 마지막 쯤의 제 기억일 것입니다. 친가보다는 외가 친척들이 많았답니다. 특히 한남동 토박이 외할아버지의 권위가 대단한 시절이어서 명절이면 외가에 모인 친척들이 수십 명이 넘었답니다.


제가 한 살 터울 외사촌 형과 막걸리에 취해 어른들의 놀림을 받던 시절이었답니다.


잔치상에 한 잔 얼근해 지신 어른들의 이야기는 한 곳으로 모이곤 했답니다. 대청마루에 진을 치셨던 외할아버지 항렬의 할아버지들이나 건넌방의 외삼촌들과 아버지, 이모부 들 사랑채 차지였던 큰 형님 또래들 부엌과 안방을 들나 들던 할머니와 어머니 이모들 모두 예외가 없었답니다.


꼬리가 물려 이어지던 이야기는 바로 6.25 전쟁 때 기억들이었지요.


할아버지들의 피난 이야기나, 큰 외삼촌의 국민방위군 시절 이야기, 아버지와 둘째 외삼촌의 전쟁 이야기, 막내 삼촌과 큰 형님의 피난 이야기, 할머니 어머니, 이모들로 이어지는 ‘아이고’ 등등 육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하리 만큼 듣고 또 들은 이야기들이랍니다.


외가 일가들이 피난 행렬에 합류한 것은 한강다리가 끊어진 이후였다고 합니다. 다행히 한강을 접하고 있는 한남동의 특성상 배를 타기가 쉬었기에 한강을 쉽게 건넜다고 합니다.


외가의 피난 행렬이 천안을 지날 무렵에 지고 온 먹을거리들이 동이 났고, 가락지들을 팔아야 끼니를 때우는 처지들이 되었답니다. 천안을 지나면서 식구들은 뿔뿔이 헤어지게 되고 부산에서 다시 합류하여 한남동으로 되돌아오기까지의 그 긴 대하소설들이 끝날 즈음에야 잔치는 파했지요..


제 외가의 피난 이야기를 돌아보면 급하게 짐을 꾸려 떠났지만 서울서 천안까지는 먹을 만큼의 양식을 이거나 지고 떠났다는 것입니다. 그 정도의 양식이면 바로 돌아올 수 있겠거니 하는 생각들도 조금은 했을 것이고, 당시 지니고 떠날 양식의 전부가 그것뿐이었을 수도 있겠고, 운반 수단상 그 이상은 짊어지거나 이고 갈 수가 없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 피난 대열에서 외가의 모든 식구들은 무사했고, 다시 다 한남동으로 모였다고 합니다. 다만 저 보다 일곱 살 위인 제 누님이 어머니 곁을 떠났다는 이야기와 제일 거지 차림으로 해골만 남은 모습으로 돌아온 가족은 국가의 부름으로 동원되어 국민방위병이 되었던 큰 외삼촌이었다는 이야기가 아직 생생하답니다.


자! 3500여 년 전으로 중동의 시내 광야로 돌아가봅니다.


탈애굽을 한 백만(사실 이 숫자는 아직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직은’이라는 말을 기억해 두시면 좋겠습니다.)에 이르는 노예 무리들이 홍해를 건너 광야에 들어섰습니다.


이들이 애초 목적지로 정한 가나안은 무리들이 약 한 달 정도 걸으면 도착 가능한 거리였습니다. 적어도 한 달 정도 먹을 양식은 탈애굽을 할 때 너나없이 챙겨 왔을 것입니다. 한 달 반쯤 지났을 때 굶어 죽겠다고 아우성을 치며 무리의 우두머리인 모세를 비롯한 왈 지도부에게 원망의 소리를 드높였다는 기록을 보면 적어도 한 달 정도는 먹는 것으로 걱정하지 않았다고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출애굽기 16장의 기록을 보면 아주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알 수 있습니다.


이집트 탈출 노예들이 원망하고 항의하는 대상은 모세와 지도부였습니다.(출애굽기 16장 3절) 모세와 지도부가 모여서 구수회의를 하고 대책 마련을 하고 어쩌고 하는 일은 없습니다. 무리들의 원망에 바로 야훼 신이 개입해서 해결책을 내어 놓습니다.(출애굽기 16장 4절) (모세와 지도부는 허당이었다는 것인데요. 요거 나중에 또 이야기합니다.)


“내가 먹을 것 준다”는 약속입니다.


야훼라는 신이 개입하는 세상, 곧 야훼 하나님이 다스리는 세상의 기본은 “먹을 건 준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만나라는 음식이건 햄버거건 육개장이건 아니, 하다못해 풀죽이 건 굶어 죽이지는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성서 이 부분에 대한 뛰어난 주석들도 많고, 오늘도 많은 설교가들이 다양한 해석들을 남기지만 신의 선언은 “내가 다스리는 한, 나와 함께 하는 한, 굶어 죽지 않을 먹을거리는 공짜로 준다”는 것입니다.


제가 성서 이야기에서 실낙원 이후에 처음으로 만나는 하나님의 나라 바로 천국의 모습입니다. 제가 죽음 이후에 만날 천국의 첫 모습인 동시에 이 땅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드는 첫 번째 동기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라도 굶어 죽지 않을 만큼 공짜로 먹을거리를 받을 수 있는 세상의 확대사”야말로 인류의 역사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 나라의 확대사가 인류 역사라는 말입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굶어 죽을 수도 있는 사람들, 곧 절대 기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10억에 가깝다고 하지만 그 퍼센티지는 인류 역사의 발전과 함께 꾸준히 줄어왔습니다.


성서 이야기에 나오는 신(神)의 무상급식법 제 일장 제 일조는 “누구라도 굶어 죽지 않을 먹을거리는 공짜로 준다.”는 것입니다. 신이 세상을 다스리는 한 그렇다는 말입니다.


한달 정도 걸릴 거리를 사십년이 지나서야 도달한 히브리족의 숱한 사연들 처럼 아주 간단할 것 같은 “누구라도 굶어 죽지 않을 먹을 거리는 공짜로 준다.”는 신의 선언은 ‘하나의 조건’으로 하여 350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 미완성의 선언으로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답니다.


하늘나라의 두번 째 모습은 평등의 문제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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