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양말조차 거추장스러운 날씨입니다. 긴 팔 옷을 쉽게 벗어던지지 못하는 나이인 저도 이젠 반팔 옷을 절로 찾게 되는 오월입니다. 뒤뜰엔 봄꽃들이 거의 다 떨어졌습니다. 오늘 밤부터 며칠 연이어 내린다는 비 예보를 보니 몇 남지 않은 봄꽃들이 다 가버릴 모양입니다.
또 한 번의 봄이 이렇게 갑니다. 제가 겪고 일흔 넘게 보낸 봄 가운데 이번에 보내는 봄은 아주, 정말, 참 잊지 못할 계절이 될 것 같습니다.
몇 주전부터 심기 시작한 여름에 꽃을 피우는 구근들에게 물을 주며 흥얼거리던 노래 <봄날은 간다>였습니다. 그러다 이어버드를 귀에 꽂고 노래 <봄날은 간다>를 찾아들었답니다.
장사익선생이 토해내는 “아~”하는 감탄사 보다 더 큰 울림으로 마치 혁명노래처럼, 그 노래 ‘봄날이 간다’가 제 가슴을 쿵쾅거리며 다가오던지 오랜만에 소리 내어 노래를 따라 불러 보았답니다.
그랬답니다. ‘열아홉 시절부터’, ‘앙가슴 두드리며’ 기다리던 그 세상, 함께 사는 이들이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우는 그런 세상,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우는 그런 현실 속 ‘우리들’,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우는 그런 공동체를 그리며 말이지요.
장사익선생 노래만으로는 보내는 봄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지 못해, 백설희, 최백호, 조용필 등의 소리들을 듣다가 즐거움, 기쁨, 마침내 큰 희망 하나 얻었답니다.
함께 크게 웃을 여름 꽃 만발한 세상을 누리는 꿈이었지요.
정말 그랬답니다. <봄날은 간다>는 결코 슬픈 노래가 아니랍니다. 희망의 노래랍니다. 새 세상을 여는 노래랍니다.
“배우고 못 배우고. 있고 없고, 잘나고 못나고, 멀쩡하고 아프고….” 그 모든 차이 없이 함께 ‘웃고 우는’ 그런 세상, 그런 여름 꿈꾸기 위해 봄은 가는 것일 것이니.
오월, 내 기억 속 언제나 아픔으로 다가오는 오월!
올해만큼은 더는 살아 꿈꿀 수 없는 멋진 유월을 맞을 수 있는 봄의 끝자락이 되기를…
** 벌써 사 년 전 일이네요. 뒤뜰 나무들을 딱따구리가 ‘딱딱’ 망치소리 내며 쪼고 있던 때 가요. ‘아이고, 저 나무 쓰러지겠구먼…’ 그 걱정에 삼십 수년 된 나무들을 베어버렸답니다. 아쉬웠지요. 한데 바로 그 자리에서 겨우 사 년 만에 봄꽃들이 피고 지고 이젠 화사한 여름 꽃들을 기다리는 뜰이 되었답니다.
이 계절의 변화, 딱 한 달여…. 자연의 변화에 순응하는 사람 사는 세상이기를…. 정말 간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