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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향기

by 김영근

제 생업인 세탁소가 연중 가장 바쁜 때입니다. 각급 학교 졸업시즌을 앞두고 졸업식과 prom 등 이런저런 잔치 계절을 맞아 세탁과 바느질 일들이 일시적으로 몰리기 때문이랍니다. 아내나 저나 이젠 과한 노동을 반길 나이가 아니어서 돕는 손길에 기대는 편이지만, 공연히 몸과 맘이 바쁜 날들이 이어지는 계절이랍니다.


그렇게 일터에서 지쳐 돌아와 뜰에 잡초를 뽑다가 문득 옛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향내에 취했답니다.

아주 먼 옛날이야기랍니다. 1960년대 중후반 중학교 때 일이었답니다. 짝사랑하던 얼굴 하얀 계집아이가 하나 있었답니다. 그야말로 짝사랑이었지요. 변변히 말 몇 마디 나누었던 기억조차 없으니까요.


그때까지 수돗물이 연결되지 않은 우리 집에는 우물이 있었지만 마시기에는 마땅치 않아서 공동 수도가에서 물지게로 물을 지어 나르던 때였답니다. 그 물지게를 지는 일은 제 몫이었던 때였지요. 도장포와 작은 활판 인쇄소를 하시던 아버지의 일터 잡 심부름들, 일테면 문안에 있던 활자 판매상이나 종이상가에 가서 활자를 사 오거나 종이상에 가서 16절 지니 8절 지니 하는 절단된 종지 뭉치들을 들고 오는 일들이었답니다.


그럴 때면 우연히 만나곤 했던 하얀 교복 칼라와 하얀 얼굴과 땋은 갈래머리 그 아이였지요. 한 교회를 같이 다녀서 일요일마다 보기는 했지만, 그 기억은 별로 없답니다. 그 얼굴 하얀 아이는 이층 양옥집에 살았답니다. 말 한마디 제대로 붙여 보지 못했던 그 아이의 집 앞을 지나가면 아주 강한 향내가 났었답니다. 그때도 이 무렵이었답니다. 라일락 향내였지요.


그리고는 스무 해 전 즈음 2000년도에서 몇 해 지난 일이었을 겁니다. 어느 일요일에 교회에 다녀온 아내가 얼굴 가득 웃음을 안고 제게 던졌던 말이었답니다. “아이고 좋겠수다! 아자씨 첫 짝사랑이 아자씨 보고 싶어서 여기까지 왔다네! 그래서 며칠 후에 같이 저녁 먹기로 했다구. 얼마나 좋을까…?!”

아내와 나는 어릴 적 한 교회에서 자랐고, 그 얼굴 하얀 아이에 대해 아내에게 몇 차례 이야기한 터이기에 웃으며 말할 수 있었지요. “언제? 어떻게? 기대되는구먼!’


이어 듣게 된 아내의 이야기였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 나오는 K교수네 알지? 그 와이프가 당신 첫 짝사랑 동생이래. 동생 보러 그 언니하고 엄마가 온대. 아이구 좋겠다! 이 나이에 첫 짝사랑도 다시 보고…” 나는 웃으며 물었답니다. “아니 당신이 그 가족관계를 어찌 아눔?” 쉴 틈 없이 돌아왔던 아내의 답, “에고, 이 사람아! 이 사람아! 아직도 날 모르시남? 척하면 척이지!”


그렇게 며칠 후, 우리 내외는 옛날 내 첫 짝사랑의 가족들과 저녁을 함께 했었답니다.


그리고 몇 해 전, 코로나 바이러스로 마치 세상 끝날 같던 즈음에 나무 몇 그루를 뒤뜰에 심었지요. 그 가운데 한그루 나무 이름이 <미세스 김 라일락>이었는데, 그 이름이 꼭 마음에 들었답니다.


이가(哥)인 아내가 이민 와서 김(哥)가 된 지도 오래되었거니와, 이 집에 산지도 삼십 년이 다 되어갑니다. 이젠 미세스 김 향내 가득한 집이 되었고요.


먼 옛날 얼굴 하얀 아이 집 담장 밖으로 흘러나오던 라일락 향내보다, 내 뒤뜰 미세스 김 라일락 향내는 한껏 짙답니다.


옛 생각으로 웃다가 하루가 저뭅니다.


세상 둥근 것보다 아름다운 게 어디 있겠느냐고 뽐내는 알리움 꽃들이나, 이제 막 제 계절이 왔노라고 멋 부리는 장미를 오직 향내 하나로 거느리는 라일락 덕에 하루 삶의 피로를 슬그머니 다 내려놓을 수 있는 오늘에….


그저 감사로!


** 이민와서 삼십 수년 동안 성(姓)을 바꾸어 김가로 살던 아내가 이즘 들어 이가로 불리기를 좋아한답니다. 역시 자기 향이 깊은 미세스 김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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