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특성들을 꼽을 때 빠지지 않는 항목 중 하나, 바로 고집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어쩌면 나는 오래전부터 노인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젠 웬만한 곳이 아니라 어느 곳에서나, 적용되는 노인 할증제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그 대상이 될법한 나이이므로 고집은 이젠 내 정체성의 하나가 되었다.
오늘 아침 내가 사는 동네(미국 동부에 있는, 미국에서 두 번째로 작은 주인 델라웨어주의 작은 도시)에서 받아 든 신문 기사제목들(델라웨어주의 대표 일간지인 ‘The News Journal’)이다.
l 2025년 델라웨어에서 우리가 잃은 소중한 생명들. 기억해야 할 주요 사망자들
l 2025년에 문 닫은 식당들과 2026년에 새로 문 여는 식당들
l 지난 The News Journal에 실렸던 그 해 1월의 주요 기사들
l 새해 세금보고에서 바뀌는 것들
l 지난주 실업수당 청구 건수 증가
l 트럼프의 관세 배당금은 여전히 유효한가?
그리고 자잘한 연예, 스포츠, 쇼핑, 의료등의 기사 제목들이 이어진다.
지난 연말 주내에서 가장 큰 차량 관리국(DMV: 자동차 등록 및 운전면허 일체를 주관하는 곳)내에서 있었던 총기 사고로 목숨을 잃은 31살 경찰관이 지난 한 해 잃은 소중한 생명이자 기억해야 할 인물로 꼽혀 있었다.(그에게는 한 살짜리 딸이 있었다.) 이어 신문은 지난 몇십 년 동안의 총기 사고를 꼼꼼히 되돌아볼 수 있는 자료를 제공했다.
경찰관이 뚱뚱하면 정직 처분을 받게 된다는 뉴스를 실은 것은 1976년 1월이었다고 한다. 실제 그해 주 공중보건국장이 작성한 신장-체중 기준표를 사용하여 9월에 146명의 경찰관이 과체중으로 판정되었고, 해당 경찰관은 다이어트를 하고 필요한 체중을 감량하라는 지시를 받는데 그중 20여 명이 5일 이상의 감봉처분을 받았다는데 그게 50년 전일이다.
그보다 50년 전인 1926년 1월엔 증기기관차가 전기열차로 바뀌었고(델라웨어와 필라델피아 구간 만이고, 뉴욕까지는 여전히 증기기관차였단다.), 그 해 1월을 장식한 기사로 새롭게 알게 된 사실 하나가 매우 흥미롭다. 당시 17살짜리 청년이 난폭운전으로 걸려 벌금 25달러(당시로는 무척 큰돈이었을 듯)를 물게 되었다는데 기사는 그보다 훨씬 적은 돈이면 차에 달 수 있는 속도표시계를 달지 않아 일어난 일이라고 하니, 당시만 하여도 자동차가 속도표시계 없이 생산되었다는 사실이다. 딱 100년 전 일이다. 어제 들은 이야기다만, 테슬러를 타고 다니는 지인이 워싱톤에서 내가 사는 곳까지 거의 두 시간 반을 자율 운전으로 왔다고 하니, 참 많이 변했다. 아마도 지난 100년 변화의 길이를 앞으로는 몇 년 아니 몇 달 사이로 겪을 수도 있을 터이니, 가히 어지럽다는 말이 과장이 아닐 듯하다.
지난해, 세상 시끄럽게 한 트럼프의 관세 정책으로 미국이 벌어들인(?) 돈 -‘트럼프 관세 부담금’-을 시민들에게 각기 2000달러씩 나누어 준다는 공약이 실현될 가능성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란다.
그런저런 까닭으로 이어지는 이어지는 세상뉴스, 오늘 압권인 베네수엘라 카라카스발 소식들이다.
l 델라웨어 정치인들은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군의 군사 행동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주지사를 비롯한 연방 상하의원 및 주의원들의 반응은 민주당의 입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으므로 의회 절차를 거치지 않은 트럼프에게 화살이 집중되고 있지만, 여전히 미국 중심적 사고 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전후 사정을 잘 알려주는 내 눈에 띈 기사는 뉴욕타임스의 <베네즈엘라 장악 The Venezuela takeover>이었다. 사건의 원인과 준비와 과정들, 사건 이후의 향후 전망, 세계 각국의 반응들과 현지 베네수엘라 시민들의 반응등을 짧지만 잘 요약하여 전해준 기사였다.
그 가운데 베네수엘라 마두로의 독재를 증오한다는 한 시민의 말이 내게 내리 꽂혔다.
José라는 사내가 한 말이란다. “제게 첫 번째로 든 생각은 이제 이 나라가 자유로워졌다거나 내가 행복하다 뭐 그런 게 아니었지요. 이제 내일 내가 마주할 일들은 무엇일까?였습니다."
궁금해서 이 뉴스를 바라보는 한국 뉴스들을 훑어보다가 그냥 접었다. 아쉽게도 내가 클릭해서 찾을 수 있는 기사 가운데 눈에 들어오는 기사를 찾지 못했다.
신문을 접으며 정리되는 생각 하나. 모든 뉴스들의 초점은 바로 ‘호세(José)의 물음 아닐까?
“내일 내(또는 우리)가 마주할 일들은 무엇일까?”라는.
(José의 말을 전하는 기사에 달려있는 베네수엘라 거리 사진이다.)
한 해를 보내고 마주하는 시간들을 몇 권의 책들과 함께 보냈다. 지난여름에 읽었던 피터 터친의 <국가는 어떻게 무너지는가> 때문에 구입해 두었다가 차일피일 책장 넘기기를 미루었던 재래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에 빠져들었다가, 다시 한번 <국가는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뒤적였다. 그리고 이어 손에 들었던 책은 지난해 겨울에 구입해 두었던 작가 한강의 일련의 소설들 중 <작별하지 않는다>였다. 그 사이 틈틈이 생각나는 대로 뒤적여 본 책은 “브로커 없는 나라”를 꿈꾸었던 예수에 대한 연구서인 존 도미닉 크로산이 쓴 <역사적 예수>였다.
평생 학문과는 거리 먼 삶을 살아온 내가 이제 새삼 학문을 논할 주제도 아니거니와 문학에 대해 무어라 주절거릴 형편은 더더욱 아니어서, 아니 진정 솔직하자면 독후감을 정리할 형편조차 되지 아니하여서 짧게 느낀 생각 한 마디이다.
“아무래도 내 고집이 옳은 것 같아! 이게 내 믿음이라고 해도 좋아! 아무렴 믿음이란 바로 고집 때문에 더욱 단단해지는 것을!”
“세상 뉴스들이 아무리 험해도 사람 사는 세상은 날마다 조금씩은 어제보다는 나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믿음, 어찌어찌 운 좋게 정말 좋은 세상 구경하고 떠나는 무리 속에 끼어 오늘을 살아가는 기쁨, 그 믿음과 기쁨의 대가로 내가 마땅히 기억해야 할 사람들을 내 삶이 끝나는 날까지 잊지 않는 노력을 쉬지 않아야 한다는 다짐들을 곱씹은 시간들에 대한 감사.”
새해에. 고집에. 믿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