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국어 - 1

by 김영근

이제 새로운 연을 잇는 일은 여러모로 버겁다. 하여 낯선 자리, 낯선 만남은 일단 피하고 본다. 조금 이르게 온 듯한 노인 증후일 게다.


지난 주일 교회에서였다. 나는 예수쟁이라고 자처를 하고 살아왔고, 여전히 그렇게 살아간다만 성실한 교인은 ‘단연코’ 아니다. ‘단연코’를 강조하는 까닭은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듯하기 때문이다. 교인 수가 그리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교회 적을 둔지 오래된 내가 아는 얼굴보다 모르는 얼굴들이 더 많은 까닭은 다 그 때문이다.


예배 후 식사 친교는 새해 들어 새로 짜인 속회(감리교회의 그룹 명칭인데 이즈음엔 목장이라고 부른다, 장로교회의 구역회 같은 소모임) 모임 친교 자리였다. 내 맞은편에 자리 잡은 젊은 친구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에겐 나도 첫 대면이었다.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내 아들 녀석 또래였다.


그는 여덟 살 즈음에 부모를 따라 한국을 떠나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가서,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마쳤다고 했다. 그 후 미국으로 재이민을 온 후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 후 부부 모두 전문직종에서 일하며 아이들을 키우며 살고 있다고 하였다. 처음 그가 하는 인사말을 들으며 나는 그가 최근에 한국에서 온 젊은 친구로 착각했을 만큼 그의 한국어는 완벽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다 그가 한 말이었다. “얼마 전에 한국을 떠나온 후 처음으로 한국을 다녀왔어요. 한 삼십 년이 지난 후에 처음 가본 거예요. 그런데 지금도 신기한 게 한 가지가 있어요. 왜 거기는 영어 단어들을 그렇게 많이 쓸까요? 때론 나도 모르는 영어까지도요….”




소설책을 손에 드는 일은 이제 거의 드물다. 일 년에 고작 두 세권 정도나 될까 모르겠다. 딱히 삶이 팍팍하기만 해서 그리 된 일은 아니다. 구태여 까닭을 찾자면 누군가의 이야기들보다 내 이야기에 스스로 빠져들곤 하는 일종의 노인 증후 때문은 아닐는지.


작가 한강선생의 노벨 수상 이후 일련의 그의 소설들을 구입한 것은 벌써 일 년 전 일이다.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채식주의자’, ‘희랍어 시간’, ‘흰’ 등이 그것들인데 내가 원해서 구입했던 것은 아니라 아내의 요구에 따라서였다. 아내는 사십여 년이 흐른 후 오랜만에 서로 연락이 닿아 만난 어릴 적 친구들과 함께 독서모임을 zoom 미팅으로 이어가고 있었는데 그 모임에서 한강 작가의 책 한 두 권을 다루겠다 하여 주문했던 것이다.


나는 거의 일 년이 지나도록 그 어느 한 권의 책장도 넘겨보지 않았다. ‘넘겨보지 않았다’라기보다는 ‘넘겨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가 맞는지도 모르겠다. 멀쩡한 사람들이 듣기엔 정말 발칙하고 말도 안 되는 헛소리이겠다만, 왠지 모를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제 일흔 해 넘는 기억을 안고 사는 나는, 내 지난 발자국을 돌이켜 ‘질척거리고

헤매며 온 길’, 또는 ‘어설픈 흉내로 이어진 길’,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를 곱씹어 마땅

한 길’이었다고 스스로 추억하며, 더는 지난 일들에 얽매이는 시간은 내게 남은 때를 허락한 신께 송구한 일이라는 생각으로 사는 쪽이다.


정말 남사스러운 소리다만 자칫 한강의 소설들로 하여 내 지난 시간들의 부끄러움들이 해일처럼 밀려들어와 내 평범한 일상을 부수어 버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여느 해와 다르게 지난 연말과 올 연시에 제법 많은 시간을 홀로 즐길 수 있었다. 작정한 일도 아니었는데 그리 된 것을 보면 이젠 그럴 시간들이 점점 늘어날 듯하다. 시간 보내기로는 책 읽기 만큼 좋은 게 없다. 그렇게 어찌어찌 시간을 보내다가 한강 작가의 첫 책을 읽었다. <작별하지 않는다>

책장을 덮고 며칠 동안 머릿속에 남아 있던 기억 하나 – ‘앵무새’였다


그리고 두 번째 손에 든 책은 <희랍어 시간>이었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으며 얼핏 얼핏 스치며 지나간 듯한 옛 생각들의 두려움들이 <희랍어 시간>으로 온전히 드러나 버렸다.


‘앵무새’와 ‘희랍어’의 연계로 떠오른 옛 생각으로 급히 주문해 다시 읽어 본 <그리스인 조르바> 책장을 덮고서야 그 두려움이 감사로 바뀌었다. 이제 한강의 소설들을 차분한 마음으로 두루 읽어 보려 한다.




돌이킬수록 내겐 부끄러움뿐이다만, 그 시절 치기는 대단하였다. 모두 말장난이었다. 말장난과 국어운동 속에서 나는 늘 엉거주춤 이었다.


‘모국어’ – 어쩌면 이제 모국어란 한글도 영어도 희랍어는 더더욱이나 모두 아니다.


‘사람 이야기’,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사람 이야기’, ‘울타리 없이 사는 사람 이야기와 함께 하는 신 이야기’를 그려 내는 말, 그게 모국어다. 이젠.


백 년 전과 오십 년 전, 칠십 년 전과 삼십 년 전에 일어난 일들이 동시에 되살아나 똑같이 되풀이되는 소설 속 이야기와 어제와 오늘 어김없이 다시 되풀이되는 뉴스들 속에서 내게 모국어로 다가오는 말들.


사람 서로 살리는 말. 거기 함께 하는 신을 그리는 말.


뉴스는 여전히 사람 죽이는 총질 이야기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