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by 김영근

<꿈에>


세상 소식들은 여느 날과 아무 다름없다, 가시지 않는 불안과 터무니없이 과한 낙관과 비관들이 넘쳐난다. 다름없기는 내 삶도 마찬가지다. 이즈음의 지나간 시간들 일기를 뒤적여보니 딱 그렇다.

일기를 뒤져보다 확연히 달라진 것 하나를 찾았다. 꿈꾸었던 일을 누리고 살고 있는 오늘이다. 오 년 전 이즈음의 일기다.



오래된 꿈이 하나 있다. 아무 걱정 없이 일 년에 보름 정도는 쉬며 여행을 다니는 꿈을 정말 오래 꾸었었다. 그 꿈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틈틈이 몇 년에 한 차례씩 그 쉼의 즐거움을 누리기는 하였다. 나이 60을 넘길 무렵이었던 때엔 정말 다부지게 그 꿈을 이루고자 마음먹었었다. 기차를 타고 서부여행을 하기도 했고, 남부 플로리다와 바하마를 다녀오고, 파리 여행도 즐겼다.


그렇게 그 오래된 꿈을 해마다 누릴 수도 있겠다는 기쁨에 빠질 무렵에, 부모들이 노환으로 앓기 시작하면서 먼 여행을 갈 여유와는 멀어졌다. 장모, 장인, 어머니 순서로 병간호를 하고 그들을 떠나보내며 여행의 꿈을 접기 시작했다. 이즈음엔 95세 아버지 곁을 떠날 수가 없다.


더더구나 끝을 모를 팬데믹으로 여행의 꿈은 이젠 사치가 되어버렸다. 휴가에 대한 꿈 역시 마찬가지다. 생업인 세탁소의 존폐가 걸린 눈앞의 현실에 휴가란 더 할 수 없는 사치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꿈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거니와 꼭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꿈이 오늘을 사는 즐거움의 샘물인 것만으로도 이미 족하다.


하여 이즈음엔 새로운 꿈을 꾼다.


보름 동안에 긴 휴가를 누리는 꿈을 접는 대신, 한가해진 가게 영업으로 남는 자투리 시간들을 여유롭게 즐기는 꿈이 하나요, 책과 다큐멘터리 영상 등 간접경험으로 그 여행의 꿈을 대신하는 시간을 관리하는 꿈이 둘째다. 그 재미도 만만치 않을게다.





지난 연말연시엔 바로 그 꿈들을 이루어 지낸 시간들이었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책과 다큐멘터리 영상을 느긋하게 마음껏 누리며 보냈다.


딱히 어떤 계획이나 일정한 주제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 일도 아니었는데, 그냥 손과 눈에 잡히는 대로 읽고 보다 보니 내 삶에 대한 감사와 내가 믿고 있는 신과 역사와 이웃에 대한 내 고집들이 당당함을 확인해 내는 나름의 멋진 시간들을 보낸 듯하여 참 좋았다.


오랜 사람살이 이야기들인 <총 균쇠>와 <국가는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읽은 후, 손에 든 것은 작가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와 <희랍어 시간>이었다. 한강의 소설들을 읽으며 잠시 말과 모국어, 내 어렸던 시절의 이야기들 속에 잠시 빠졌었다가 읽은 책이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였다.


사람 살아온 이야기들과 제주도(작별하지 않는다)와 크레타섬(그리스인 조르바)을 이어준 것은 희랍과 전쟁과 신이었다. 책들을 접고 영화와 다큐멘터리 영상들을 이어 찾게 된 까닭이었다.


일련의 넷플릭스 영상들인 일차 세계 대전을 그린 영화 <서부전선 이상 없다 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와 다큐멘터리 <제2차 세계대전: 최전선에서 (World War II: From the Frontlines)>, <터닝포인트 베트남 전쟁(Turning Point: The Vietnam War)>. <9/11과 테러와의 전쟁(Turning Point: 9/11 and the War on Terror)> 등인데 지난 100년의 굵직한 전쟁사를 스무 시간에 걸쳐 훑어보았다.


그 전쟁통에서만 죽은 이들이 1억이 넘는다. 국가. 민족, 이념, 종교의 이름으로…. 그러나 대개의 경우는 까닭도 모른 채.




책 속에 몇 가지 밑줄 친 말들.


“자신의 삶을 스스로 바꿔나가는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그때 깨달았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 - <작별하지 않는다>


“이 세계에는 악과 고통이 있고, 거기 희생되는 무고한 사람들이 있다. 신이 선하지만 그것을 바로잡을 수 없다면 그는 무능한 존재이다. 신이 선하지 않고 다만 전능하며 그것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그는 악한 존재이다. 신이 선하지도 전능하지도 않다면 그를 신이라고 부를 수 없다. 그러므로 선하고 전능한 신이란 성립 불가능한 오류다.”


“그렇다면 나의 신은 선하고 슬퍼하는 신이야. 그런 바보 같은 논증 따위에 매력을 느낀다면. 어느 날 갑자기 너 자신이 성립 불가능한 오류가 되어 버리고 말걸.” - <희랍어 시간>


언젠가 조르바가 내게 말했었다. “인간들아, 그만하면 충분히 됐으니 이젠 끝까지 밀어붙여라! 겁내지 말고! 하느님께서는 진짜 악마보다 반쯤만 악마인 놈을 더 혐오하신다.”


조르바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말했다. “모든 건 생각하기 나름이죠. 믿음이 있다면 다 망가진 문짝의 나무조각이 성스러운 십자가 조각이 되죠. 믿음이 없으면 성스러운 십자가십자가 전체라도 망가진 문짝이 되고요.”


그(조르바)가 죽음과 마지막 싸움을 하고 있을 때 저를 불러 이렇게 부탁했습니다. ‘선생님, 그리스에 내 친구가 한 명 있는데 내가 죽거들랑 내가 죽는 그 순간까지 정신이 말짱했고, 또 그를 기억했다고 편지를 보내주슈. 그리고 난 내가 평생 한 짓에 대해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해주슈.” - <희랍인 조르바>


그리고 다큐멘터리 <제2차 세계대전: 최전선에서 (World War II: From the Frontlines)>의 마지막 이야기 거의 끝 부분에 나오는 유태계 미군 장교 Kurt Klien과 유태인 포로 수용수였던 Gerda Weissman의 만남의 장면에서 Gerda가 했다는 말,


“고귀하라, 인간이여. 돕고, 선하라. 이것 하나만으로 인간은 우리가 아는 모든 존재와 구별된다” - 괴테의 시 <신성 (神性)> 첫 연의 시구였단다.


하여 그의 시를 몇 번이고 곱씹어 읽었다. 시의 전문인데, 세상 좋아진 덕분에 ChatGPT에게 독일어 원문을 주고 아주 쉽고 이해하기 쉬운 한글 번역을 해달라고 부탁했더니 이렇게 답해 주었다.


〈신적인 것〉


인간은 품위 있게, 서로 돕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 이것이 인간을 다른 모든 존재와 가르는 기준이다.


우리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존재한다고 느끼는 더 높은 어떤 것들이 있다. 인간은 그것을 닮아 가야 한다. 말이 아니라 삶으로 그 존재를 믿게 해야 한다.


자연은 공평하지만 냉정하다. 태양은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분하지 않고 비추고, 달과 별도 범죄자와 성인에게 똑같이 빛난다.


폭풍과 강물, 천둥과 우박은 멈추지 않고 지나가며 누구든 차례로 휩쓴다.


운도 마찬가지다. 아무 기준 없이 사람들 사이를 떠돌며 어린아이에게도 죄 있는 어른에게도 똑같이 찾아온다.


우리 모두는 바꿀 수 없는 큰 법칙 속에서 각자의 삶을 끝까지 살아내야 한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인간은 옳고 그름을 가르고, 선택하고, 책임진다. 짧은 순간을 의미 있는 기억으로 만들 수 있다.


인간만이 선을 보상하고 악을 처벌하며, 상처를 고치고 사람을 구한다. 길을 잃은 것들을 다시 쓸모 있게 연결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신들을 존중한다. 그들이란 결국, 가장 좋은 인간이 작은 삶에서 하려고 애쓰는 일을 크게 실천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인간은 계속해서 돕고, 선해야 한다. 포기하지 말고 옳고 필요한 일을 하며, 우리가 꿈꾸는 더 나은 존재의 모델이 되어야 한다.




신기하기도 하다. 어제오늘 연휴 소리 없이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조용히 불안하고 어두운 세상 소식들을 헤쳐 이겨 나온 사람들의 이야기와 오늘도 그들과 함께 일하는 신(神)을 고백하며 지냈다.

그러다 만난 두 해 전 오늘 일기다.


<잘 쉰 하루>


며칠 전부터 4인치 정도 눈이 더 내린다는 예보는 어제 오후부터 호들갑을 더해 6인치 정도를 예상한다는 문자로 전해졌다. “에이, 핑계 김에 우리도 하루 쉬어 갑시다.” 그렇게 하루 가게 문 닫기로 하고, 조금은 게으르게 맞이한 아침은 참 고요했다. 어쩜 이 고요함은 늘 이어 왔을게다. 다만 아침 분주한 소리를 만들어 이 고요함을 느끼지 못한 것은 분명 내 탓일 터였다.


눈 내리는 소리에 귀 기울여본 게으른 아침에 감사를!


쉰다고 아직 늘어질 나이는 아니어서 이 땅에 살기 위해 최소한 해야만 하는 서류 정리들도 좀 하다가, 아내와 내 입을 위하여 손품 파는 재미도 누려본다.


꾸준한 놈 당할 재간 없다더니 쌀가루 뿌리듯 내리는 눈이 온종일 내려 족히 6인치를 채울 모양이었다. 눈은 그치지 않았지만, 더 쌓이기 전에 좀 치워 놓아야 내일이 좀 편할 터. 이젠 삽질도 쉬엄쉬엄 그냥 즐기듯 해야 할 나이.


건너 건너 집 snow blower로 눈 폭포 만들며 눈 치우는 사내를 보며 혼자 중얼거려 보는 소리, ‘에이, 이 사람아. 눈 치우는 건 그냥 운동인데. 암만 그냥 삽질이지. 뭔 snow blower람!’ 한데 이건 또 뭐람! 이웃집 나이 들어 장가 안 간 아들 걱정 들을 때면 함께 안타까워했던 나였는데, 오늘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눈 치우는 것이 그렇게 부러웠다는.


머리 흔들며 정신 차릴 때마다 혼자 해보는 소리다만 내 맘은 왜 이리 간사한 것인지? 왈 종심(從心) 나이라 했거늘, 정신적 자람이 아직 내 맘 따라갈 나이엔 이르지 못했나 보다.


그런데 몸은 이미 나이를 다 쫓아가, 아니 어쩜 더 나아 간 지경에 이른 것인지 몰라 그저 천천히 땀 식혀가며, 어둠 찾아들기 전 쉴 곳 찾아 빠른 날개 짓 하는 새들에게 응원도 보내면서 천천히 천천히 눈을 치웠다. 눈은 이내 그 치운 자리를 또다시 덮었지만.


저녁에 이즈음 몇 장씩 넘기던 책을 마무리해 읽었다. 역사학자 나타샤 티드가 쓴 <세계사를 바꾼 50가지 거짓말>이다. 이 책에 나오는 역사적 거짓말들을 만든 주체들은 대개 당대의 권력자들이다. 정치, 경제, 군사, 종교, 문화의 권력자들, 19세기 이후로 그보다 더 큰 권력자로 등장하는 언론까지.


이 거짓말들이 낳은 후과(後果)는 슬프게도 사람들의 죽음이었다. 그것도 한두 명의 죽음이 아니라 작게는 수백, 수천에서 많게는 수 백만, 수 천만에 이르는 당대 사람들이 겪은 이른 죽음이었다. 그 거짓이 거짓으로 드러나는 데 걸린 시간은 길게는 이천 년에서 수 백 수십 년 또는 오늘도 이어지는 일이란다.


단, 이 책의 허점 한 가지. 바로 그 거짓을 드러내기 위해 몸부림치며 삶을 바쳤던 사람들이 이끌어 온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는 것. 오늘도 세상 곳곳에서 쓰이고 있는 이야기들, 거짓말과 그에 대항하여 싸우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읽어야 좋은 책 한 권.


잘 쉰 하루. 오늘을 허락해 주신 신께 감사하는 밤에.


*** <이제 신문사는 자신들의 편견을 뒷받침하는 선정적인 기사를 만들기 위해 사실을 왜곡할 뿐이다.> – 이 책 ‘제4장 19세기’를 여는 글.



아무렴, 꿈은 이루어지는 법.

- Martin Luther King, Jr. Day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