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이 떼 지어 쏟아지는 가는 비 같은 눈들이 땅과 하늘을 시리게 차갑고 하얗게 덮고 있는 아침입니다. 긴급 차량 이외에는 오늘 하루 운전을 금한다는 주지사의 명령 아니어도 이런 날씨에 차소리 듣기 힘들 겁니다. 고요합니다.
뉴스들이 그 고요함을 깨뜨립니다. 총성과 함성과 애도의 소리를 보고 듣고 나니 내 방과 바깥세상이 모두 적막합니다.
미네아폴리스에서는 또다시 애먼 사람을 잡는 총성들이 울렸고, 그 총성을 덮으려고 울부짖는 함성들을 전해옵니다.
이젠 이른 나이가 되어버린 숫자를 넘어서지 않고 서둘러 떠난 이의 소식과 애도의 소리도 고요함을 잠시 적막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 이민의 땅에서 ‘이민’은 개국 이래 오늘날까지 지난 250여 년 역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일 것입니다. ‘총’과 함께 말입니다. 역사는 물론이거니와 이 땅의 권력을 이해하는 척도이기도 합니다. 권력자들 손아귀 속 장난감 같은 말들이었으니 말입니다.
1970년대를 함께 보냈던, 스쳐 지나간 많은 친구들은 ‘민중’을 이야기하며 그 시대를 보냈습니다.
1970년대 말, 아주 초라하고 작은 출판사를 운영하던 내게 신림동 광장서점 주인이던 그가 했던 말입니다. ‘민중은 늘 변덕스러워요. 그게 민중의 속성이에요. 운동의 성공은 그걸 이해하는 일에서 부터지요.’ 거의 50년이 지난 일입니다.
어느새 반세기가 지난 오늘까지 민중을 이해하기 위해 민중으로 살아가는 친구들이 어찌 그 한 사람뿐이었을까요?
미네아폴리스를 비롯한 이 이민의 땅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민중’을 찾으며 살아가는 한반도 남북에서, 마치 그가 아픈 역사까지 안아보고 싶었던 듯한 베트남 민중까지 그리고 오늘 여기에서….. 이르게 떠나며 꿈을 남긴 그의 여정이 이루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