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온 초전도체(LK-99) 개발 연구진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언옵테늄... '구할 수 없는 물질'이라는 뜻이랍니다. 영화 아바타에서 이 언옵테늄을 약탈하기 위해 인류는 나비족의 판도라 행성을 침략합니다. 영화 속 언옵테늄이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상온 초전도체'입니다. 우리나라 연구자 이석배 박사 등이 세계 최초로 상온 상압 초전도체를 개발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초전도체는 장점이 많습니다. 초전도는 전기 저항이 거의 없어져서 전기 신호가 통과할 때 에너지 손실이 거의 발생하지 않은 상태를 이릅니다. 전기저항이 0이 되는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절대온도 4K, 약 영하 269℃까지 낮추는 초저온 환경을 구현해야 합니다. 초전도체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은 초전도체 구현 온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2015년 독일의 미하일 에레메츠 박사는 영하 70℃에서 초전도 현상을 발견했고, 이어 2019년 영하 23℃까지 온도를 높였습니다. 영하 23℃이면 상용화가 가능할 듯한데, 이 온도에서는 압력이 167만 기압이어야 합니다. 기온이 높으면 그만큼 압력도 높아야 초전도 특성이 나타납니다. 문제는 기압을 몇 천, 몇 만 올리는 것이 녹록지 않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온도를 낮추는 것이 더 쉽다는 것이죠. 초전도체를 이용하는 사례로 자기 공명 이미징(MRI)이 있습니다. MRI 장치는 영하 200도 이하로 낮춰서 초전도 현상을 일으킵니다. 이렇게 온도를 낮추기 위한 장비가 비싸고, 따라서 MRI 검사 비용이 비쌀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에 우리나라 민간 기업 연구자들이 '그 어려운 걸' 해냈다고 발표한 것입니다. 우리가 생활하는 기압과 온도에서 초전도체가 작동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온 세계가 난리가 난 것이죠. 이것이 사실이면 앞서 말한 MRI 검사가 시골 보건소에서 3,800원에 가능할 것이라는 밈이 돌 정도입니다. 논문의 검증은 진행 중입니다. 논문의 진위 여부 또는 재현 가능성에 대한 검증은 과학자들의 몫입니다. 제가 가타부타할 깜냥도 못 됩니다. 저는 대신 다른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이석배 박사의 영어 논문 말고 한국결정성장학회지에 실린 논문을 봤습니다. 영어 논문을 다운로드했습니다만 뭔 얘기인 지 당최 모르겠더군요. 그렇다고 한글 논문은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논문 말미에 적힌 감사의 글은 이해가 되더군요. 아래와 같이 적혀 있습니다.
"최동식 교수의 별세 이후 교수님의 유훈에 따라 6년에 걸친 상온 상압 초전도체를 찾아내려는 연구 개발에 매진할 수 있도록 재정적 지원을 해 주신 기 세웅 회계사, 이 병규 대표님((주)프로셀테라퓨틱스), 윤상억 회장님((주)화인), 그리고 함께 투자에 참여해 주신 많은 투자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도 함께 동고동락한 개성 강하고, 재능 있는 공동 연구자들과 최근 연구팀에 헌신적으로 어려움을 분담해 주고 있는 방 재규, 김 경철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본 연구는 주로 (주)퀀텀에너지연구소의 연구개발비로 진행되었고, 재원의 일부분은 2019년 정부 (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 기초연구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No. 2019R111A1A01059675)와 고려대학교의 승인(Korea University Grant)을 통해 지원을 받았습니다."
고려대 최동식 교수는 1993년 기존 초전도체 이론을 대신한 새로운 이론을 제시했습니다. 초전도체는 물리학자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데 화학자가 이 판에 뛰어든 것입니다. 그래서 물리학자들은 회의적이라고 생각하는 상온, 상압에서 작동하는 초전도체를 시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1999년 최동식 교수님 연구실의 비전임 이석배 교수와 김지훈 대학원생이 상온 초전도체를 만들고 각자의 이니셜을 따서 LK-99라고 이름 짓습니다. 제조공정이나 이론적 원리가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추가적인 연구를 계속하던 중 최동식 교수께서 2017년 별세하십니다. 최교수는 연구를 계속하되 완벽한 이론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세상에 티 내지 말라는 유훈을 남기셨답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펀딩이 모였고, 위 감사의 글에 쓰인 투자자들입니다. 연구개발 정책 수립 과정에서 '연구개발 재원의 다양성'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고, 해외 사례를 많이 찾았습니다. 저는 이번 연구와 같이 민간 펀딩을 통해 연구가 수행되었다는 점이 인상 깊습니다. 연구 내용이 한두 해 연구를 통해 상용화가 가능한 것도 아니고, 관련 연구자 대다수가 안된다고 하는 '그 어려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펀딩을 통해 연구가 수행되었다니... 놀라울 뿐입니다.
자료를 찾다 보니 제2발명자 김지훈 박사가 링크드인에 7월 27일에 LK-99 발견 과정을 적었다고 합니다. "난 물리학과 물리학자들을 사랑하지만, 그들이 초전도체를 찾기 위한 연구 방법엔 비동의한다. 난 실험 재료를 섞고, 가열하고, 초전도체 특성이 안 보이면 멈췄고, 보이면 계속 진행했다. 이는 매우 지루한 과정이다. 난 20년간, 1천 번의 실험을, 전 과정을 실험했다."
문득 대학원 시절이 떠오르더군요. 실험을 하다 보면 벽이 생깁니다. 뛰어넘거나 멀리 돌아 통과하거나, 어떻게든 해결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저도 학위 과정 중에 소위 'trial and error'를 거듭하며 '운 좋게(?)'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일면식 없는 김지훈 박사가 실험하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러면서 느껴지는 동질감. 유튜버 슈카월드는 LK-99를 소개하면서 초전도체가 왜 영하 269도에서 저항이 0이 되냐고 질문합니다. 답은 모른다입니다. 모두가 인정하는 초전도체의 속성조차 설명이 안 되는데, 모두가 부정하는 상온 초전도체의 원리를 정립하는 연구는 그야말로 '맨땅의 헤딩'이었을 것입니다. 그 노고에 박수를 보냅니다.
전 세계적으로 LK-99, 상온 초전도체에 대한 검증 작업이 한창입니다. 곧 결론이 내려지겠죠. LK-99가 상온 초전도체가 맞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하지만 상온 초전도체가 아닐지라도 연구진들을 사기꾼이라고 몰아가지 않았으면 합니다. 오히려 이제는 정부가 적극적 지원을 해 줬으면 합니다. 완벽한 상온 초전도체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도전적 연구를 지원해 주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니까요. LK-99 연구는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연구였고, 그래서 연구자들은 선구자입니다. 정부 R&D 예산 따기 좋은 연구 주제로 옮겨 다니는 철새 연구자들이 많은 와중에 음지에서 20년 넘게 한우물을 파신 연구자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참고문헌]
이석배, 김지훈, 임성연, 안수민, 권영완, 오근호, 상온상압 초전도체(LK-99) 개발을 위한 고찰, 한국결정성장학회지 33권 2호, 2023.
Sukbae Lee, Ji-Hoon Kim, Young-Wan Kwon, "The First Room-Temperature Ambient-Pressure Superconductor",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