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 대하여
이래저래 바빴는데 사실은 아무 일도 해내지 못한 느낌으로 퇴근하는 겨울밤, 첫눈이 내린다. 운전석에 앉아 도로를 달리는데 하얀 눈발이 나를 향해 돌진하는 모습이 낭만적이고도 한편 처연해서, 오늘은 엄마에게 전화하고 싶지 않아, 내 마음을 두둔하다가- 눈도 없이 더 차가울 대구의 한 가게. 적막함 속의 엄마가 눈앞에 절로 그려져서 전화를 걸었다.
"응, 나 퇴근 중. 엄마 뭐 해? "
"엄마는 오늘 미나언니네 와서 저녁 먹구 있어."
"가게는? 문을 웬일로 닫았대?"
"아, 오늘 법원 갔다 왔거든."
그 대답을 듣고 보니 엄마 목소리 끝이 닳고 물기가 어려 있다. 그 여자, 정말 뻔뻔하더라. 재수사에 들어간 서류를 보는데, 그 항목들을 자세히 확인하고 사인하는 모습이 너무 담담해 보여서 '왜 사기를 쳐서 저렇게 살고 있을꼬' 싶은 일말의 측은함도 안 들더라. 했다.
측은함은 무슨! 괜히 언성을 높이고서는 죄 더 받을 거야. 저녁 맛있게나 드셔,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날리는 눈발을 다시 보는데 낭만은 사라지고 차갑고 쓸쓸하게만 보여서 눈앞이 흐려졌다. 엄마에게 이 겨울이 얼마나 길까. 그리고 그 겨울이 나에게 또 오게 되려나. 우리는 어떻게 되어갈까. 눈처럼 하얗고 막막한 마음이 얇고 무겁게 쌓인다.
작년, 환갑이 된 우리 엄마는 30년 넘게 해 오던 옷가게를 접고 은퇴를 준비했다. 모아둔 돈을 조금 굴리고, 요양 보호사 일을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하면서 연금을 받으면 그럭저럭 소소하게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해서였다. 그래 엄마 이때까지 고생했어. 엄마도 이제 좀 쉬어야지, 하며 나는 그녀의 새 출발을 응원했다. 그간 엄마가 쉬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엄마의 근무가 곧 매출로 이어졌기에 그녀는 휴무 없이 매일 일했고, 1년에 쉬는 날은 기껏해야 명절 이틀 정도였다.
- 너거 아빠한테 들들 볶이느니 나가서 일하는 게 백배는 좋다. 나가야 숨통 트인다.
- 엄마는 예쁜 옷 입고 이렇게 멋들어진 일 하고 지내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아나?
- 매출 1등 했다. 다들 얼마나 부러워하던지. 엄마 열심히 했거든.
라며 습관처럼 일을 사랑한다고 말했기에 걱정하기보단 자랑스러운 마음이 컸지만, 그런 번듯한 말들이 사실은 자식에게 보일 수 있는 강인함이라는 것을 나는 모르지 않았다.
백화점에 있을 땐 에어컨 때문에 사계절 늘 잔기침을 했고, 항상 두통과 소화불량을 달고 지내는 와중 하루 종일 서서 일해야 했으므로 엄마 다리는 늘 붓고, 일주일에 한 번씩 와서 반품을 반복하는 진상을 웃으며 마주 해야 하는 고된 날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엄마가 좀 편해지길 바랬다. 엄마처럼 열심히 살아온 사람이 없었으니까. 응당 그럴 자격이 있다고, 그래야만 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엄마는. 은퇴와 동시에 사기를 당했다.
평생 그렇게 쉬지 못하고 일해서 모은 돈이 모두 사라져 버렸고 추가로 빚까지 얻었다. 카드론이라고 했다. 엄마 명의의 카드로 대출을 받게 빌려주고, 그 대가로 1%의 이자를 다달이 받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그 대출을 모두 가지고 달아난 것이었다. 지인에게 당한 것이었고, 지인 위에 우두머리 같은 여자가 모든 돈을 들고 튀었다. 같은 수법으로 당한 사람이 50명도 넘었다. 흔히 사기당한 사람들에게 드는 물음처럼 왜 그런 수법에 당했냐고 묻고 싶었으나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엄마가 나에게 고백하기까지 6개월이 넘는 시간이 걸렸고, 그 기간 동안 그녀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되돌리려고도 해 봤다가, 믿을 수 없어 얼이 빠졌다가, 함께 당한 사람들과 모여 고소를 준비하다가, 그중 누군가는 이미 세상의 등을 저버리는 걸 목도했다가, 결국엔 엄마 또한 목을 매달려고 했다가, 모든 걸 그저 받아들이고 다시 새 출발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이 미칠 즈음 나에게 돈을 빌리기 위해 그 사실을 고백했기 때문이다.
"죽고 싶었는데, 엄마가 용기가 없어서 못 죽었어.. 엄마가 못 죽었어,, 죽고 싶었는데 못 죽었어."
직업병이라 늘 구김 없고 화사한 웃음이 몸에 밴 우리 엄마. 평생 드라마를 볼 때 말고는 단 한 번도 내 앞에서 운 적이 없는 그녀가, 몇 번이나 죽고 싶었다고.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고 통곡하는데 도저히 우리 엄마라고 믿기지 않았다. 아이처럼 테두리 없이 허물어져 우는 그녀를 보면서 나는 엄마의 엄마가 된 것처럼 본능적으로 의연해졌다. 괜찮아 다 해결될 거야. 엄마 일단 잘 말했어, 그동안 힘들었겠다. 놀란 내 마음은 뒷전에 두고 엄마를 죽지 않게 달래야만 했다.
엄마는 절친의 동생이 타코야키 가게를 하는데 매출이 좋다고, 금방 벌어서 빚을 갚을 수 있을 것 같으니 타코야키 가게를 차리겠다고 했다. 평생 우리 집의 경제적 가장이었던 엄마가 할 수 있는 요리는 정해져 있었다. 오이무침, 오뎅볶음, 된장찌개와 김치찌개. 단 4가지만 만들 줄 알던 엄마가 요식업을 한다고? 울고 있는 엄마는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고 있지 않았기에 더욱 만류했지만 오늘 이미 가계약을 끝냈다며 완강했다. 더불어 절망에 빠진 엄마를 꺼낼 다를 방법을 나는 알지 못했다. 수중에 있던 3천만 원을 엄마에게 이체하면서, 그리고 남편에게 이런 상황을 설명하면서, 나는 한 차례 더 무기력해졌다. 부자여서 그냥 모든 빚을 갚아줄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내가 결혼을 안 하고 싱글이었으면 그게 다 가능했을 텐데. 나의 과거와 현재를 무분별하게 부정하며 울음을 삼켰다.
그 시기 나는 10개월짜리 둘째를 키우고 있었다. 내가 장녀였고 그래서 조금은 괴로웠으니까, 나의 첫째에게 빚지지 말고 둘을 그대로 공평히 사랑해 주자 마음을 먹었는데, 첫째인 아들과 다르게 둘째인 딸은 자꾸만 선 하나가 더 연결된 기분이었다.
이제 기고 있는 딸을 책방에 데려가면서도, 나중에 같이 오면 더 좋겠지. 자연스레 미래가 그려졌고, 네일을 받으면서도 나중에 나란히 앉아서 디자인을 고르는 상상을 했다.
엄마의 고백 후 딸아이를 보는데 자꾸만 어린 나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시렸다. 나와 딸에게 연결된 선은 사실은 엄마와도 이어져 있는 것이어서, 30년 전 엄마의 시간을 내가 되풀이 살고 있는 느낌이 드는 거였다.
엄마도 그 시절 나를 마주하고 웃고 있었을 것이다. 함께 바닥을 구르고 책을 읽다 지루해지면, 내복을 배까지 덮게 단단히 입혀 산책을 하고, 파란 하늘과 사계절의 나뭇잎들을 보며 감탄했을 것이다.
매일 몇 번이고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묻고, 그때마다 매번 우는 엄마에게 괜찮다고 말해주고, 전화를 끊고 나서는 딸아이를 눈앞에 두고 혼자서 울었다. 아직 울음의 의미를 모르는 아이에게는 눈물이 뚝뚝 떨어져도 눈코입만 웃어 보이면 그만이었다. 엄마의 장년의 삶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사랑하는 딸 앞에서 나는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를 막연히 생각했다. 같은 상황이었으면 난 살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살아낸 엄마의 생명력에 고마워하면서 나는 울고 웃으며 아이에게 책을 읽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