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앤톡]문유석 판사의 판사유감을 읽고
글 잘쓰는 문유석 판사가 쓴 '판사유감'이라는 책을 보면 판사들도 야근 참 많더라고요. 사건과 관련한 각종 판례 찾아보고 판결문 정리하는 것이 판사들이 밤에 하는 일들의 대부분입니다.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판례를 찾고 하는 일들은 앞으로 인공지능(AI)으로 대표되는 기술을 쓰면 크게 문제도 없고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사람보다 나은 결과를 뽑아내지 않을런지... 고급 인력들인 판사들이 앞으로도 계속 판례를 찾는데 시간을 쓴다면, 지금과 같은 수의 판사들이 필요하게 될지...
판사수를 줄이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판사들이 하는 일의 성격은 바뀌지 않을런지...AI가 다양한 분야에서 업의 본질을 바꾸고 있는 만큼, 판사들도 여기에서 자유롭지는 않을텐데...
기술에 대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대 상황에 맞추려는 측면이 강하지만 판사유감에는 문유석 판사가 생각하는 판사의 역할 변화에 대한 내용도 담겼습니다. 우리가 하는 법원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네요. 핵심은 법원이 지금보다 오지랖을 확 넓히는 것입니다. 법원과 판사들의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 관점에서 나름 흥미가 있을거 같아 책에 있는 내용을 일부 공유합니다.
"미국에 1990년대 이래 같은 문제의식 아래 새로운 법원의 모습이 대두되어 왔습니다. 이는 문제해결법원이라고 불리지요. 1989년 개소된 마이애미 약물법원을 시초로 약물중독, 가정폭력, 아동학대, 소년범죄 등의 영역에서 법원이 중립적인 판단 역할만 수행하던 전통적인 역할을 넘어,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기 위해 치료, 상담, 프로그램의 제공과 지속적인 사후 감동 등 전극적이고 후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특수한 법원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사법부도 가정법원을 중심으로 가사, 소년재판의 영역에서 문제해결법원을 지향하는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가정법원에는 판사보다 상담원들이 많을 정도지요. 문제해결법원이라, 말 자체부터 멋지지 않습니까? 물론 중립적인 판단자라는 전통적인 법원의 역할 역시 계속하여 중요하겠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지향하는 전향적인 자세는 모든 재판 영역에서 새로운 혁신을 낳을 것입니다.
민사재판에서 어느 한쪽이 전부 이기거나 전부 지는 일도양단식 판결보다 분쟁 당사자 사이의 충분한 대화를 통하여 상호 양보와 대안 제시를 통해 합의로 분쟁을 조기에 해결하는 조정 절차를 발전시키는 것도 같은 맥락이지요. 미래의 법관은 사회 치료사의 역할도 수행해야할 것 같습니다."
AI와 충돌할 것 같지도 않고, 나름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역할같습니다. 물론 지금 판사들의 스타일로 이런 일들을 하기는 힘들겠지요.
"어떻게 보면 참 판사하기 힘든 세상입니다. 국민들의 눈높이가 너무나 높아졌어요. 눈높이에 맞게 재판을 하려면 역설적이지만 야근할 시간이 없습니다. TV를 10년간 안보기는 커녕 가능만 하다면 신문도 편향되지 않게 서로 다른 입장의 신문을 같이 보고, 인터넷 여론의 흐름도 살피고, 세계에서 어떠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관심을 갖고, 경제, 정치, 사회, 문화, 각 분야에 관한 시대정신을 담은 좋은 책들도 읽고 무엇보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대화할 기회를 갖고 고민해야 겨우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회인이 될수 있는것 아닐까요.
공감이 또 다시 화두인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공감할 수 있는 재판을 바라고 있습니다. 공감하려면 먼저 소통해야 하겠지요. 소통하려면 노력해야 합니다. 이 복잡다단한 세상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고, 동시대인들이 어떤 고통과 고민,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지 알고자 노력해야 하며, 그들과 소통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고민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