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앤톡]예정된 전쟁을 읽고
트위터에서 팔로우잉하는 다수 경제전문가들은 중국과 미국의 대결에 대해 중국의 필패를 예상한다. 중국은 숫자로 보면 미국과 자웅을 겨룰만한 잠재력을 갖췄지만 실제로는 과잉 투자 등 심각한 내부 모순에 직면해 있어, 미국의 공세를 감당할 체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고로 중국이 백기를 드는 것으로 결말이 날 것이란게 이들의 예상이다.
나는 세계 경제와 국제 관계를 전문적으로 해설할 역량이 없다. 그래도 지금 펼쳐지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가 트위터에서 팔로우잉하는 경제전문가들의 예상대로 중국이 백기를 드는 결과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나는 여전히 중국이 미국에 쉽게 꼬리를 내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는 쪽이다.
미국 안보정책 전문가인 그레임 앨리슨이 쓴 예정된 전쟁을 봐도 미국과 중국의 싸움은 미국에 유리한 일방적인 구도로 그려지지 않는다. 둘의 경쟁은 세기의 대결에 가깝다.그리스 역사학자 투키디세스의 이름을 딴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들어가는, 다시 말해 기존 지배 세력과 만만치 않은 신흥 세력 간 긴장으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사례로 꼽을 수 있다.
투키디데스에 따르면 근본적인 원인은 신흥세력과 지배 세력간의 구조적 긴장이 얼마나 깊은가에 달려 있다. 이런 경쟁이 두 나라를 잇따른 교착상태에 빠뜨림에 따라 서로의 정치 구조안에서 가장 열성적인 목소리가 갈수록 더 높아지고, 자존심이 더 강해지며, 상대국이 얼마나 더 위협적인지는 주장하는 목소리는 더 날카로워지고, 평화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지도자들에 대한 도전은 점점더강해진다. 투키디데스는 전쟁으로 이끈 이 역학에 기름을 끼얹는 세가지 주요 동인을 밝혔다. 바로 이해관계, 두려움, 그리고 명예다.
책을 보면 중국과 미국은 DNA가 많이 다른 국가다. 중국이 바둑이라면, 미국은 체스다.
체스가 중심부를 지배하고 상대를 무너뜨리는게 목표인 것에 비해 바둑은 상대를 둘러싸는게 목표다. 체스의 마스터가 대여섯수 앞을 본다면, 바둑의 고수는 스무수나 서른수 앞을 본다. 중국의 전략가들은 상대와의 더 넓은 관계 속에서 모든 차원에 주의를 기울이면, 섣불리 승리를 향해 돌진하지 않고, 대신 점진적으로 유리한 부분을 쌓아나가려고 한다. 체스를 하는 태도로 고 게임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 지나치게 공격적이 되어서 마구 뻗어나가다가 결국 힘이 달리고 전장에서 약점을 노출하게 되고 말기 때문이다.
중국은 전략적으로도 자신들의 특징을 살려서, 전투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국가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외교 정책을 편성하는데 부차적인 도구로 군사력을 취급할 것이다. 중국은 이웃 국가들과 외교적, 경제적, 연결고리를 더 강화하여 이들 나라가 중국에 더 깊숙이 의존하도록 만들 것이다. 그리고 경제적 지렛대를 사용하여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 협력을 추구할 것이다. 이런시긍로 중국은 주변 지역에 영향력을 늘려나가는 한편 이들 나라와 미국의 관계를 약화시키고 싶어한다
확장적인 시간 개념을 가진 중국은 긴박한 문제와 오랜 시간이 걸리는 문제, 시급한 문제와 중요한 문제를 조심스레 구분한다. 미국 정치 지도자가 주요 외교정책 현안을 한 세대 동안 이른바 선반위에 올려두자고 제안하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덩샤오핑은 센카쿠/댜오위다오열도 분쟁에 대해 이 문제를 일본과 즉각적이기 보다는 장기적으로 해결할 것을 받아들였다.
뉴스 매체와 여론의 요구에 훨씬 더 민감한 미국 정치가들은 신속한 해결을 약속하는 중요 항목들의 머리글자를 똑같이 맞추어 나열한 정책 계획을 수립한다. 중국인들은 전략적으로 인내심이 강하다. 전체적인 상황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는한, 그들은 기다리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 미국인들은 스스로를 문제 해결 전문가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하나를 해결하서 나서 다음 것을 해결하는 식으로, 단기점 관점에서 여러 문제를 지금 당장, 그리고 제각각 해결해야할 사안으로 본다.
이렇게 다른 두나라가 지금, 세기의 무역전쟁을 펼치려 하고 있다. 겉보기엔 미국이 싸움을 걸었고, 중국이 맞불작전으로 나오는 구도다. 책을 보면 싸우는척 하다 악수하고 끝날것 같지는 않다.
많은 차이점들이 있음에도 미국과 중국은 적어도 한가지 점에서는 서로 비슷하다. 두나라 모두 극도의 우월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는 점이다. 두나라 모두 자기 나라가, 특별히 탁월한 나라라고 말그대로 엇비슷하게 견줄 상대가 없다고 본다. 무하마드 알리의 내가 최고다라는 말이야말고로, 미국인들의 우쭐거림을 제대로 표현한 말이지만, 인간 세계와 하늘을 잇는유일무이한 연결자를 자처하는 중국의 자기 인식 개념은 훨씬더 교만하다. 이 두 일인자의 충돌에는 고통스런 조정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중국이 해가 두개인 우주를 합리화하는게 더 어려울까? 아니면 기국이 또 하나의 혹은 어쩌면 더 우월한 초강국과 공존해야 함을 받아들이는게 더 어려울까?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나는 미국이 중국의 부상으로 달라진 환경을 어느정도는 인정해주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그게 해법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은 점점 강해지고 있는데, 아시아에서 미국이 계속 예전에 하던대로 하려 하는 건 합리적이지 않아 보인다. 중국의 파워를 인정하고 일정 부분 양보하는 모양새를 취하는게 순리가 아닐런지...
그러나 저자는 싱가포르 총리를 지낸 리콴유를 인용해,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는 미국의 능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중국이라는 강자를 인정하고 국제 관계를 인식해야 하는데, 아직은 그럴만한 역량이 부족하다는 저자의 지적이 책의 여기저기에서 눈에 띈다.
책을 읽으면서, 사드도 그렇지만, 미국이 북한과 대화를 시작한 것도 중국을 견제하려는 카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보다 강하게 하게 됐다.
중국은 서구 세력에 짓밟힌 치욕의 한세기를 잊고,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고 싶어한다. 높아진 위상만큼의 목소리를 내고 싶어한다. 그러나 미국은 아직 달라진 중국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듯 하다. 과거 소련한테 했던 것처럼 적당히 인정해주고 공존하는 하면서 큰틀에서 견제하는 전략을 펴기 보다는 힘의 논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 하다.
트위터에서 팔로우잉하는 다수 경제전문가들의 예상대로 미국은 이번 무역 전쟁에서 중국을 상대로 압승할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무역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영원한 승리일지는 의문이다. 체스와 바둑을 차이를 감안하면 시간은 중국의 편일 수도 있다.
지금은 달라진 중국의 위상이 반영된 새로운 국제 질서가 짜이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러려면 미국이 먼저 바뀔 필요가 있는데, 현실화될지는 현재로선 미지수다. 이래저래 한국을 둘러싼 국제 환경이 당분간은 만만치 않은 듯 보인다. 미중 갈등에서 한국은 고래 싸움에 낀 새우일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