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AI 헤게모니를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가 뜨겁다. 누가 이길까? 뚜껑은 열어봐야 알겠지만 그래도 많은 이들이 미국의 승리를 예상할 것 같다.
아무리 중국이라고 해도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이끄는 혁신을 뛰어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는 이들이 중국의 역전을 점치는 이들보다는 많을 것이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차이나 조직을 이끌었던 AI 전문가 리카이푸는 자신의 책 'AI 슈퍼파워'를 통해 중국의 역전 드라마를 예상하는 수준을 넘어 확신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미국 회사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중국인이 들고 나온 민족주의적 주장으로 볼수도 있지만 그는 자신의 책에서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리도 제시하고 있다.
그가 중국이 AI에서 미국을 잡을거라 보는 첫번째 이유는 AI 분야가 이제 발견의 시대에서 실행의 시대로 넘어왔기 때문이다. 위대한 깨달음이 아니라 이미 나와 있는 위대한 깨달음을 실전에서 활용하는 것은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발견의 시대에선 위대한 과학자들을 보유한 미국이 분위기를 주도했을지 몰라도 활용이 중요한 실행의 시대에는 중국이 유리한 고지에 서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인공지능계가 새롭게 선보이는 중요한 성과는 지난 십년의 기술 돌파구를 새로운 문제에 응용한 것에 불과하다. 정상급 연구자들의 작업에는 높은 기술과 깊은 지식이 필요하다. 복잡한 수학 알고리즘을 조정하고 대량의 데이터를 처리하고 신경망을 다양한 문제에 맞게 적응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대개는 박사급 수준의 전문지식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기술 발전은 딥러닝의 획기적 도약을 발판으로 삼은 점증적 향상이자 최적화다.
이런 연구가 가진 진정한 의미는 딥러닝의 놀라운 패턴 인식과 예측 능력을 질병 진단이나 보험 발행, 차량 운행, 중국어 문장을 그럭저럭 알아볼 수 있는 영어로 번역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 응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 응용이 일반 AI로 향한 전진이 딥러닝에서 지금의 성과를 뒤엎는 또 다른 돌파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지금의 실행의 시대이고 그런 시대에서 기업을 돈을 벌기 위해 재능 있는 기업가와 엔지니어, 제품 매니저가 필요하다.
어렵고 추상적인 AI 연구들은 상당수 완료되었다. 이제는 기업가들이 팔을 걷어 붙여야할 차례이다. 그들이 현장에 뛰어들어 알고리즘을 지속 가능한 사업으로 바꿀 때가 되었다. 실행의 시대가 왔다는 것은 수십년 동안 약속만 거듭하던 연구가 드디어 현실 응용이라는 결실을 맺고 있다는 뜻이다. 어른이 된 이후로 내내 고대해왔던 결과가 다가오고 있다.
실행의 시대가 되면서 AI 경쟁력에서 데이터가 갖는 존재감은 더욱 커졌다. 성패를 좌우하는 변수라는 것이 리카이푸의 주장이다.
실행의 시대에서 따라온 두번째 중요한 변화는 전문지식의 시대에서 데이터의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성공적인 AI 알고리즘에 반드시 필요한 세가지는 빅데이터, 연산력, 그리고 강력한-그렇다고 정상급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AI 알고리즘 엔지니어다. 딥러닝의 힘을 새 문제에 응용하려면 이 셋이 다 필요하지만 실행의 시대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데이터다. 연산력과 엔지니어의 능력은 일정 기준만 넘어서면 되지만 알고리즘 전체의 힘과 정확성은 데이터의 양에 따라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딥러닝에선 데이터는 과유불급이 없다. 특정 현상에 대해 접하는 데이터가 많을 수록 네트워크는 더 정확하게 실세계에서 패턴을 찾아내고 사물을 식별할 수 있다. 중급 수준의 AI 엔지니어가 설계했고 데이터를 아주 많이 얻은 알고리즘은 세계 최고의 연구자가 설계하고 데이터는 빈약한 알고리즘보다 더 훌륭하게 문제를 처리한다. 가장 똑똑하고 유능한 학자들이 모든 것을 독점하던 시절을 지나갔다. 세계 최고의 AI 연구자들이 주도해서 나오는 비약적 발전은 수십년에 한번에 불과하다. 그러는 동안 딥러닝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데이터의 가용성을 추진력으로 삼아 세계 곳곳에서 산업을 무수히 교란하고 와해할 것이다.
중국이 미국을 앞질러 제1의 데이터 생산자가 된지 오래다. 중국은 데이터의 양도 양이지만 제품과 기능 면에서 다른 곳에서는 볼수 없는 대체 우주를 이루는 중국의 독특한 테크놀로지 생태계 덕분에 수익성 높은 AI 기업을 구축하는데 필요한 맞춤형 데이터도 생산할 수 있다. 사용자에 대한 풍부한 데이터는 실행의 시대에는 가치를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귀중한 것이다. 대체 인터넷 우주는 기업에게 상세한 이용자 취향 정보라는 보물창고를 안겨주고, 기업은 이것을 딥러닝 알고리즘과 결합해 재무감사에서 도시계획에 이르기까지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이 우주는 당신의 검색이나 좋아요, 온라인 구매를 판독하는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능력을 한참이나 앞서고 있다. 이 귀중한 실세계 데이터 보물창고는 중국 기업이 AI 서비스를 개발하는데 무엇보다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실행의 시대 중요해진 데이터를 갖고 뭔가 만들어낼 기업가 집단이 중국에는 매우 풍부하다는 점도 리카이푸가 강조하는 포인트.
오늘날 AI 실용화에는 네가지 인풋이 있어야 한다. 풍부한 데이터, 굶주린 기업가, AI 과학자, 그리고 AI 친화적인 정책 환경이다. 이 네범주에서 중국과 미국의 상대적 관점을 관찰하면 앞으로 AI 질서에서 등장할 힘의 균형을 예측할 수 있다. 발견의 시대에서 실행의 시대로의 변화, 전문 지식의 시대에서 데이터의 시대로의 변화는 중국의 약점을 최소화하고 강점을 증폭시키며, 운동장을 중국쪽으로 기울이고 있다. 중국이 부족한 세계 최정상 연구진의 중요성이 줄어들었고 중국이 풍성하게 가지고 있는 또 다른 핵심 자원인 데이터의 가치가 극대화되었다.
실리콘밸리 기업가들은 미국에서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장담하는데, 실리콘밸리 기업가들의 노력은 태평양 넘어 경쟁자들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중국에서 성공한 인터넷 기업가들은 세계에서 가장 무자비한 경쟁의 장을 극복하고 지금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이다. 그들이 터전으로 삼은 곳에서는 속도가 생명이고, 모방은 당연시되는 관행이며, 경쟁자들은 시장에서 이기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중국의 스타트업 무대는 원형경기장의 검투사들처럼 매일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곳이다.
이런 치열한 싸움에서 이기려면 다른 수가 없다. 끊임없이 제품을 개선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업 모델을 혁신하고 해자를 둘러 회사를 단단히 보호해야 한다. 경쟁의 무기가 참신한 아이디어 뿐이라면, 어느샌가 아이디어는 모방당하고 중요 직원들을 빼앗기고 VC 투자를 받은 다른 경쟁사들에 의해 시장에서 쫒겨날 것이다. 혼탁한 시장과 치촐한 술수가 판을 치는 중국 카피캣 시대는 의심스러운 기업들도 탄생시켰지만 세계에서 가장 민첩하고 시류를 잘 읽고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 기업가 세대가 탄생하기 위한 인큐베이터도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