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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light Mar 12. 2017

르네상스의 새벽을 깨운 책 사물의본성에관하여

1417년 근대의 탄생 르네상스와 한 책 사냥꾼 이야기를 읽고

기원전 50년께 쓰여진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본성에 관하여'는 르네상스의 새벽을 깨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책으로 꼽힌다.


중세 수도권 지하 도서관 흙먼지 속에 있던 사물의본성에 관하여는 15세기 이탈리아 고서 수집가 포초 브라촐리니에 의해 발견되어 필사됐고, 지식인들 사이에서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것은 인간 중심의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 가치 부활을 외치는 르네상스 운동으로 이어졌다.


르네상스를 촉발시켰다는 것으로 예상할 수 있지만,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는 당시 교황을 중심으로하는 기독교 세계에서 보면 세상에 있어서도, 있다고 해도 있다는 것이 알려져서는 안되는, 그것도 안된다면 있기는 해도 신뢰 받을 수 없는 존재로 남아 있어야 하는 책이었다. 


기독교의 핵심 가치를 부정하는 에피쿠로스주의를 대변했기에, 에피쿠로스주의를 땅에 묻고 중세 권력의 중심에 섰던 기독교와는 같은 하늘 아래 함께 있는 불가능했다. 


교황이 사물의본성에 관하여를 금서로 지정하고, 기독교 이데올로그들을 앞세워 논리적으로 반박하려 했던 것도 책이 신뢰를 얻을 경우 기독교 체제 기반이 뿌리채 뒤들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도대체 무슨 책용이 담겼일래 사물의본성에 관하여는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을까? 


포초 브라촐리니가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발견하고, 그것이 세상에 미친 영향을 다룬 책 '1417년 근대의 탄생, 르네상스와 한 책 사냥꾼 이야기'를 보니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에는 지금봐도 진보적인 메시지들이 넘쳐난다. 기독교가 책의 확산을 막으려 했던 것도 이해 될 정도다.


핵심적인 내용들을 공유해 본다.


-사물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입자들로 만들어진다.

-사물은 이런 씨앗들로부터 형성되고 해체의 과정을 거쳐 다시 씨앗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런 씨앗들은 불변하며 분해할 수 없고, 눈에 보이지 않으며, 그 수가 무한하다. 이들은 끊임없는 운동하면서 서로 충돌하고 서로 결합하여, 새로운 모양을 이루며 다시 갈라지고 결합하기를 반복한다.

-우주에는 창조자도 설계자도 없다. 개개의 입자는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파괴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세상의 질서와 무질서의 반복은 어떤 신성한 계획의 산물이 아니다. 신의 섭리는 환상일 뿐이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물질에 내재하는 포괄적인 계획이나 지적인 설계를 겉으로 구현한 것이 아니다.

-사물은 일탈의 결과로 나타난다.

-일탈의 자유의지의 원천이다

-자연은 실험을 멈추지 않는다

-우주는 인간을 위해서 혹은 인간을 중심으로 해서 창조된 것이 아니다. 

-인간은 특별하지 않다. 인간은 물질계에서 벌어지는 훨씬 더 큰 물질 순환 과정의 일부일 뿐이다. 이 과정을 통해서 인간은 다른 유기체뿐만 아니라 무기물과도 연결된다. 인간을 비롯한 살아있는 생명체를 구성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입자들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어떤 신비로운 근원으로부터 나온 것도 아니다.

-인간 사회는 평화롭고 풍부하던 황금시대에 시작된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원시의 전쟁 속에서 시작되었다.누군가가 꿈꿔온것처럼 모든 것이 풍족했던 낙원 같은 시대는 없었다. 루크레티우스의 냉담한 표현에 따르면 초기 인류 사회의 사망률이 매우 높기는 했지만 전쟁과 난파, 과식 때문에 치솟고 있는 당대의 사망률 만큼 높지는 않았다고 한다.

-영혼은 죽는다. 죽음의 순간에 영혼은 포도주의 향취가 날아가고 향수의 섬세한 향기가 공기중으로 흩어지는 것처럼 사라진다. 

-사후 세계는 없다. 일단 영혼이 육신과 함께 죽는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 사후세계에서의 처벌이나 보상 같은 것은 있을 수도 없다는 것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땅에서의 삶이 인간 존재가 가지고 있는 전부인 것이다.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 당신이 죽게되면 이제 당신은 더 이상 쾌락도 고통도 염원할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다.

-모든 체계화된 종교는 미신적인 망상이다. 이 망상의 근원은 깊게 뿌리밖힌 인간의 염원과 공포, 그리고 무지에 있다. 인간은 소유하고 싶은 권력과 아름다움, 완벽한 안전에 대한 이미지를 투영하여 그에 따라 신들의 이미지를 만들고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은 스스로의 꿈에 노예가 되고 만다.

-종교는 일관되게 잔인하다. 종교는 항상 희망과 사랑을 약속하지만 그 깊은 내부에 근본적으로 깔려 있는 핵심은 잔인성이다. 그렇게 때문에 종교는 응징의 환상을 불러일으키며 어김없이 추종자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한다.

-천사니, 악마니, 귀신이니 하는 것들은 없다. 이런 종류의 비물질적인 영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생의 최고 목표는 쾌락의 증진과 고통의 경감이다. 인생은 행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자신과 벗의 행복이라는 이 목적을 이루려는 것 이상으로 더 고귀한 윤리적 목적은 없다. 국가에의 충성, 신 또는 지배자의 영광, 자기 희생을 통한 고된 덕의 수행 같은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여타의 주장은 모두 부차적인 것을 가장 중요하다고 착각한 것이거나 기만인 것이다.


내용을 보면 근대는 고대의 업데이트 버전이라는 것이 두드러진다. 그리고 지금의 세상이 과연 고대 사회를 떠받친 운영 시스템보다 낫다고 할 수 있는 것인지 묻게 된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우리는 고대를 보다 많이 추억해야하지 않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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