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 차원에서 틈틈이 해외 전문가들이 블로그나 미디어 그리고 책에서 쓴 글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번 포스팅도 그중 하나고요. 거칠고 오역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제대로 번역되지 않은 부분은 확인 주시면 반영토록 하겠습니다. 이번 글은 미디엄 원제로에 실린 클럽하우스에 대한 글을 정리한 것입니다.
클럽하우스는 벤처 캐피털 세트의 축하 속에 지난해 출시된 배타적인 그룹 보이스 채팅 앱이다. 이번 주 엘론 머스크와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가 다른 기술 전문가들과 함께 대화에 들어와서 헤드라인이 쏟아졌다.
로빈후드 CEO와 얘기를 주고 받은 엘론 머스크의 클럽하우스는 클럽하우스 앱에 대한 사용자들의 쇄도를 유발했다고 로이터는 보도했다. 플랫포머의 케이시 뉴턴은 "클럽하우스의 순간이 왔다"고 선언했다. 두 카메오들은 앱의 용량을 혹사시켰다. 저커버그의 등장은 잠깐 동안 앱을 부순 것으로 보인다.
반발 또한 있었다. 디인포메이션 편집장인 제시카 레신은 이들 이벤트 오거나이저들은 많은 저널리스트들이 참석하는 것을 막았다고 지적했고 뉴욕타임스 기자인 테일러 로렌즈는 그들이 특히 여성 저널리스트들을 막았다고 암시했다.
반면 트위터는 조만간 그들도 자신들의 순간을 가질 것이라는 희망으로 스페이스로 불리는 라이벌 기능을 테스트하고 있다. 타깃 오디언스가 상당히 겹치는 두 소셜 미디어 회사들간 마지막 대결을 위한 준대가 준비되고 있다. 그러나 트위터와 클럽하우스의 설립 아이디어는 그들 각각의 제품들이 어떻게 진화하는지 측면들에서 봤을 때 근본적으로 다르다.
패턴
오픈 vs 클로즈드 소셜 네트워크(Open vs. closed social network)
10여 년 전에 트위터는 일부 전문가들에 의해 아랍의 봄 같은 운동들에서 민주화하는 힘으로서의 역할을 했다는 칭송을 받았다. 이 서사는 그 이후로 복잡해지고 혼란스러워졌고 많은 반박을 받았다. 당신은 요즘 트위터, 페이스북 그리고 다른 소셜 미디어들은 민주주의를 조장하기 보다는 파괴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여기에는 또 다른, 다시 말해 트위터가 적어도 어느 정도는 민주적이라는 광범위한 감정이 있다.
트위터 플랫폼의 구조는 기본적으로 평평하고 개방적이다. 꽤 많은 측면에서 그렇다. 누구나 참여해서 트윗을 하고 누구에게나 답글을 달 수 있다. 최소한 대규모 오디언스에 도달할 수 있는 원격의 기회가 있다.
트위터는 많은 부분 집단 지성, 또는 군중 규칙을 기반으로 더 어두운 관점을 취한다는 측면에서 느슨하게 민주적이다. 트위터는 그것을 누가 썼느냐, 누가 리트윗을 하고 좋아요를 눌렀는지에 상관 없이 가장 관여가 큰 트윗을 증폭시킨다. 이것은 팔로우어 42명을 가진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사람이 4,200만 팔로우어를 가진 계정에 비난하는 답글로 트윗을 하고, 오리지널보다 많은 좋아요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이것은 #미투나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 같은 불뿌리 운동들이 공식적인 게이트키퍼의 승인 없이도 주류 청중들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개구리 아바타를 가진 봇들과 트롤들도 인종주의와 여성혐오에 대한 메시지들이 만연하게 할 수 있다.
실제 생활에서 권력과 높은 사회적인 지위를 갖는다고 해서-당신이 어디를 가든 위엄있는 존경, 존중, 특권-반드시 트위터에서 같은 대접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 당신은 일반 친구들보다 많은 팔로우어들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당신은 당신의 나쁜 농담을 좋아하고 당신의 은총을 구하기 위해 당신에게 아낌없이 아부하는 아첨꾼들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은 등 뒤에서 타깃이 될 수도 있다. 당신 입장에선 어떤 허위 진술이 가차 없이 해부되고 당신이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 의해 조롱거리가 될 수 있다. 당신이 비율이 맞춰지거나 한 나쁜 트윗에 근거해 트렌딩 토픽의 앞에 있을 수도 있다. 당신이 이걸 멈출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트위터가 진정으로 민주적 또는 평등주의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예전에는 그랬을지 몰라도 완전히 좋은 것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없다. 파란 체크 마크, 팔로우어 숫자, 다양한 형태 플랫폼 조작과 편향은 권력 역학과 불평등을 강화한다. 그리고 행동 주의자들이 권력에 대해 진실을 말하거나 코미디언이 멍청이의 위선에 대해 혼을 내주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의 역학 일부는 또한 집단 공격, 가짜 정보, 영향력을 미치려는 정부 지원 캠페인을 위한 서식지가 되게 한다.
일상적인 수준에서 이것들은 쉽게 트위터를 무례한 사람들이 많고, 가식, 내분을 갖추고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분열을 초래하는 장소로 만든다.
나는 클럽하우스와 대조적으로 보기 트위터를 이같은 방식으로 트위터에 대한 틀을 잡는다. 트위터가 평평하고 오픈돼 있는 것과 많은 같은 축을 따라 클럽하우스는 위계적이고 닫혀 있다. 민주적이라기 보다는 과두 체계다. 이것은 거의 확실하게 의도적이고 일부 사람들에게 매력으로 다가가는 큰 부분이다.
배타성은 시작부터 클럽하우스의 테마였다. 클럽하우스 앱은 2020년 4월 베타 테스트 모드로 출시됐다. 어느 정도 혼돈과 트위터와 다른 플랫폼들에서의 소음 없이 서로 얘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약속으로 트위터나 테크 투자자들, 명사들을 얼리 어딥터들로 유혹했다.
클럽하우스는 사용자가 만든 그룹과 토론 패널들에 기반하고 있다. 출시 후 거의 1년 만에 클럽하우스는 크고, 빠르게 성장하고, 지속적으로 헤드라인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클럽하우스는 아직 비공개 상태고 들어가려면 기존 멤버에 의해 초대를 받아야 한다. 따라서 일부 집단들에선 클럽하우스에 있다는 것 만으로 지위를 상징하는 중요한 존재로 남아있을 수 있다. 클럽하우스는 또한 iOS에서만 이용할 수 있다.
앱 크기를 제한하는 것은 클럽하우스 같은 초기 단계에선 나름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이것은 회사가 제품이 황금시간대에 가기전에 꼬인 점들과 문제들을 소규모 단계에서 하나의 운영체제에서 해결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이 경우 베타성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배타성은 클럽하우스 역할의 핵심이다. 클럽하우스 앱은 룸(room)들을 중심으로 개발된다. 룸들은 그룹 채팅이다. 특정 시간대에 특정 주제 중심으로 특정 사용자들에 의해 소집된다. 클럽하우스에는 또한 클럽이나 프라이빗 그룹들도 있다. 클럽이나 프라이빗 그룹의 설립자들은 멤버십 조건을 설정하고 집행할 수 있는 힘을 부여받는다. 룸들은 콘셉트와 디자인 두 가지 측면에서 산업 컨퍼런스에서 열리는 전문가 패널과 눈에 띄게 비슷한 점들을 갖고 있다. 너무 자주, 이들은 모두 남성들이다.
클럽하우스는 현재 개발 시점에서 "SXSW가 앱이라면 어떨까요?"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처럼 보인다.
빠르게 성장하는 또 하나의 음성 기반 플랫폼인 디스코드처럼 이같은 구조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틱톡, 트위터 등 선도적인 소셜 플랫폼들과 달리 대화에 좋다. 이것은 다나 보이드(danah boyd)가 말하는 맥락의 붕괴(context collapse)가 생기지 않도록 경계한다. 이곳에서 당신은 공유된 특정 가정 세트들을 가진 특정 사람들 그룹에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당신은 또한 당신의 말을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 다양한 사람들에 다가갈 수 있다. 라이브 보이스 상호 작용 미디어는 또한 트위터와 달리 그 자체로 정상적인 인간 상호 작용에서 암기하고 있는 사회적인 공손함을 부여한다.
한 명 이상의 모더레이터들에 의해 운영되는 각 룸에서는 위계적인 역할의 분리가 있다. 모더레이터들은, 무대을 소유하고, 누가 언제 말할지를 통제한다. 당신이 청중으로 참여하고 있고 어떤 것에 대해 말하고 싶다면 손을 들고 그들이 당신을 부를 것이라고 기대해야 한다. 모더레이터들은 누구나 부를 필요가 없다. 그들이 당신이 하는 말을 듣고 싶지 않고, 좋아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리면 마이크로폰을 뮤트(Mute: 무언의)로 할 수 있다. 당신을 방에서 내보낼 수도 있다.
청중들 내에서도 위계가 있다. 한 명 이상 모더레이터들이 팔로우하는 사람들은 위에 보일 수 있다. 첫 번째 줄 자리와 같은 급이다. 이렇게 되면 모더레이터들에 의해 불려질 가능성이 높다. 비디오 없는 하우스파티 처럼 그룹 채팅처럼 기능하는 방을 갖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것들은 지금까지 클럽하우스의 주요 그림은 아니다.
대화에 대한 이 정도 수준의 통제는 클럽하우스를 엘리트주의처럼 느끼게 할 수 있다. 차별적인 것으로도 보일 수도 있다. 지난주 클럽하우스는 엘론 머스크나 마크 저커버그를 포함하는 테크 타이탄들의 대화로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일반적으로 여전히 다른 테크 중량급 인사들이 관리하는 다른 기술 중량급 인사들과의 대화다. 머크스와 저커버그는 로빈후드의 블래드 네테브와 함께 굿타임쇼로 불리는 방에 나타났다. 클럽하우스 리드 투자사자인 안드레센 호로위츠가 최근 고용한 업계 베테랑이 마련한 방이었다.
안드레센 호로위츠는 동시적인 것은 아니지만 부분적으로 마크 안드레센 같은 리더들의 공개적인 페르소나를 기반으로 명성을 얻었다. 마크 안드레센은 트위터에서 자신의 비판자들을 많이 차단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테크 저널리스트들이 특히 그렇다. 나는 안드레센이 차단한 많은 트위터 사용자는 아니다. 이 렌즈를 통해 클럽하우스는 트위터에서 비판하는 이들에 의해 지친 산업의 캡틴들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 편안하고 안전한 공간 유형으로 보기 쉽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 단순하다. 클럽하우스는 또한 많은 방식으로 하찮은 존재로 느껴지게 하는 기분이 드는 사람들과 트위터와 같은 플랫폼에서 견해가 아니라 정체성 때문에 학대와 공격에 직면한 사람들을 위한 플랫폼으로서의 틈새도 발견했다.
억만장자들이 저널리스트들을 차단하는 것과 같은 통제는 흑인 작가들, 배우자 학대의 희생자들이 다른 곳에서는 결코 없는 방식으로 그들의 견해를 공유하는 것을 편안하게 한다.
이것은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긴장을 약한 풀게 하고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한다. 레벨의 내 동료들은 11월 "누군가가 클럽하우스를 작동하게 한다면 그것은 흑인들이다"고 썼다.
이것은 통제된 환경의 고결한 측면이다. 트위터는 스페이스 아이디어로 이같은 환경을 잡으려고 시도하고 있는 듯 보인다. 스페이스는 12월 프라이빗 베타로 공개됐다. 트위터는 클럽하우스와 대조적으로 스페이스에 대해 여자들과 하찮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커뮤니티가 주도하는 토론을 위한 천국으로 포지셔닝하고 있다.
이것은 먼 길을 갈 수도 있다. 괴롭힘과 반유대주의에 대한 클럽하우스의 이미 문서로 기록된 문제들은 배타성만으로는 플랫폼이 인도주의 적으로 느껴지게 한다는 보장은 하지 못한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그것의 설립 윤리와, 리더들의 구성, 얼리어답터들도 역시 중요하다. 클럽하우스는 초기 대체로 남성 테크 인사이더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것은 초기 성장에 기적적인 역을 했다. 빠른 속도로 광범위해지고 있다는 신호가 있지만 이것은 장기적으로 매력을 제한할 수 있다. 클럽하우스앱은 중국에서도 유행했다. 그리고 금요일 밤 배우 젠다야와 감독인 샘 레빈슨이 그들의 새 넷플릭스 영화 말콤&마리를 홍보하기 위해 출연했다.
트위터는 반면 위계적인 대화 기반 제품을 한 플랫폼을 가져오는데 애를 먹을 수 있다. 그들의 핵심 제품은 그 반대다.
스페이스와 클럽하우스 간 전투는 누가 이기느냐에 상관 없이 흥미로울 것이다. 두 제품을 떠받치는 아이디어는 지속성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안전해 보인다. 기존 소셜 미디어 플랫폼들은 많은 것들에서 성공했다. 그러나 자발성과 즉시성을 위한 경로로서 공유되는 관심사에 대한 인간들의 대화와 관련해서 이들 플랫폼들은 지금까지 많은 것들에서 실패했다.
이 빈공간을 해결하려고 시도하려는 마지막 스타트업 파도는 일대다 방송 모델을 가진 라이브 비디오에 초점을 맞췄다 미어캣, 페리스코프, 일정 부분 트위치가 여기에 포함된다. 그러나 이것들은 대화 문화를 전혀 해결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들 서비스는 항상 시간, 수단, 카리스마를 갖추고 온 카메라 개성을 보유한 콘텐츠 크리에이터들 풀을 제한했다. 라이브 보이스 대화를 중심으로 개발된 앱을 위한 적극적인 참가자들의 잠재적인 풀은 보다 큰 것처럼 보인다.
트위터의 약속과 위험은 이것이 오프라인에 존재하는 경계와 소셜 구조를 폭발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명사와 팬들 사이의 경계, 그리고 아마 그것보다 더 명사들과 증오자들의 경계다. 그리고 클럽하우스의 약속과 위험은 이들 오프라인 경계와 소셜 구조를 어떤 측면들에선 복원한다. 좋든 나쁘든 양측이 보다 친밀하고 궁극적으로 덜 파괴적인 공간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