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에서 이런저런 인센티브는 사람들에 동기를 부여해 궁극적으로 행동의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 의미로 통한다. 큰 틀에서 보면 인센티브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인센티브에 대해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좋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조너선 앨드리드가 쓴 '경제학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를 보면 인센티브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일어난 것은 경제학에서 자유시장 주의가 기반을 확대하는 과정과 관련이 있다. 자유시장 경제학이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한 이후로 많은 경제학자가 인센티브의 열성적인 지지자가 되었다.
"예컨대 괴짜경제학의 저자들은 경제학자는 인센티브를 사랑한다. 경제학자는 적절한 인센티브 프로그램을 설계할 재량권이 주어진다면 세상의 어떤 문제라도 바로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열변을 토했다. 대부분의 경제학 교과서는 시장의 장점을 극찬하지만 경제학을 인센티브학이라고 정의하는 경우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일상의 삶에서는 시장과 인센티브의 경계가 모호한 경우가 적지 않다."
전가의 보도처럼 통하는 인센티브가 잘 안먹히는 케이스는 많다. 헌혈도 그중 하나다. 인센티브 관점에서 보면 사람들이 돈을 받고 혈액을 팔 수 있도록 하면 혈액 공급량이 늘어날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번에도 1968년이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 당시 영국은 자국의 국민 보건 서비스를 무척 자랑스러워했고 경제에서는 케인즈주의를 추종하며 정부의 간섭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따라서 영국 경제문제연구소가 발표한 한 보고서의 결론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혈액을 국가가 관리하면 병원의 급증하는 혈액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할 것이란 예측이었다. 따라서 공급을 늘리기 위해서는 피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금전적으로 보상을 해야 한다는 제안이 있었다. 그 제안은 지체 없이 거부되었지만 리처드 티트머스라는 사회학자가 그 제안을 비판하는 관점에서 '선물관계'를 발표했다. 티트머스는 영국과 여러 주에서 혈액 공급을 위해 다양한 형태의 금전적인 인센티브 제도를 운영하는 미국의 혈액 공급 통계를 비교했다. 티트머스가 찾아낸 결과에 따르면 혈액을 제공하는 사람에게 금전적으로 보상하면 오히려 공급이 감소할 뿐만 아니라 혈액의 품질도 떨어졌다. 매혈하는 사람은 팔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병력을 숨기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들은 이같은 결과를 받아들이지는 않은 모양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케네스 애로와 로버트 솔로는 선물관계를 자세히 검토했다. 그들은 티트머스의 결론에 동의하지 않았고 금전적 인센티브를 제공함에도 오히려 혈액 공급량이 줄어드는 이유를 알아낼 수 없었다. 다른 경제학자들도 거의 유사한 반응을 보였다.
저자는 세상을 인센티브 중심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주변에서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보면 우리는 더 이타적이 된다. 그러나 인센티브는 다른 사람의 동기를 읽어내기 힘들게 만든다는 것이 문제이다. 가령 누군가 혈액을 제공한 후에 금전적 보상을 받는 것을 목격한다면 나는 그를 이타적인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고 돈 때문에 그렇게 행동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인센티브는 다른 사람의 이타심을 곡해할 가능성을 낳고 그 때문에 나 자신도 이타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줄어든다. 인센티브를 중단한다고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시 다른 사람을 모방하며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인센티브를 없애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고 그가 정말 이타적인 사람이란 실증적인 증거가 필요하게 된다.
요약하면 현금 제공은 헌혈자에게 이타적이란 자긍심을 높여주기 힘들고 주변에서도 순수한 이타심에서 헌혈을 하는 사람을 목격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헌혈자를 망설이게 할 수 있다. 금전적 보상이 있을 때 우리는 오히려 더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이기적인 태도가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있다. 헌혈자가 순전한 이타심이 아니라 시민의 의무나 공공심에서 동기를 부여받을 때도 유사한 결과가 적용된다. 금전적 인센티브를 받으면 시민으로서 의무를 다하는 것이란 자긍심을 느끼기 힘들고 주변 사람들에게서도 공공심을 목격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더 이기적이 된다. 이타심이나 공공심에서 비롯된 행동은 우리의 자긍심을 높여준다.
얼마전 읽은 책 규칙없음을 보면 넷플릭스에서는 성과급이나 보너스와 같은 인센티브가 없다고 한다. 성과급이나 보너스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창의적인 일과는 상극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냥 월급을 많이 주는게 낫다는 것이다. '경제학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에서도 유사한 앵글이 엿보인다.
자긍심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행동의 자유, 즉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자유이다. 여기에서 인센티브의 도입이 역효과를 낳을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의 동기에 순수하더라도 우리 행동을 통제하고 조종하려는 것은 분명하다. 인센티브가 자율성에 미치는 역효과에 대해서는 의료부터 코딩까지 숙련된 직업과 직종에서 깊고 넓게 연구되고 있다. 경험이 많은 외과의사와 변호사, 학자와 과학자에 대해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하는 걸 강력하게 반대하는 주목할만한 증거가 많다. 인센티브가 전문가적 판단에 따라 행동하는 자유를 방해하고 해당 직종에서 기대하는 행동 규범과 충돌한다는 것이 결정적인 이유이다.
최근에야 경제학자들은 인센티브가 일부 직종에서 무척 신중하게 사용되어야 한다는 걸 받아들이기 시작했지만 인센티브 문제가 훨씬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데는 여전히 동의하지 않는다. 또한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자율성을 표현하려고 일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정상적인 경우에는 인센티브가 노동자의 자율성과 충돌하지 않는다고 추정하는 경제학자가 여전히 많다. 노동자는 그저 돈을 벌려고 일을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