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다하는 사실이지만 19세기 중반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국가로 탈바꿈했고 중국과 한국은 나름 이런저런 시도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특히 엄청난 인구와 국토 그리고 나름 자원을 갖춘 청나라가 서구 열강에서 배우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상당한 투자를 진행했다. 하지만 청일전쟁에서 일본에 패했고 20세기 벌어진 중일전쟁에서도 많은 피해를 봤다.
썬킴의 거침없는 세계사를 보면 중국도 아편전쟁에서 패한 후 개혁 조치들을 내놨다.
1, 2차 아편전쟁으로 나라가 거덜나고 태평천국 운동으로 나라가 아수라장이 된 중국입니다. 이대로는 정말 안되겠다 싶었는지 나름대로 개혁을 시도합니다. 바로 2차 아편전쟁 직후인 1861년년에 시작된 양무운동입니다. 여기서 양무는 서양에 관련된 업무라는 뜻인데 간단히 말해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는 운동으로 보면 됩니다. 먼저 중국 역사상 최초로 외교부를 세웠답니다. 이 시도에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중국은 지금까지 수천년 동안 천조국 노릇을 하면서 주변 제후국들이 조공을 갖다 바치면 받아먹는 재미로 살아온 나라거든요. 다른 나라와 동등한 외교 관계 따위는 없었답니다. 그런데 이제 외국과 동등한 외교 관계를 담당하는 외교부를 둔 것이죠. 그리고 유롭과 미국에서 국비 유학생들을 많이 보냅니다. 주로 군사학과 무게 제조법을 배워오게 했고요. 아편전쟁때 서구 열강과 군사력 차이를 뼈저리게 느꼈던 것이죠.
하지만 결과적으로 양무운동은 실패로 끝이 난다. 양무운동과 메이지유신에 대한 저자의 비교를 보다 보면 잃을 거 없는 변화는 뜻한 바를 이루기 어려운 것 같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된다.
일본의 근대화 과정과 메이지 유신을 비교해볼게요. 일본은 정말 죽기 아니면 살기로 국가의 기초부터 다 뜯어고치는 진정한 개혁을 했고 또 성공했어요. 국가를 한번 해체했다가 다시 조립하는 과정을 거쳤죠. 그래서 급속도로 발전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중국의 양무운동은 그냥 수박 겉핥기로 끝납니다. 즉 부패하고 무능한 황제와 황실, 그리고 관리들은 놔두고 대충 군사조직 정도만 손본겁니다. 게다가 양무운동 자체를 청나라 황실이 주도했는데, 스스로 물러나기 쉽지 않죠. 어떻게 얻은 밥그릇인데, 그걸 쉽게 포기하겠어요. 대충 개혁하는 척만 하고 서양에서 최신 대포나 사오는 식으로 그냥 진행한 겁니다.
반면 메이지 유신은 당시 에도막부 정권 자체를 뒤집어엎었죠. 청나라는 이 정도의 공을 들이지 않은 겁니다. 이 양무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걸 보여준 대표적인 예가 1894년 청일전쟁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개역을 한 신 일본군과 나름 양무운동으로 개혁하고 신무기로 무장을 한 청나라군이 우리나라 땅에서 벌인 청일전쟁 말이지요. 그 결과는 청나라의 참패로 이어졌고요.
비즈니스 판을 보면 어떤 기업은 변화에 성공하고 또 어떤 기업은 실패한다. 나름 이유가 있을 텐데, 양무운동 스타일이냐 메이지유신 스타일이냐로 일정 부분 구분이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