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세계를 현실처럼 만든다는 의미를 많이 내포하고 있는 메타버스에 대한 테크 업계 관심이 높다.
가상 세계에 현실감을 부여하기 위한 시도들도 이어진다. 지금은 쉽지 않겠지만 시간이 좀 더 흐르면 가상 세계에서 진짜 사람 같은 가상 인간을 만날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그럴듯하게 들린다.
더글러스 러시코프가 쓴 책 대전환이온다를 보면 다른 건 몰라도 가상 세계에서 진짜처럼 보이는 가상 인간을 만드는 시도는 환영받기 어려워 보인다.
이런 하나하나의 개선 사항들이 바라는 궁극의 시뮬레이션은 너무 똑같아서 실물과 구분이 안되는 영화, 가상현실 체험, 로봇이다. 다행히도 그 목표는 절대로 달성되지 않을 것이다. 디지털 시뮬레이션이 향상될 수록 시뮬레이션과 현실 세계를 구분하는 인간의 능력도 향상될 것이다. 우리는 기술 기업들이 시뮬레이션을 발달시키는 속도보다 빠르게 우리의 감각 기관을 발달시키려고 열심히 경주를 펼치고 있다.
애니메이션 제작자와 로봇 연구자들이 가장 따라하기 어려운 것은 살아 있는 인간이다. 만들어진 인물이 실제에 너무 가까우면, 다시 말해 우리를 완전히 속일 만큼은 아니지만 어디가 다른지 콕 집어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실제에 너무 가까우면 우리는 불쾌한 골짜기라고 알려진 불안 상태에 빠진다.로봇 연구자들이 이 현상을 눈치 챈 것은 1970년대 초지만 영화 제작자들이 이 문제에 마딱뜨린 것은 1980년대 말이다. 영화 제작자들이 사람의 아기가 등장하는 짧은 컴퓨터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시사회를 했는데 그 시사회에 참석한 관객들이 불쾌함과 분노를 드러냈던 것이다. 그들이 수많은 디지털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도 장난감이나 로봇, 자동차를 주제로 삼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런 것들을 꺼림칙한 기분을 자극하지 않으니 오히려 설득력 있게 만들기가 쉬운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거의 비슷하게 만들었다고 해도 미세한 것까지 사람처럼 구현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미세한 차이가 오히려 사람들을 더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는 지적도 눈길을 끈다.
인간과 비슷한 것을 봤을 때 어느 정도 호감도가 높아지다가 일정 수준에 다다르면 우리는 현기증이 인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람의 얼굴에 드러나는 미묘한 신호를 읽어내고 거기에 반응하기 위해 수십만 년간 우리의 신경계를 정밀히 조정해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군가 미소를 지으려고 눈이 가늘어 지거나 볼에서부터 이마까지 얼굴이 발그레해지는 것을 알아챘다. 그리고 이런 생물의 신호가 없다는 사실 또한 금방 알아챌 수 있다. 시뮬레이션은 내가 상대하는 것이 살아 있는 물체가 아니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소름 끼칠 수 밖에 없다.
현실 세계에서도 이렇게 가짜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차를 타고 시골길을 가다가 문에 말을 묶어 놓는 고리가 있고 식민지 시대 특유의 기둥까지 세워져 있는 가짜 농장을 봤을 때 바로 그런 느낌을 받는다. 또는 라스베이거스의 스카이라인과 디즈니월드의 골목길이 묘하게 닮았을 때도 그런 기분이 든다. 대본에 적지 그대로 줄줄 외기만 하는 세일즈맨과 어떻게든 대화를 시도해 보려고 할 때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