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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light Nov 26. 2023

일본 반도체에 대한 미국의 위기감과 삼성전자의 승리

삼성이 80년대초 메모리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기로 한 것은 회사 운명을 바꾼 지금도 세긱의 결정으로 불리운다. 무모한 도전이라는 평가들이 쏟아졌지만 삼성은 결국 해냈고 지금은 세계 최대 메모리 반도체 회사가 되었다. 


삼성이 오늘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건 물론 삼성이 잘했기 때문이겠지만 국제 관계 이슈도 나름 영향을 미쳤던 듯 하다.


국제 관계(IR) 전문가 크리스 밀러가 쓴 칩워에 따르면 일본 반도체 산업의 공세를 견제헤야 한다는 미국의 위기감이 삼성에게는 유리하게 작용했다. 지금 벌어지는 미중 갈등과는 양상이 달랐다.


1970년대 말과 80년대 초 이병철은 도시바나 후지쓰 같은 기업이 D램 사장을 차지하는 모습을 보며 반도체 산업에 뛰어들 기회가 오기 만을 기다렸다. 한국은 이미 미국과 일본에서 만든 칩의 조립과 패키징을 아웃소싱하는 중요 장소였다. 게다다 미국 정부는 1965년 한국과학기술원 창립에 도움을 주었고 미국의 최고 수준 대학에서 공부하거나 미국에서 교육 받은 교수에서 훈련 받은 한국인 역시 늘어났다. 하지만 이렇게 숙련된 인력이 있다 해도 기본적인 조립에서 첨단 반도체 제조로 뛰어 넘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삼성은 이전에 단순한 반도체 작업에 손을 댔다가 수익ㅇ르 내지 못하고 더 나은 기술을 확보하지도 못하며 고전한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1980년대초 이병철은 환경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겼다. 실리콘밸리와 일본 사이에서 벌어진 처절한 D램 경쟁이 그 변화의 시작이었다. 그 무렵 한국 정부는 반도체를 우선 사업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삼성의 미래를 숙고하던 이병철은 실리콘밸리의 성공을 정확히 모방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백만 달러 이상의 자본 확충이 필요한데 아직 제대로 될지 확신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명철에게도 그것은 엄청난 도박이었다. 그는 몇달을 고심했다. 이벙쳘은 노련한 경영자였고, 한국 정부는 그의 드든한 지원자 역할을 해주었다. 
하지만 실리콘밸리의 도움이 없었다면 반도체에 모든 것을 걸었던 삼성의 도박은 성공으로 이어져기 어려웠을 것이다. 실리콘밸리는 메모리 칩 분야에서 일본의 국제적 경쟁에 맞서는 최선의 방법은 한국에서 훨씬 더 저렴한 공급원을 찾아 내는 동시에 미국의 연구 개발 에너지를 이미 상품화된 범용 D램 보다 더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에 집중하는 것이라는 발상이 설득력을 얻고 있엇다. 밥 노이스가 앤디 그로브에게 말했듯이 "한국인들과 함께 하면 그들이 일본 생상자들보다 더 저가포 판매할 테니 일본이 비용에 상관하지 않고 덤핑을 하는 전략을 쓰더라도 세계 D램 시장을 독식하는 일은 불가능해진다. 결국 일본의 칩 제조사들은 치명적인 결과를 맞게 될 것이라고 노이스는 예측했다.
그리하여 인텔은 떠오르는 한국의 D램 생산자들을 환영했다. 인텔은 1980년대에 삼성과 함께 합작 투자에 함의한 여러 실리콘밸리 기업 중 하나다. 삼성이 제조한 칩을 인텔의 브랜드로 판매하면서 한국 반도체 산업의 도움을 받아 실리콘밸리를 향한 일본의 위협에 대응한 것이다. 더욱이 한국의 생산 비용과 임금은 일본에 비해 확연히 낮았다. 삼성 같은 한국 기업들의 제조 공정은 일본처럼 완벽에 가깝지도 극도로 효율적이지도 않았지만 그럼에도 일본의 시장 점유율을 빼앗아 오는 일에는 문제가 없었다.


미국과 일본간의 무역 갈등 역시 한국 기업들에게 호재였다.

 

워싱턴은 일본이 미국 시장에서 D램 칩을 저가로 풀어놓는 행위, 이른바 덤핑을 중단해야 한다고 위협했다. 결국 1986년 도쿄는 D램의 대미 수출량을 제한하며 낮은 가격에 팔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한국 기업으로서는 더 많은 D램을 더 비싸게 팔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셈이다. 미국이 일본과의 협상으로 한국에 이익을 주자고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필요로 하는 칩을 생성하는 것이 일본을 제외한 다른 누구여도 기분 좋은 일이었다.
미국에 한국에 제공한 것은 D램 시장만이 아니었다. 기술도 함께 제공했다. 실리콘밸리의 D램 생산은 거의 파탄 나 있었기에 최고 수준의 기술을 한국에 전수하는 것을 꺼릴 이유가 없었다. 이병철은 현금이 부족한 메모리 칩 스타트업인 마이크론에 64K D램용 설계 라이선스 계약을 제안했고 그 과정에서 창업자인 워드 파킨슨과 가까워지게 되었다. 아이디오의 칩 제조사는 그 계약으로 얻을 수 있는 돈이 얼마인지 따져본 후 기꺼이 삼성의 제안을 수용했다. 
설령 그 과정에서 삼성이 마이크론의 생산 공정 중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하더라도 상관 없었다. 고든 무어 같은 반도체 산업 선도자들은 몇몇 반도체 회사가 절박한 강황에서 가치 잇는 기술을 쉽게 넘겨 준다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메모리 칩을 만드는 대부분의 미국 기업이 파산하고 있는 상황에서 D램 기술을 가치 있는 것이라 말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실리콘밸리 회사들 대부분은 한국 기업과 협업했다. 한국에 세계 메모리 칩 시장의 선두주자로 떠오르도록 도우면서 일본 경쟁자들의 공격을 무력화했던 것이다. 제리 샌더스가 한 설명을 빌리자면 단순한 논리였다. 적의 적극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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