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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light Jun 27. 2017

인더스트리4.0: 제조 현장 없이는 혁신도 없다

[북앤톡]축적의길을읽고

서울대 공대 교수들이 공동 저자로 참여한 책 ‘축적의 시간’은 10여년 전부터 한국의 경제 성장이 지지부진한 원인으로 개념 설계 역량 부족을 꼽으며 지난해 많은 관심을 끌었다.


개념 설계 역량은 하루아침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행착오와 실패가 쌓여야, 책 제목대로 축적의 시간을 거쳐야 터득할 수 있는 것인데, 한국 산업 생태계는 실패를 최소화하는 실행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개념 설계 역량이 취약하고, 현재 시점에서 개선의 여지도 별로 없다는 것이 책에 담긴 핵심 메시지다.


축적의 시간은 개념 설계 역량 부족이라는 문제점을 부각하는데 신경을 쓰다보니, 상대적으로 대안을 제시하는 내용은 많지 않았다. 축적의 시간 대표 저자로 참여한 이정동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가 쓴 축적의 길은 ‘축적의 시간’ 시즌2 성격으로 개념 설계 역량 강화를 위한 대안 제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혁신을 위해 저자가 강조하는 것 중 하나는 제조업이 혁신을 담는 그릇이라는 것이다. 축적의 시간에 이어 축적의 길에서도 제조 현장을 국내에 유지하는 것에 따른 전략적 가치가 강조된다. 미국과 유럽, 일본이 다시 제조업을 외치는 흐름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에게 생산활동은 개도국으로 아웃소싱하고, 우리나라는 고부가가치 지식노동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많이 퍼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핵심 역량에 집중하라는 구호아래 해외 공장 이전이 당연시 되는 것이 현실이다.

저자는 ‘축적의 시간’에 이어 축적의 길에도 제조 현장에서 쌓은 경험은 개념 설계 역량 확보를 위한 가장 중요한 인프라라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독일과 일본 기업들이 최근에 첨단 공장, 특히 최신 세대의 공장은 자국내에 두자는 리쇼어링 전략을 강하게 펼치고 있는데, 그 이유도 축적된 노하우의 힘을 더 강화하기 위해서다. 이들 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 등 전통의 산업 선진국들이, 19세기의 고리타분한 냄새가 나는 제조업 살리기에 총력을 다하는 것도 역설적으로 21세기 첨단 혁신을 담는 그릇이 바로 제조 현장에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축적의 시간에서도 생산 현장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강조한 바 있다.


“생산활동은 3D 산업이기 떄문에 아웃소싱하고, 우리나라는 깨끗한 고부가가치의 지식노동을 하도록 국제적으로 분업해야 한다는 일반의 잘못된 시각에 대해 멘토들은 큰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 고정관념과 달리 현실에서는 생산현장이 없이는 질 좋은 고용을 창출할 방법이 없고, 생산을 지원하는 지식기반서비스업의 성장도 기대할 수 없다. 또한 생산 현장이 없으면 고부가가치 창출의 원천이 되는 고급의 경험 지식을 축적할수 있는 여지도 없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강조하는 키워드가 된 이른바 4차산업혁명이라는 것도 제조 역량에 경쟁력이 달렸다. 4차 산업혁명은 제조역량과 소프트웨어 역량의 결합이지, 소프트웨어에 치우친 것이라는 아니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시대라고들 한다. 공장 자동화를 넘어 극단저으로 개별화된 제품을 생산해낼 수 있는 스마트팩토리가 대세다. 빅데이터 플랫폼등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의 정보통신 분야 첨단 기업들 역시 큰 그림을 그리면서, 글로벌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종이 위애 그린 밑그림들이 실제 현실에서 작동하려면 신호를 받는 센서가 있어야 하고, 신호에 반응에 움직이는 액추에이터가 있어야 한다.

현재 핵심적인 고기능 센서 및 액추에이터는 대부분 일본과 유럽, 독일 기업들의 몫이다. 그렇게 보면 미국 첨단 정보통신 기업들과 일본, 독일의 부품 소개 기업들이 서로 끌거니 밀거나 하면서 4차 산업혁명의 붐을 만들기도 하고 방향을 몰아가기도 한다.”

인더스트리4.0이라는 화두로 유럽 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독일의 행보는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4차산업혁명에서 지분을 확대하려면 독일의 #인더스트리4.0 전략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얘기도 있는 상황이다.

저자에 따르면 경제 강국 독일을 떠받드는 힘도 다른 아닌 제조 현장의 힘이다.


독일은 한때, 유럽의 병자라고 조롱 받았다. 통일 후 통합 비용에 휘청거리면서, 2000년대 초반까지 성장률, 실업율, 등 모든 지표에서 주변의 걱정을 샀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거의 모든 유럽 국가들이 경쟁력을 잃어갈 때, 독일 산업은 오히려 유럽 산업의 수호자로 칭송받는 위치에 올랐다. 강력한 제조 현장의 힘이 그 비결이다. 독일의 지멘스는 대형 가스 터빈 분야에서 세계 최고 사양의 시리즈들을 공급하고 있다. 각각의 전력 사업자들이 가스 발전소를 지을때 지멘스가 터빈을 공급해줄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한 후 설계와 시공을 해야할 정도다. 축적된 노하우, 그것을 담고 있는 강력한 제조 역량이 독일 산업이 가진 혁신 리더십의 뿌리다.


이와 관련해 애플의 사례는 어떻게 봐야할까? 애플은 생산 현장은 해외에 두고 있으면서 고급 경험 지식은 유지하는 회사로 봐야하지 않을까? 축적의 시간에서도 축적의 길에서도 저자는 애플의 방식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제조 현장이 혁신의 인프라라는 의미는 완제품 조립보다는 아니라 부품이나 B2B형 제조에 해당된다는 의미로 봐야할까? 기회가 된다면 이정동 교수에게 이점에 대해 물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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