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금요일 오후에 사직서를 썼다.
매사 의견이 안 맞는 상사와 극에 치달은 갈등이 도화선이었다.
'하.. 언제까지 이렇게 맨 땅에 헤딩을 하고,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어야 해? 게다가 이런 발전 없는 스트레스를 왜 받아야 하지? 일할 곳이 여기만 있는 것도 아니고... 스카웃 제의받은 곳이나 기업으로 가면, 직급을 더 높이거나 돈이라도 더 벌 수 있잖아?'
존재 이유를 잃어버린 상태에서 상사와의 갈등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그래도 홧김이라 사직서는 임시저장하고 주말 동안 조금 더 생각해 보기로 했다.
다음날 고열로 몸져 누었는데, A형 독감이었다.ㅠㅠㅠ
사직서 내야 하는데...
격리기간이 끝나고 출근하니, 이번에는 상사가 연말 장기 휴가를 떠나 만나지 못했다.
'무슨 퇴사도 마음대로 못하노????!!!'
화가 난다. 생각처럼 되는 게 없다.
더 열받는 건 인사이동 이슈였다.
사실 반년 전부터 인사팀에 상사와의 잦은 갈등으로 타 부서 이동을 요청했으나, 연말까지 기다려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나의 요청 때문이 아닌, 상사의 내침으로 인한 인사이동 분위기가 되었다.
'에라 모르겠다. 그림이 어떻든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나갈 거.'
퇴사하기로 마음먹고, 인사팀에 퇴사 시 사용가능한 잔여휴가를 문의했더니, 당시 인사담당 팀장이 미팅을 하자고 한다. 그녀의 제안은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다. 심지어 나와 어떠한 신뢰도 없는 상태에서 어설프게 친밀감을 유도하려 반말을 시도한다. 왜 퇴사하려 하냐며 혼내는 분위기도 조성한다. 네가 뭔데? 왜? 감히 반말? 질 수 없다, 나도 반말로 받아친다. 그녀로 인해 퇴사한 사람이 너무 많았고, 매사 쉬운 일도 어렵게 꼬아버려 감정이 좋지 않았다.
좋지 않은 분위기 속 데이빗이 아침 일찍 차 한 잔 하자고 불렀고, 데이빗의 부서에서 팀장이 공석인 팀으로 와서 함께 일하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이직은 절대 감정적으로 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발전과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당부해 준다.
결국 나는 퇴사 타이밍을 놓쳐 데이빗이 제안한 자리로 이동했다.
데이빗은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해 조직에 실망한 나를 위로해 주고 힘을 주기 위해 내가 이끌 팀의 사무실 위치와 책상, 팀원들까지 모두 정리해 주었다. 부서로 이동한 날에는 과거 나의 팀원이었고, 지금은 팀장이 된 직원에게 환영사까지 준비시켜 성대한 환영회를 열어주었다.
데이빗이 말한다.
"내가 청소 싹 해뒀어. 좋은 집 마련했으니, 좋은 가구들로 잘 채워줘."
"그동안 마음고생 많았어. 이 팀에서 좀 쉬었다가 다른 업무도 같이 하자."
발령받은 팀은 거리모금을 주로 수행하는 대면모금팀이다.
팀원들은 오랜 시간 공석이었던 팀장 자리에 온 나를 진심으로 환영하고 있었다.
데이빗과 팀원들의 마음이 참 감사했지만, 미안한 감정이 더 컸다. 나는 번아웃 상태였기에...
용이 새 사무실에 찾아와 말한다.
"누나, 여태까지 너무 열심히 일했어. 좀 쉬면서 대충 해."
"대충은 어떻게 하는 거야? 그럴 거면 퇴사해야지."
데이빗과 용은 내가 마음에 여유를 갖길 바라는 마음에 자꾸 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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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이 이끄는 부서는 매일 아침 소그룹으로 나뉘어 성경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날 본문은 누가복음 5장 1~11절 말씀이었다.
시몬 베드로는 평생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해 온 물고기 사냥 전문가다.
프로어부 베드로가 밤새도록 물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은 날, 길 가던 목수의 아들 <예수>가 밤새 허탕 친 베드로와 그 무리의 배에 오르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라고 하셨다. 예수가 그물을 내리라고 했을 때는 물고기가 잘 안 잡히는 시간대(낮)였다.
베드로는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예수의 지시대로 따른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다. 그물이 찢어지도록 물고기가 잡혔는데 그 수가 많아 두 배를 채웠더니 배가 잠기기까지 했다.
이를 보고 베드로는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한다.
자신과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물고기 잡힌 것으로 인하여 놀라서였다.
예수는 베드로에게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니"라 하셨고,
그 기적을 경험한 베드로와 모든 이들이 배를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았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여태까지 일해오면서 많은 인정을 받았었다.
생각하고 도전하는 대로 업무성과를 나타냈다.
관계가 형성된 셀럽, 후원자와 후원기업의 높은 협업 만족도, 그들의 소개를 통해 더 넓은 네트워크를 확보하기도 했다. 함께 일하는 동료, 선·후배들은 나를 함부로 하지 못했었다.
다른 사람보다 더 좋은 자리, 더 좋은 컴퓨터, 더 빠른 승진이 있었고,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을 내가 이룬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다 한 순간에 인생의 목표를 잃어 속이 텅텅 비어졌고, 나에 대한 부정적인 조직 분위기까지 경험했다.
영혼이 탈탈 털려 너덜너덜한 상태였다.
언제부터 나는 '내가(하는 건데?)', '네가?(감히?)'라는 표현을 했을까?
언제부터 나는 이 모든 것을 내 힘으로 이루었다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다녔을까?
처음부터 지금까지 모두 하나님이 주신 것들, 모두 하나님이 하신 일들인데 내가 그 영광을 가로채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내 꿈도 하나님이 주셨었다.
하나님 앞에서 너무 교만했었다.
베드로의 고백에 가슴이 아렸고, 얼굴이 화끈거려졌다.
'나는 죄인입니다. 하나님이 주셨으니 모두 가져가셔도 마땅합니다. 나를 떠나세요.'
이 울림은 몇 달이 지나도 지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