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학생 간 친구따라 미국에 갔습니다 -1

by 포레스트

E와 나는 카페에 나란히 앉아 비행기 표부터 찾기 시작했다. 가장 저렴한 표인 중국 베이징을 경유해 미국 LA로 가는 비행기의 표값은 무려 100만 원이 넘었다. 당시 20대 초반의 내가 만져본 적도 없는 큰돈이었다. 내가 그 돈을 어디서 다 구하겠나. 신입생이었지만 실제로는 대학생활 3년 차의 노련함으로 받았던 성적 장학금을 아빠로부터 돌려받았다. 그렇게 2012년 새해가 되자마자 떠나 3월 새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돌아오는 약 두 달간의 총일정이 정해졌다. 숙박업소를 예약하는 대신 샌디에이고에 있는 친구 S의 방에 함께 머무르기 위해 친구의 집주인에게 허락을 받았다.


첫 해외여행에 이것저것 공부하던 도중, 우리는 중간 경유지에 며칠간 머물 수 있는 스탑오버 시스템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마침 베이징 대사관에서 일하던 외삼촌이 있다는 E의 말에 우리는 돌아오는 표를 스탑오버 일정으로 변경했다. 그리고 여권을 만들러 가서, 이전까지 나의 인생이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 몇 년 간은 해외여행을 갈 일이 없을 거라는 생각에 단 돈 만원이라도 아껴보고자 열심히 E를 설득해 단수 여권을 발급하게 된다. (인생 최대의 실수 중 하나로, 지금까지도 술자리 안주에 단골로 등장하는 스토리 중 하나다. 내가 이렇게 여행을 많이 다니게 될 줄이야..) 여권을 발급받고, 중국 비자도 발급받았다. 이제 모든 여행 준비가 끝났다. 우리는 미국으로 간다!



경유까지 합치면 꼬박 하루가 걸리는 일정이었다. 인터넷이 없는 11시간의 비행의 무료함을 대비해 E가 색종이와 종이접기 책을 가져왔다. 이륙하고 나서 기내식을 먹고, 색종이로 원숭이를 접고, 영상을 몇 개 돌려보다 잠이 들었다. 눈을 떠서 다시 기내식을 하나 먹으니 착륙 안내방송이 나왔다. 무려 12년 전임에도 이렇게까지 자세한 글을 쓸 수 있는 건, 아무래도 처음이라는 강렬함 덕일 거다. 비행기에서 내려 낯선 냄새와 언어로 가득 찬 LA공항에 처음 들어서던 순간, 마치 세상에 처음 나온 아이처럼 모든 감각이 생생해졌다. 샌디에이고에 있던 S가 렌트한 차를 가지고 LA 공항까지 우리를 마중 나왔다. 운전이 서툰 S를 대신해 S와 친한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오지랖 넓고 착한 친구가 고맙게도 샌디에이고까지 운전을 담당해 주었다.


S의 방에는 커다란 킹사이즈 침대가 있었고, 그 밑으로 작은 1인용 매트리스가 있었다. 고맙게도 며칠 뒤에 한 학기 늦게 같은 학교의 교환학생을 위해 이곳에 방문할 친구 H까지 총 네 명이서 잘 수 있도록 집주인이 고맙게도 여분 매트리스까지 제공해 주었다고 했다. 이 집은 내 흑석동 하숙집과 마찬가지로 공용 욕실과 주방, 거실과 개인 방 여러 개로 구성된 큰 미국식 주택이었다. 2층 제일 끝 쪽에 위치한 방에서 우리는 샌디에이고 생활을 시작했다. 이 여행이 우리 넷을 둘도 없는 절친한 친구로 만드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늘 이야기하곤 한다.


샌디에이고에 도착하고 처음 며칠은 여행이라기보다는 친구의 교환학생 생활 체험에 가까웠다. 쇼핑몰에 가서 한국에서는 절대 입지 않을 것 같은 옷들과 명품 선글라스를 하나씩 샀다. 매일 밤 가위바위보를 통해서 이긴 한 명은 1인용 매트리스에서, 나머지는 킹사이즈 침대에서 같이 잠을 잤다.


몇 일간의 샌디에이고 적응기를 마치고, 마침내 H의 도착과 동시에 LA로 떠나는 여행을 계획했다. 처음 넷이서 가보는 여행다운 여행이었다. 샌디에이고에서 LA까지는 차로 약 2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고, 우리의 숙소는 마치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에 나오는 미국식 모텔과 비슷한 구조의 아담한 숙소로, 제법 깔끔했고 매일 똑같은 메뉴의 간단한 조식이 나왔다. 조식을 안 먹는 E와 H가 자는 동안 나와 S는 초코머핀과 바나나, 사과로 매일 아침을 시작했다. 첫 목적지는 LA의 산타모니카 해변이었다. 1월 초의 LA는 한겨울에도 나시 원피스를 입고 다닐 정도로 따뜻했다. 전형적인 캘리포니아 해변뷰인 그곳에서 이국적인 정취를 마음껏 만끽하고 근처 유명 새우 전문점 부바검프에서 새우 요리를 먹었다. 담당 서버가 영화 포레스트 검프 관련 퀴즈도 냈었던 것 같은데, 우리가 그 퀴즈를 맞히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짧은 일정에 비해 갈 곳이 너무나도 많았다. 디즈니 덕후이자 놀이공원 덕후인 나의 최대 로망 디즈니랜드에도 갔고, 할리우드에도 갔다. 할리우드 사인을 보고, 유명한 배우들의 손자국 옆에서 사진을 찍고, 우리는 그곳에서 여느 관광객들과 마찬가지로 즐거운 나날들을 보냈다. 베벌리 힐즈 근처 치즈케이크팩토리에서 식사를 한 뒤, 잘생기고 친절한 서버에게 홀려 팁을 왕창 내고 나오기도 했다.


며칠 간의 꿈같았던 LA 여행을 마치고 우리는 샌디에이고로 돌아왔다. 며칠 다른 도시로 여행을 다녀왔다고 이제는 이곳이 집처럼 편안하게 느껴졌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우리는 본격적으로 샌디에이고 생활을 즐기기 시작했다. 같이 한인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밥을 해 먹고 밤마다 술을 마시고 종종 나가서 외식도 하기도 했으며, S의 대학교 수업에 몰래 들어가 보기도 했다. 학교 친구들의 홈파티에 같이 가거나 해변에 나가서 돗자리를 펴놓고 잔디밭에서 여유롭게 피크닉을 즐겼다.



S와 H가 학교에 가는 날이면 나와 E는 렌트한 차를 타고 근교로 놀러 나갔고, 다 같이 쉬는 날에는 동물원으로 씨월드로 발보아 파크로 샌디에이고 이곳저곳을 부지런히 놀러 다녔다. 매주 화요일 저녁이 되면 근처 펍에서 하는 타코튜즈데이에 가서 타코와 마가리타를 마셨다. 샌디에이고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했다고 느낄 때 즈음, 우리는 라스베이거스로의 두 번째 미국 여행을 계획했다.

작가의 이전글간헐적 세계여행자의 뒤늦게 쓰는 15년 여행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