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디에이고에서 라스베이거스까지는 차로 약 6시간 정도가 걸리는 꽤 장거리 여행이었다. 이 여행을 위해 한국에서 급하게 운전연수를 하고 온 E는 첫 장거리 운전에 긴장감과 부담감으로 매일 구글맵 로드뷰를 들여다보곤 했다. 미국에 오기 전까지 우리 넷 중 누구도 운전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는데, 기꺼이 E가 이 역할을 떠맡아준 것이었다. 고맙게도 E는 지금도 약속 장소를 찾아본다던가, 예약을 한다던가 하는 귀찮은 일들을 도맡아 하곤 한다. 그렇게 우리는 라스베이거스의 윈 호텔(Wynn Las Vegas)을 예약했다.
라스베이거스로 가는 길은 끊임없는 직선 도로였다. 창밖으로 난생처음 보는 생경한 사막 풍경이 이어졌다.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대지 위에 일직선으로 쭉 뻗은 도로를 몇 시간이고 엄청난 속도로 내달렸다. 함께 앞뒤로 달리는 차들만이 아 내가 지금 도로 위를 달리고 있구나 하는 현실감을 일깨워주었다. 새삼 라스베이거스가 사막 위에 있는 도시라는 것이 실감 났다.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땅 위에 그토록 화려한 유흥 도시를 지을 생각을 처음 한 사람은 누구일까 궁금해졌다. 우리는 이 지루한 운전에 E가 무료하거나 졸리지 않도록 음악을 틀고, 대화를 나누고, 종종 오아시스처럼 등장하는 주유소 겸 휴게소에 들러 시간을 보내기도 하면서 마침내 우리는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했다.
라스베이거스는 평화로운 샌디에이고와 비교되는 화려하기 그지없는 도시였다. 호텔과 카지노, 극장과 식당들로 가득 찬 거리는 밤이 되자 모든 곳이 네온사인으로 반짝였다. 호텔의 퀄리티에 비해 숙박비는 놀라울 정도로 저렴했다. 난생처음 묵어보는 5성급 호텔의 위용에 입이 떡 벌어졌다. 만 21세가 아직 되지 않은 H를 제외하고 나머지 우리 셋은 매일밤 카지노를 즐겼다. 종종 터지는 소소한 잭팟으로 나는 당시 유행하던 어그부츠를 샀고, E는 세상 화려한 호피무늬 하이힐을 샀다. (물론 그 뒤로 E가 이 신발을 신은 모습은 본 적이 없다.) 카지노를 가고, 쇼핑을 하고, 호텔 뷔페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이 호텔 저 호텔을 돌아가니며 쇼를 보는 것 외에 이 향락의 도시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없었다. 근처에 있는 그랜드캐년 투어에 가볼까 생각도 했지만, 엄청난 비용에 당시 가난한 유학생과 대학생 여행자였던 우리는 금세 마음을 접고 유튜브로 그랜드캐년 풍경을 함께 감상하며 만족해야 했다. 라스베이거스에서의 며칠은 그렇게 꿈만 같이 흘러갔다. 한 가지 사건만 빼고.
대부분이 즐거운 기억이었지만, 이곳에서 살면서 가장 바보 같고 억울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었다. 혹시라도 당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며 짧게 몇 줄 남겨보려 한다. 어느 쇼핑몰에 주차를 한 우리는 깜빡하고 차키를 차 안에 두고 내려버렸다. 우리는 렌터카 회사에 전화를 했고, 사람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곧 사람이 와서 차 문을 열어주었고 그는 우리에게 수리비로 400달러를 청구했다. 한국에서도 이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었던 우리는 아무런 의심 없이 카드를 내밀었다. 하지만 그는 꼭 현금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황한 채로 헐레벌떡 ATM을 찾아, 현금을 뽑아와서 그에게 건넸다. 그렇게 우리는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잠긴 차 문을 열어주는 건 기본 보험에 포함된 금액으로 원래대로라면 지불할 필요가 없는 금액이었다. 게다가 400달러면 당시 우리에게는 꽤 큰돈이었다. 지나고 생각해 보니 의심스러운 부분이 너무나도 많았는데 알아채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감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비교적 적은 금액에 큰 인생 교훈을 얻었던 에피소드였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우리는 똑같은 사막을 거쳐 다시 평화로운 홈스위트홈 샌디에이고로 돌아왔다. 어느새 미국에서의 나날도 끝나가고 있었다. 우리는 미국 여행을 마무리하고 계획했던 중국 베이징 여행을 가기 위해 짐을 쌌고, 얼마 안 가 다가온 마지막 날, 다 함께 LA 공항으로 향했다. 처음으로 가족들과 떨어져 교환학생 생활을 하고 있던 S는 우리와의 이별을 유달리 힘들어했다. 우리 몇 달 뒤면 서울에서 또 만날 거니까 하고 LA 공항에서 펑펑 우는 S에게 러기지택 조가리를 쥐어주며 한국에서 만나는 날까지 간직해 달라고 농담을 했는데, 나중에 한국에서 정말로 그 쓰레기를 가지고 나타난 S 덕에 한참을 웃었었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장단점을 극명하게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짧은 여행이 아니었기에 마냥 천국 같았던 것만은 아니었다. 값비싼 외식 물가와 열악한 대중교통 시스템, 생소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팁 문화, 그리고 한국에서만 20여 년을 살았던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위협적으로 느껴졌던 치안 문제도 있었다. 반면에 저렴한 식재료와 공산품 물가, 기름값, 그리고 다양한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이 뒤섞여있는 환경, 온화하고 화창한 날씨 등 좋았던 점도 너무나 많았다. 평생 잊지 못할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네 명이서 지내기에는 너무나도 비좁았던 그 방에서, 오랜 시간 옹기종기 붙어 지내며 울고 웃고 싸우고 화해하고를 반복하며 그 모든 일상을 함께했던 친구들과의 추억이 이 미국 여행의 가장 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게 E와 나는 꿈같았던 미국 여행을 마치고 LA에서 중국 베이징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