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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미 Aug 25. 2024

몇백 권의 책 속에서 찾아낸 두 개의 인연

펜팔  일기 with 딸내미 : 2. 나와 인연이 있는 책

우리는 지금까지 책을 몇 권이나 읽었을까? 많은 독서 전문가들이 책 읽는 양에 집착하지 말라고는 하지만 사실 독서의 질보다 양을 늘리는 게 더 게으르지만 고양감은 채워줄 수 있는 쉬운 방법인 것 같아. 우리 독서 모임 룰에 따라 최소 한 달에 두 권은 읽는다고 가정하고 그 간 세에 개인적으로 읽었던 것들까지 하면 대략 200권은 넘었을 것 같. 진짜 많은데 이 책의 내용과 교훈.. 다 어디로 갔을까..? 숙연해진다.. 이래서 양보단 질에 집중했어야 하는 건데.. 한 줄 만에 반성한다.. 여하튼 내 인생을 거쳐 온 이 많은 책들 중에서 내가 인연이 있다고 표현하고 싶은 책은 두권이야.




1.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까맣게 잊고 있다가 우리가 썼던 잠밥보 시리즈를 다시 훑어보던 중 발견했는데, 무려 내 이름이 책에 등장했더라고. 이름 두 글자 말고 성까지 세 글자!

등장 표현도 무려 '나의 연인 OOO'이. 이렇게 유명한 책에, 유명한 작가님에, 심지어 내용도 재밌게 봤는데 저렇게 등장했다니! 특별할만하지? 5년 만에 봐도 또 신기하고 소름이라 그땐 사진을 찍어놓고 이번엔 바로 주문했어.


근데 실은 책을 구매한 게 굉장히 오랜만이었어. 결혼하면서 기존 내 방에 있던 책을 많이 처분하고 소장하고 싶은 것들만 엄선해서 가지고 나왔거든. 그때 중고서점에 책을 꽤 많이 보냈는데 대부분 십 분의 일도 안 되는 가격들이 책정되고 어떤 건 그 가격보다 더 낮고 아예 받지 않는 책들도 있고.. 좀 충격이었어. 구매 당시 인기 있었던, 꽤나 재미있는 책들이어서 그들을 시작으로 다른 독서까지 확장되었던 건데 사회에서 매겨지는 가치가 그 정도라니.. 그 후 책은 마치 입양하듯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겠다고 생각했어. 다른 중고물품 거래도 해봤지만 유독 책은 중고거래가 특히 힘든 것 같아. 우선 중고로 사려고 하는 사람이 매우 없고, 수요가 있는 책은 절판이나 다른 쪽으로 가치가 있는 책이고, 내가 팔고자 하는 책은 이미 유행이 한참 지나 대부분 읽어봐서 더더욱 그런 듯해.


또 한편으로 마음에 드는 책이라면 늦기 전에 사야 된다는 생각도 렬해. 알랭드 보통의 '관계'라는 책을 좋아하는데, 결혼을 앞두고 있거나 결혼 초기인 사람들한테 엄청 추천하고 싶은 책이거든. 그래서 아는 언니에게 선물해주고 싶었는데 절판인 거야. 이 책으로 부부독서모임도 진행했었는데 절판된 터라 도서관에서도 빌리기가 어려웠다고 해서 너무 안타까웠어. 그리고 사두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 절판된 책은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해도 승인될 확률이 적아. 절판된 책을 어렵게 빌렸는데 책을 읽을수록 너무 내 스타일일 때, 지금은 내 손에 있지만 2주 뒤에 돌려줘야 하는, 예고된 상실감은 어디에 비할 수 있을지.


내가 알랭드보통 책을 사뒀던 건, 언젠가 내 서재를 갖게 되면 책장의 한 층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  작품으로만 꽉 채워 놓을 예정이 있서였어. 몇 권 읽어보니 특유의 시니컬하면서도 독특한 시선이 좋아서 그 사람이 쓴 책이라면 소장해서 언제라도 다시  보고 싶을 것 같았어. 그게 본가 내 방이 있을 때는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에 굳이 하지 않고 (언제나처럼) 미뤄두고 있었는데, 새로운 가족을 꾸려 새로운 환경에 맞춰 살다 보니 이제 꿈이나 버킷리스트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운 일이 된 것 같아. 특히 아기가 생긴 후부터는 알랭드보통 따위 누울 공간도 없이 매년 새로 들여야 하는 아기 책 리스트가 십 년은 넘게 줄을 서 있거든. 그래도 그의 유명세와 스테디함은 날 기다려줄 거라 생각했는데 '관계'의 절판 소식에 충격받아서 미리 사놓아야 하나 고민이 들긴 하더라. 그렇지만 동시에 내가 쓸 수 있는 한정된 공간을 그로 채우기에는 아쉬운 면도 있는지라 더더욱 책의 구매는 날로 신중해져 가.

  



2. '미움받을 용기'(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너도 알겠지만 나는 책을 고를 때 보통 권위에 의지해서 선정하는 편이거든. 대형서점이나 사서의 픽 혹은 처음 들어봤어도 무슨 상을 받았다거나 하는. 설령 내 스타일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읽는 사람보다 쓰고자 하는 사람이 많은 세상에서 여러 명이 읽을만하다고 뽑은 건 무슨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고 호든 불호든 어느 정도 보장된 점이 안정적이라고 생각해서야.


이 책 또한 유명해서 읽어봤 것 같은데, 실은 내 인생책이 되었어. 근데 인생책이라고 말하기 약간 부끄럽기도 해. 독서모임을 8년 이상하고 모임장까지 하고 있는 사람의 인생책이라 하면 누구나 제목은 들어봤으나 완독은 못하기로 악명 높은 고전이나 500페이지 이상의 (무기로 대체 가능한) 책이어야 할 것 같은데 '미움받을 용기'라니.

그렇지만 나와 비슷한 고민을 했던 문유석 작가는 '쾌락독서'라는 책에서, 본인도 강연을 가서 인생책을 묻는 질문에 흔하고 쉬운 책을 이야기했을 때 관객의 싸-함을 겪어봤지만 당당하게 편식독서를 한다고 말하더라고. 필독서 어쩌고 서울대 저쩌고 안 읽어도 큰 일 안 난다고, 이왕 즐기려고 읽는 책이면 그냥 재밌는 거 읽으라고 말이야. 근데 그분이 말한 재밌는 책이 내 기준으로는..(생략) 래서  이것이 인생책으로 남아있는지, 무슨 쾌락을 줬는지 번 생각해 봤어.


사실 책 내용자세히 기억나진 않거든. 당시 유행한 아들러심리학에 대해서 이해하기 쉽게 풀어쓴 게 골자인데, 나는 그 당시 진짜 말 그대로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했어. 첫 사회생활에서 이해 못 할 요구를 하는 상사에게 더 이상은 못하니 적당히 좀 하라고 딱 한마디 하고 싶었어. 근데 그때는 그 한마디를 위해 열 가지 논리를 갖추고 스무 가지 상황을 설정하고 백번은 연습해야 해서 너무 힘든 거야. 책 구성은 계속 이론에 딴지를 거는 청년과 참을성 있게 계속 설명해 주는 현자의 대화인데, 그냥 그 설정 자체가 나한테 위로를 줬던 것 같아. 머리로는 맞는 말인 거 알겠는데 이해가 안 되는 초보자에게 그 분야 권위자가 이해하고 공감해 주면서 계속 설명도 해준다는 게 현실에서는 판타지나 마찬가지잖아.(이 책은 심리교양서로 구분되는데 이렇게 보니 소설적 요소도 있네.) 다 읽고 내가 어떤 용기를 얻었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부분의 걱정들이 그렇듯 잘 지나고, 회사생활 9년 차가 된 지금 똑같은 상황이 온다면? '엥?' 이 한마디로 끝낼 수 있을 것 같아. 용기보다 더 한 게 생긴 것 같다. 배짱과 깡. 다 덤벼. 네가 오래 다니나 내가 오래 다니나 보자.


이 두 권에 더해서, 벌써 반년이 지나고 무더위도 슬슬 가시는 이 시점에 나는 올해 내로 완독을 목표로 하는 책들이 몇 개 있어. 읽어보고는 싶은데 페이지수의 압박으로 항상 20페이지 내외에서 덮고 말았던 '호모데우스'가 그중 하나인데 최근에 네가 말했던 독서법처럼 눈에 잘 띄는 곳에 두고 조금 읽다 말다 하다 보면 느리지만 조금씩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올해 남은 날을 세어보니 하루에 5페이지씩만 읽어도 될 것 같은데? 갑자기 만만해 보인다. 완독에 성공해서 내가 읽은 책 중 가장 오래 읽은, 가장 두꺼운, 거기에 가장 감명깊은까지 더해진 또 다른 인연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


너와 인연이 있는 책을 짐작해 보자면.. 시집을 좋아하니까 이름은 기억 안나는 어떤 외국작가의 시집 혹은 저번 모임에서 말했던 자매에 관한 책이려나? 혹은 그 사이 새로 접한 어떤 책일 수도 있겠다.

너와 인연이 있는 책, 그중에서도 인생책이라 할만한 것 나처럼 아직 정복하지 못했지만 부채감으로 남아있는 책들도 궁금해. 너의 글 기다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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