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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미 Sep 13. 2024

제일 자신있는 신체부위가 어딘가요?

저는 눈입니다.

쌍커풀도 없고 얼굴 면적 대비 그리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도 않기에 미적인 부분에서는 아니고, 엄밀히 말하면 능력치에서의 자신감입니다.

고 3때 한 선생님께서 반 아이들 40여명을 대상으로 안경을 끼고 있지 않은 학생을 조사했는데 저 포함 단 2명뿐이었습니다. 대학 입학성적 등 과거 한 순간의 영광에 얽매이는 것 만큼 추접한 짓이 없다는데 저는 이 기억으로 10년 넘게 떵떵거리며 매우 소소한 추접함을 떨어왔습니다. 안경 쓴 친구를 안경잡이라고 놀리는게 낙이었습니다. 몇년 전 건강검진에서는 0.8정도로 떨어졌는데 그 때 자존심에 큰 스크래치가 났을 정도입니다.


30년을 넘게 살면서 아이도 낳아보고 나니 건강은 타고난 게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눈뿐만 아니라 면역력도 좋은 편이라 지금껏 작거나 크게 아팠던 적이 별로 없고, 피부 트러블도 없는 편이고, 어릴적부터 훈련 받은 덕에 먹고 바로 자도 역류성 식도염 한번 걸적이 없습니다. 물론 반대로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그또한 어쩔 없다 생각하며 크게 신경쓰지 않는 덤덤함까지도 결국 타고난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주일 전 건강검진을 받았습니다. 현재 임신 중이라 각종 MRI, CT, 내시경 등의 검사를 제외하니 2시간여만에 끝나 좋았습니다. 재밌었던 점은 키와 시력이 증가한 것입니다. 3n살에 이런 성장이 가능하다니!

처음 검진받아본 병원이라 그 전의 곳과 측정방식이 달라 그랬겠지만 키가 1cm 크고, 시력이 양쪽 다 1.0을 넘는게 웃겨서 주변에 아직도 성장 중이라고 자랑했습니다. 어떤 분은 지금이라도 농구선수에 도전하라고 했고 또 어떤 분은 나중에 아이 키가 2m는 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오늘 건강검진 결과가 와서 확인했습니다. 보통 매년 한줄씩 늘어나는 항목은 위염(그래서 더이상 먹고 바로 눕지는 못합니다.), 운동부족, 경도비만 쯤이고 이번엔 검사항목도 많지 않았기에 별 생각없이 열어봤습니다.


미만성갑상선질환 의증, 녹내장 의증, 매체혼탁의심, NK세포 검사 이상 소견이 나왔습니다.


하나도 낯설지 않은 단어가 없더군요. 아니 오히려 뜻을 아예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제게 닥쳐본 일 혹은 닥칠거라 한번도 상상해본 일이 아니어서 계속 읽어봐도 와닿지 않았습니다. 의사들이 가장 싫어하는게 증상을 인터넷에 검색해보고 불필요한 정보를 얻는 일이라고 하는데, 찾아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4가지 지금까지 한번도 검진에서 등장한 없었기에 방어력도, 정보력도 제로였거든요.


미만성갑상선질환 의증은 초음파 상 불균질한 패턴이 보이는 것으로, 혈액검사 결과는 정상이기에 크게 문제가 되어 보이진 않습니다. 현장에서도 큰 문제 없다고 했었거든요.

NK세포 검사도 당시 피를 4통이나 뽑아서 괜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유의미한 결과가 나왔으니 하길 잘했다고 생각해야하나 아직도 잘은 모르겠지만 면역력은 컨디션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니 이것도 크게 의미두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가장 제게 큰 충격을 준 건 안과질환입니다. 나 OO여고에서 인정한 시력짱인데, 내 눈 부심(Not shining)이 얼마나 대단했는데, 심지어 시력은 올라서(?) 1.0을 넘는데! 녹내장과 백내장 의심이라니. 시력 떨어지는 것 외에 제가 눈에 대해서 걱정할 일이 생길 줄 정말 몰랐습니다. 그리고 더욱 무겁게 다가오는 지점은, 서두에 말했듯 건강은 타고나는 것 즉 물려받는 것이 크다고 생각하는데 아직까지 안경 한 번 쓰신 적 없는 엄마와 달리 저희 아빠가 녹내장을 앓으셨기 때문입니다.


가족 외에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고 특히 글로 쓴 적은 전혀 없지만, 저희 아빠는 30대부터 녹내장을 앓고 정기적으로 병원도 다녔으나 결국 50대에 시력을 잃고 시각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시력과 함께 잃은 직장과 얻은 장애의 무게는 가족 모두가 나눠 짊어졌습니다. 아마 말그대로 한 치 앞이 안보이는 당신께서 가장 힘들었겠지만 순식간에 가장이 되고 아직 조금 더 뒷바라지를 해야하는 자식들도 혼자 끌고가야하는 엄마도 그 무게가 버거웠는지 그쯤 큰 병을 앓았습니다. 엄마는 본인 병을 알고 나서 혹시 저에게도 유전적 영향이 있을까 보험을 하나 추가했고 분명 심하지 않은 거라며 병원에 오지도 말고 이모들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했으면서도 수술 들어가기 전에는 자꾸 저에게 통장 비밀번호를 알려주려고 했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완치 판정을 받고 정기검진도 좋은 결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엄마와 같은 질환의 예방을 위해 전문병원에서 정기검진을 받고있는데, 몇년 전 이상소견이 나온 적이 있습니다. 그때도 지금처럼 전혀 전조증상도 없었고 더 젊었기에 긴 바늘로 피와 조직을 뽑는 아픔까지는 꾹 참았다가 병원을 나와서 지금의 남편에게 전화해 많이 울었습니다. 검사결과가 나오는 2주의 기간 동안 하루하루 피가 말랐고 속으로 약간의 신변정리(?)도 마쳤습니다. 이 또한 다행히 악성은 아니었고 지금까지도 정기적으로 확인 중입니다.


그 후 몇년만에 다시 또 비슷한 일로 남편과 통화하며 울었습니다. 남편은 '아프대.' 하면 '병원가보자.'하는 전형적인 99% T인간인데 그때와 비슷하게 이번에도 별 거 아닐거라며, 빨리 발견한게 다행이라며, 걱정하지말고 기다리고 있자며, 다 잘될거라며. 뻔하지만 제가 듣고 싶은,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해줍니다. 저는 울 때 눈물이 또르르 흐르는 게 아니라 콧물이 주룩주룩 나오기 때문에 웬만하면 울고 싶지 않은데 이러한 남편의 위로를 들으니 또 어쩔 수 없이 눈물콧물 쏟았습니다. 그리고 병원에 전화를 걸어 최대한 빠른 날로 상담 예약을 잡았습니다. 다행히 큰 병원에서 검진한 덕에 혹여 개별 진료가 필요하다면 연계가 빨리 되지 않을까 나름 희망회로를 굴려봅니다. 더 빨리 다른 병원에서 한번 더 검사를 받아볼까하고 병원정보확인을 위해 저의 지식in인 지역맘카페에서 찾아보니 유명한 대학병원 의사는 대기가 1년이라는 소식도 있었지만, 녹내장 의심은 생각보다 너무도 흔하고 급성도 아니라며 다들 크게 좌절하지는 않는 듯 했습니다.


저는 아빠의 영향으로 어릴적부터 대형병원 대기실에 오랜시간 있어보고, 입원실에 가봤고, 시각장애로 부당하게 대우하는 아빠 회사에 항의했었고, 시각장애인이 받을 수 있는 온갖 복지 혜택을 다 찾아봤고, 시각장애인 복지관에서 봉사활동도 했었고, 장애인 가족이 겪는 힘듦을 겪었고 보았습니다. 이는 지금도 진행 중이나 저는 결혼함으로써 미안하지만 엄마와 동생보다 한 시름 덜고 있고 물리적인 거리와 함께 마음의 여유도 생겨서 아빠에 대한 연민과 이해 따위의 감정도 함께 복잡하게 얽혀있습니다. '녹내장'이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몇십년의 이러한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흘러 마치 내 앞으로의 인생을 스포당한 것 처럼 느껴졌습니다. 전에 너무 운동을 하기 싫으면 왜 인간은 쓸데없이 오래 살아서 이렇게 힘든 삶을 꾸역꾸역 이어나가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투덜거렸는데, 입방정 떤 댓가인가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실은 최고령 연금수령자가 꿈이면서요.


그치만 저는 이미 부모님으로부터 충분히 좋은 조건들을 물려받아 잘 누리고 살았고, 살 것이고, 아쉬운 부분도 똑같이 물려받아 잘 견뎠고, 잘 견딜 것입니다. 저에게는 함께 해야 할 사람들도 많고 나중에 해야지하고 미뤄놓은 인생 계획들도 널렸습니다. 한바탕 울고, 정신차리고 병원 예약을 하고, 멍하니 누워서 흘러가는 구름을 보다가, 스르르 잠들었다가, 뭐라도 먹어야하지하고 밥도 먹고 나니 조금 진정이 됩니다. 그리고 글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주 뒤 병원 상담을 다녀오고 더 세부진료를 받으면 이 글이 오글거리는 설레발이었을지, 장기간 관리를 향한 마음가짐의 초석이었을지 모를 일이지만 감정을 글로 정리해서 나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한가지 걱정은 엄마가 보지 말아야할텐데, 하는 점입니다. 나의 한 가지 걱정에 다섯번의 안부를 묻는 분인데, 그 안부를 묻기까지 그 곱절의 고민을 했을 것이고 다시 또 그 곱절의 시간동안 잠을 설쳤을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안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것이 부모의 숙명이라 하면 또 조용히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여튼, 자만하지 말고 앞으로도 차분하게 오래오래 건강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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