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았다고 생각했던, 안닮은 사람과의 결혼생활 적응기

결혼이란 인정하고 적응하고 닮아가고 배워가는 것

by 자미


살아갈수록 느끼는 거지만, 남편과 나는 정말 다르다.

연애 2년, 결혼 4년차. 전생의 기억과도 같이 희미한 연애와 신혼 초-정확히 말하면 출산 전-까지는 서로 닮은 점이 많아 신기해하며 어째서 더 빨리 만나지 못했는가를 안타까워하고(염병 죄송) 지금이라도 만나서 다행인, 결국 만날 운명이었던 사이였던 걸로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생각의 기저는 그러하지만 최근에서야 잘 보이는 것이 있다. 우린 매우 다른 사람이라는 점이다.

물론 전생시절에도 다른 점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무의식적으로 결혼을 하게되면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바뀔거라는, 아주 근본없고 무모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둘다 먹는걸 좋아하는게 큰 공통점이라 생각했지만 그는 배가 먼저 차야하는 반면 나는 맛이 가장 중요하고 궁금하여 조금씩 여러개를 먹고 싶다. 미트파이를 먹을 때도 나는 이건 빵이니 우유랑 먹어야하고 그는 이건 고기니 탄산과 먹어야한다고 생각한다. 문화생활을 하고 나면 나는 당장 느낀 감정을 함께 공유하고싶은데(덕후 특징), 남편은 스스로 말을 정리한 뒤 꺼내고싶어 시간이 필요하다. 그 외에도 위생관념, 가치를 두는 물건, 소비패턴 등 다른점을 찾자면 끝도 없다. 그리고 같이 사는 시간과 비례해 몰랐던 점들이 계속 발견된다.




요근래 일상의, 그치만 인상깊었던 대화

최근 둘째를 임신하고 입덧과 환도로 고됐던 초기를 지나 안정기라 불리우는 20주대에 진입했지만 여전히 숙면은 요원하다. 호르몬의 영향도 있고 긴장을 늦추지 말라는 첫째의 새벽 이벤트도 잦다.

그날은 남편의 야간근무로 빵떡이와 둘이 자는 날이었다. 요즘 계속 한두시간씩 늦어지던 밤잠 시간도 웬일로 제시간에 맞춰지고, 항상 폐허와 비슷하던 거실도 같이 쓱싹 정리하고(물론 보상이 있긴 했지만), 오랜만에 평화롭게 잠든 밤이었는데, 오늘은 회사업무 압박으로 인한 악몽이 있었다.

항상 쓸데없고 기억에도 안남는데 숙면만 방해하던 내용과 다르게 이번엔 꽤나 구체적인 상황 설정이었다.

수능을 봐야하는 당일날, 공부를 아예 안한 범위를 알게된 것이다. 암기과목이었던지 안보고 넘어갈 수가 없는 상황이어서 막 울면서 형광펜을 치고 손에 불나게 글을 쓰며 달달 외우는 초 압박 상황. 웃긴건 중간에 '내가 이 나이에 수능을 왜 보지..? 수능은 얼마전에 우리 팀장님 따님이 봤는데..' 하고 꿈인건 알았으나 빠져 나올 수가 없었다. 웬만한 악몽도 이러면 빠져나올 수 있는데 오랜만에 제대로 독한 놈이 걸린 것이다. 그렇게 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다가, 알람 울리기 1분 전 남편에게서 온 카톡 덕에 깰 수 있었다.


'날씨 조심해.. 장난 아니야! 둥이 옷 따뜻하게 챙겨입어.'


평소였으면 알람 전 울린 카톡이 매우 원망스러웠겠지만, 덕분에 현실세계로 돌아와 아이까지 깨울 알람도 끌 수 있어 은인과 같은 카톡이었다. 그리고 비몽사몽에 남편에게 일러바쳤다.


'밤새 계속 수능치르는 꿈 꿨어.. 악몽임.. 당일 아침에 미친듯이 벼락치기하는 꿈'


여기서 잠깐. 보통의 F 인간들은 이런 카톡을 받으면 뭐라고 할까? 그리고 어떤 답을 기대할까?

1번. '헉 괜찮아?'

2번. '힘들었겠다 ㅠㅠ'

3번. '요즘 무슨 일 있어?'

등등.. 뻔하지 않은가. 그리고 그 뻔한 답을 듣고 싶어 보내는 나는 F 인간이고 남편도 그걸 잘 안다.

그럼 그 범위 내에서 말할만도 한데 남편의 답은 항상 나의 예상범위를 벗겨나간다.


'ㅋㅋㅋ어려웠나보구만. 근데 1등급 나오는거 아냐?'


아니..; 난이도가 중요하냐고요... 1등급이 받아서 뭐할건데요....!!!

그치만 T 인간과 수없이 대화한 나는 여기서 굴하지 않고 한번 더 기회를 준다.

(사실 의외의 대답이 약간 웃기기도 하다. 어이없는 쪽으로.)


'ㅋㅋㅋ막상 시험은 안봤는데 그 직전까지 막 미치겠는거 있지 하나도 안봐서. 심지어 이게 꿈인걸 아는데도 안 깸..'


마지막 기회다. 얼른 공감하고 위로해! 그치만 지구는 둥글고 T는 T다.


'ㅋㅋㅋ아마 잘 봤을거야. 둥이가 매번 그랬듯이 ㅋㅋ'


아놔.. 내가 벼락치기에 강한건 맞는데.. 아니 그 얘기가 아니고.. 진짜 난 시험을 본 게 아닌데.. 본질은 그게 아니고.. 어디부터 설명해야될 지 모르겠어서 허무하게 대화를 마무리할 때가 많다. 보통은.

근데 오늘은 자다 깨서 그랬는지, 이제는 정말 그의 탱탱볼같은 대화방식에 적응해버린건지, 아직 콩깍지가 덜 빠진건지. 내가 전혀 기대도 안했고 듣고 싶지도 않았던 대답이 묘하게 위로가 되었다.

너는 잘해낼거야, 언제나 그렇듯.

실제로 그가 내게 자주 하는 말이다. 인간관계, 회사 업무, 자기계발, 막연한 미래 등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해결 가능하든 아니든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이미 본인의 말은 정해져 있다는 듯 항상 그렇게 말한다.

중간에 수많은 위로, 공감 등을 생략하고 바로 결론에 도달해버리는 그의 화법이 매번 황당하지만 어쩌면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원래 닮은 사람이 아니라 서로 맞춰가며 닮아가고 있다.

맛있는 걸 먹으러갔더니 그가 맛은 있는데 배가 안찬다고 하면 햄버거를 먹으러 간다(분명히 말하지만 일반인 기준으로 적지는 않다). 혼자 2개 먹으면서 그 와중에 나 한입 먹었다고 꼭 같이 먹은거라고 주장하는 것도 이젠 안웃길때도 됐는데 아직 웃기다.

같이 본 영화나 전시에 대해 나는 같이 뻐렁치고싶지만 우선 내 생각을 말하고, 남편의 생각은 나중에 준비가 되면 듣자고 생각한다. 빨리 말해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그의 스타일이니 인정하기로 한다.

그는 새로운 걸 먹을 땐 내게 먼저 한입 권해야하고 과일, 아침의 물한잔, 영양제 등은 입에 넣어주기까지 해야 먹는다는 것도 이젠 안다.

이런 나에게 남편은 어떤 점을 기대하고, 실망하고, 맞추어가고 있는지 궁금하지만 그는 항상 일기장에만, 그것도 본인만 알아볼 수 있는 필체로 글을 쓰고 물어보면 나에겐 항상 바라는 것이 없다하니 알 수가 없다.

궁금한 점을 바로 말해주지 않고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는 것도 나와는 매우 다른 점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 또한 나에게 맞춘 것임을 안다.




함께 쑥쑥 커가는 우리

우리는 함께 부모가 되었지만 실은 사회에 내놓아진지는 오래 되지 않아서 아직 자라는 중이다. 양육 이외에도 이사, 재테크, 육아, 미래계획 등 혼란스럽고 어렵고 답답하고 무서운 여러 일들을 처리해가면서.

요즘은 이런 건조한 주제들이 주 이야깃거리가 되지만, 우리 가정을 더 윤택하게 하기 위한 건설적인 목적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도 맞다. 그래도 종종 유치하고 영양가없고 단순하고 서로만을 위한 이벤트들에도 소홀하면 안되겠다는 생각도 든다.

얼마전 같이 간 글램핑에서 아이를 돌보고 고기를 굽고 접시를 세팅하는 일들을 별다른 역할부여 없이 척척 해나가는 모습에 새삼 우리 팀플이 잘 맞는다는 생각을 했다. 같이 살아가며 우리만의 룰과 합이 생기고 더욱 단단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에 둘다 상대방의 모습을 보며 배우기도 하면서 나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감사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렇듯 앞으로 함께 주고받으며 무럭무럭 커나갈 60년이 더욱 기대된다.(더이상 옆으로 크진 말자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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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날 밖에 나와서 이런걸 보는게 왜 좋은지 이해는 안되지만 사진은 잘 찍어주고싶은 동글이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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