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책이 뭐냐고 묻지 말자. 오늘의 나만이 안다.

펜팔 일기 with 딸내미 5. 책에서 인상깊은 구절 3가지와 그 이유

by 자미

며칠 전 우리 독서모임에 무려 4명의 신규회원이 들어오며 그날 모임을 어떻게 시작하고 끝맺어야할지 긴장을 많이 했어. 새로운 분들께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스몰톡을 하기 위해 계속 눈과 머리를 굴리다보니 결국 내가 제일 싫어하는 질문을 해버렸지 뭐야.

'인생책이 있으신가요?'

그놈의 인생책..!

내 취미가 독서인걸 알거나 더 깊게는 독서모임장이라는 걸 알면 무조건 나오는 질문.

있어보이는 책과 그 이유를 말하고싶지만 그러지못해서 더욱 듣고 싶지 않은 질문.

근데 사실 나도 매우 궁금한 질문. 어떤 독서 취향인지, 더 나아가 어떤 중심을 가지고 사는 사람인지 알 수 있는 대답.

편견이겠지만 꽤나 오래 그의 머리 위에 동동 떠있을 대답.
뱉자마자 후회했지만 주워담을 수 없고 결국 나도 말해야했지.
중언부언 둘러댄 감이 없지않아 있지만 나는 이렇게 말했고 앞으로도 이게 내 인생책에 대한 정의야.

나에게 인생책이란 시기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현재의 내가 듣고 싶고 마음에 와닿는 이야기가 매번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이번 주제는 인생책과도 연결되어 있을 것 같은데, 매번 읽은 책에 대해 아카이빙하지 않아 고를 수 있는 게 한정되긴했지만 그 당시 감상과 상관없이 지금 나에게 와닿는 구절들을 골랐어.
작가와 장르 모두 다르고,
8년 전부터 작년까지 독서 시기도 다르고,
책 전체를 좋아하거나 딱 그 부분만 맘에 든 것도 있지만,
묘하게 느껴지는 공통된 메세지가 있어.

그게 지금 내가 듣고싶고 필요한 이야기인 것 같아 흥미롭더라.
너는 어떻게 느끼는 지도 궁금하네. 너에게도 공감이 될 지, 아니면 내게 필요한 이야기라는 데에 공감할 지.



1. 인생의 역사(신형철)


이제 네 이야기를 너에게 할게. 그러니까 네가 태어났을 때 내가 나를 무섭게 노려보며 경고했다는 이야기. 조심하라고, 네가 나를 필요하다 느끼는 마지막날까지 나는 살아 있어야 한다고. 나는 너를 사랑하고 너는 내가 필요하다.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네가 나에 대한 네 마음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불리건 그게 내가 너에게 느끼는 감정과는 다를 것이다. 사랑은 내가 할 테니 너는 나를 사용하렴.
나는 조심할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각오할 것이다. 빗방울조차도 두려워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죽지 않을게. 죽어도 죽지 않을게.


이 부분은 책의 시작부분에 나오기 때문에 더더욱 강렬하다.
나에게 그리 친숙하지 않은 장르인 '시'에 대한 해석이지만 믿고보는 신형철평론가의 글이기에 어찌저찌 읽을 수는 있겠지, 라는 마음으로 가볍게 시작했는데 이렇게 간결하면서도 절절한 사랑문이라니. 구성도 내용도 필체도 모두가 충격적으로 가슴을 후려쳤다. 그의 글은 내공만큼이나 결코 쉽게 읽히진 않지만 읽고나면 무겁게 다가오는 그 감정이 너무도 귀한것이라 여행길에 챙겨가기 좋다. 작년 친구들과 기차여행을 가면서 챙겨갔는데, 마주앉은 친구에게 이 페이지를 보여줬을때 그의 눈에 바로 눈물이 차올랐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힝,, 찡,, 하지 않을까. 세상 풍파를 겪기에 너무도 연약한 아이를 보며 느끼는 착잡함, 안쓰러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사랑하겠다는 결연함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그에게 또다시 감탄하며, 앞으로 부모로서 쓰게 될 그의 글이 더욱 기대된다.




2.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김혜남)


버틴다고 하면 사람들은 흔히 그것이 굴욕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버틴다는 것은 그저 말없이 순종만 하는 수동적인 상태를 이야기하는게 아니다. 버틴다는 것은 내적으로 들끓어 오르는 분노나 모멸감, 부당함 등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하고, 외부에서 주어진 기대 행동에 나를 맞추면서도 나 자신을 잃지 말아야 하는 매우 역동적이면서도 힘든 과정이다. 그래서 버틴다는 것은 기다림이라 할 수 있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참아 내는 것이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오늘 부단한 노력을 하는 것이다.


책에서 뻔한 말을 만나면 지겨울 때도 있지만 이 경우엔 오히려 반가웠다. 저자는 정신과 의사면서 동시에 병을 이겨내는 중인 환자이기에 희망과 회복탄력성을 강조하는 말을 많이 하는데, 몸과 마음이 약해져있는 시기에 비슷한 혹은 더한 상황의 사람이 해주는 위로는 도움이 많이 된다. 요즘 내가 특히 힘들다 느끼고 있는 이 시기는 그저 버틴다, 끝나기만하면.. 이라는 생각들로 견디고 있음에 가까워서 임계점에 다다랐다고 느낀 순간이 잦았다.

건강했을때보다 미숙하게 대처하고나면 자괴감이 들고 그럴때 나의 처방은 더 깊게 생각해서 나를 미워하는데 힘쓰지 말고 차라리 이또한 지나갈것이라 생각하며 생각하기를 멈추는 것이다. 이정도도 괜찮은 멘탈관리라고 생각했는데 작가는 오히려 이 버티는 행위가 굉장히 능동적인 것이라고, 힘 많이 들겠다고, 잘 하고 있다고, 당당하라고 말해준다. 그래. 그때는 화났고 저때는 우울했지만 표출해서 남한테 피해주지 않으려고 꾹 참았었지. 진짜 잘했다. 으른이다. 최고다.

포도 한알을 씻기만해도 온 가족이 칭찬해주는 우리 아이처럼 나도 스스로에게 방금 참은거 너무 잘했어, 오늘 여기에 에너지 많이 썼으니 배고플만도 해. 하고 다독이며 끌어주자. 우쭈쭈한 과정이 쌓여 멋진 결과도 이끌어 올 것이다.



3. 모순(양귀자)


사랑하지 않고 스쳐 갈 수도 있었는데, 사랑일지도 모른다고 걸음을 멈춰 준 그 사람이 정녕 고맙다고.


인상깊은 구절을 넘어 내 인생에 도움이 된 문장.

이직준비할 때 합격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간절해서 면접학원도 다녔었는데, 마지막 하고싶은 말에 마침 그당시 읽고 있던 이 부분을 응용해서 말했더니 면접 선생님이 감동하셨었다. 그리고 실제 면접장에서도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말을 꺼냈더니 면접관의 표정이 바뀌었었다.
전후맥락을 몰라도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포인트가 있는 것 같다. 이 문장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 상황이 그려지기도 하고, 귀한 내 시간을 타인에게 인정받기 쉽지 않은데 기꺼이 표현해주는 것이 고맙기도 하고, 저런 생각을 하는 사람에 대해서 호감이 생기기도 하고.
비단 사랑에 한정하지 않아도 문장이 주는 힘과 마음씀씀이가 오랫동안 여운을 준다.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우이독경, 사람들은 모두 소의 귀를 가졌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8년 전의 나는 이 책을 읽고 이렇게 썼다.

'스토리와 의미도 좋지만 덤덤하고 간결하고 읽기 쉽게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재밌어서 독후감 쓰기가 쉽지 않다. 글에 누를 끼치고 싶지 않다. 모순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나의 기준이 행불행을 결정지을 것이다.'

시간이 오래 지난 터라 세부적인 내용이 잘 기억에 남진 않지만, 몇 안되게 내가 지금까지 소장중인 책이고 그 당시 저렇게 찬사를 남겼다니 신기하다. 그 이후로 나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싶기도 하고.

감명깊은 책을 사고, 독후감을 간단하게나마 쓰고, 다시 펼쳐볼 수 있는 일련의 과정이 매우 뜻깊다. 과거의 나 덕분에 오늘의 내가 한걸음 더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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