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끄덕였다. 난 애인의 아련함을 반쯤은 이해하지만, 나머지 반절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애인은 내일을 끝으로 크리스마스 연휴를 끝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나는 4일의 휴가를 쓴 덕에 아직 길고 긴 연휴의 초입에 다다라 있을 뿐이었으니까.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는 이해하지 못한다는 게 딱 그 짝이다. 애인의 시선은 노을 끝이 아니라 연휴의 끝에 가닿아 있는 듯했다. 아마, 일주일 후에는 나도 그와 비슷한 눈빛으로, 하지만 2021년을 맞이해서 조금은 더 희망차고 똘망똘망한 눈으로 노을을 바라보며 벌써 연휴가 끝났구나, 허탈해할 테지만.
마침 좋아하는 노래가 막바지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리고 읽고 있는 책도 몇 장 남지 않은 상태. 마시던 커피잔도 슬슬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왜 좋은 것에는 모두 끝이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좋은 것에 끝이 없다면 그게 과연 좋은 것일까, 고민에 빠진다. 영원히 반복되는 좋아하는 노래, 영원히 읽어야 하는 좋은 책, 영원히 마셔야 하는 맛있는 커피, 모두 그다지 좋아 보이지는 않네. 사실 이 연휴도 끝이 있기 때문에 온전히 즐길 수 있는 것일 텐데 말이다.
하지만 끝이 정말 무서운 속내를 드러낼 때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끝날 때가 아니다. 좋아하는 것이 끝날 때는 아무튼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좋아하는 것을 다시 하는 미래는 충분히, 그 후로도, 다시 그릴 수 있는 미래다. 나는 매일 컴퓨터를 켤 때마다 끝이라는 단어가 드러내는 날카로운 이빨에 주눅이 들고 마는데, 그건 바로 나의 영혼을 갈아 넣은 내 개인 작업에 관련된 이야기다.
작품이 완성될 때는, 그림이 완벽할 때가 아니라 화가가 그리기를 멈추었을 때라고 한다. '완성'이라고 부르는 그 시점도 사실은 작가주의적 시점으로는 불완전함을 시사하는 이야기다. 개인 작업을 하다 보면 문득 이건 언제 완성이 될까, 난 과연 완성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의문에 휩싸인다. 나는 그냥 이렇게 영원히 이 작품 하나만 죽을 때까지 코딩해야 하는 건 아닐까, 그런 걱정이 슬며시 고개를 드는 것이다. 영원히 그림 하나를 죽을 때까지 반복해서 수정하고 수정하고 수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듯, 나도 언젠가는 이 작업을 끝마쳐야 할 때가 올 것인데, 아무래도 나는 도저히 그런 미래를 그릴 수가 없다. 도저히 그릴 수 없는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서 오늘도 코딩을 한다니, 그 유명한, 자신의 꼬리를 문 뱀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오늘도 누군가는 게임을 완성했다고 자랑스럽게 글을 올린다. 그들은 대체 어떻게 그 '끝'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일까. 뭔가 노하우가 있는 걸까. 그냥 꾸준하게 한다고 되는 게 아닌 걸까. 그런 생각들이 천천히 나를 좌절로 끌고 들어간다.
아마도 나는 내 작품이 끝나는 것을 바라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냥, 단지,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매일 반복할 수 있다는 이 상황에 너무 도취된 나머지, 실은 이 작품을 끝마치는 것을, 내 속 깊은 곳 속내는, 단연코 거절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데에는 근거가 있다. 왜냐하면 지금도 나는 초반부만 반복 재생되는 고장 난 CD처럼 아직까지도 초반부 시나리오 스크립트에 열정을 쏟아붓고 있기 때문이다. 벌써 네 번째, 혹은 그 이상의 퇴고를 진행하고 있다.
트위터에서 누군가는 작품을 만들면서 실력이 향상되기 때문에, 완성되는 작품은 완성되는 시점의 실력의 절반분 정도의 퀄리티로밖에 뽑을 수 없다는, 꽤나 그럴듯한 논리를 펼쳤다. 아마 내가 끝을 두려워하는 이유에 가장 가까운 이유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정말 끝은 올까. 즐거움의 끝에서 먼 미래, 다시 즐거움이 찾아올 미래를 그릴 수 있듯이, 언젠가는 내 작품의 마침표를 타이핑 하면서 먼 미래, 더 멋진 새 작품을 만들 수 있는 미래를 그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