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 지방에는 눈이 잘 오지 않는 편이었다. 경주에서 나고 자라서, 대학교는 부산에 있는 곳을 갔던 나에게, 사실 눈 쌓인 풍경은 굉장히 레어 한 풍경이었고, 그렇기에 아침에 일어나서 그런 풍경을 보게 되는 상황은, 정말 가슴 떨리는 일이었다. 안타깝게도, 어른이 되어서인지, 서울에 꽤 오래 살아서인지, 이제는 마음이 담담할 뿐이지만.
눈이 오는 풍경을 생각하면, 늘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다.
그날도 나는 어김없이 디즈니 만화 동산을 보기 위해서 일찍이 눈을 떴다. 습관처럼 거실에 있는 TV 앞 소파로 나섰는데, 왠지 눈이 부셔서 한동안 발걸음을 뗄 수 없는 것이다. 밤새 눈이 내려서, 아파트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모든 풍경을 가득 채운 탓이었다. 눈이 자체적으로 새하얗게 빛을 발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눈송이가 내 눈 앞을 스쳐 지나가며 바닥으로 내려앉았고, 나는 그제야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동생은 베란다 창에 딱 붙어서 입김으로 한껏 투명한 걸 불투명하게 만들면서 바깥을 바라보고 있다가, 나를 돌아본다.
"눈이다!"
하고 비명 질렀던 것 같기도 하고. 엄마는 웃었던 것 같기도 하고. 우리는 몸을 단단히 싸매고, 스키 장갑을 찾아 끼며 밖으로 나섰다. 사실 장갑 같은 건 끼고 싶지 않았지만, 엄마는 장갑을 끼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엄포를 놓았더랬다. 지금 생각하면 놀랍다. 어떻게 장갑도 없이 그 희고 차고 차갑고 시린 것을 만질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걸까. 그냥 지금보다 생각이 없었던 걸지도 모르고.
아파트 주차장에는 우리 같은 아이들이 몇몇 나와서 발자국을 남기고 있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었기 때문일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진 않았다.
눈을 가지고 가장 먼저 하게 되는 건 의당 눈싸움이지만, 눈을 뭉쳐서 던지고 맞추고 하는 건 몇 차례만 하면 금세 질렸다. 동생과 나는 눈사람을 만들기 시작했다. 영화에서나 볼 듯한 커다랗고 이쁘고, 당근 코와 단추 눈을 가진 어여쁜 눈사람을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첫걸음이라고 볼 수 있는, 눈덩이 두 개를 만드는 것부터가 사실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장갑을 끼고는 아무리 해도 작은 덩어리도 잘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곧 장갑을 벗어던지고 손바닥이 빨갛게 될 때까지 눈덩이를 불리고 불렸다. 세상사가 그렇듯이, 어느 순간을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손쉬워진다. '눈덩이 불어나듯'이라는 표현이 괜히 있는 건 아닌 것이다.
그 시절의 나에게도 어려운 일인데, 네 살 터울의 어린 동생에게는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시무룩한 동생에게 나는 어느 정도 불어난 눈덩이를 양보한다. 그리고 다른 눈덩이를 또 만들기 시작한다. 동생은 금세 다시 신이 나서 내가 만든 눈덩이를 굴리고 굴리고 굴렸다. 영화에서는 그냥 굴리는 것만으로도 완전한 구 형태의 눈덩이를 잘도 만들던데, 우리 것은 우스꽝스럽게 타원 형태로만 커졌다. 타원 형태도 조금 완곡한 표현일 수 있었다. 원통형에 가까웠다고나 할까. 이내 형태의 이상을 깨닫고 방향을 바꿔서 굴려보았지만, 올곧은 구 형태는 잘 만들어지지 않았다. 동생의 것은 더욱 심각했다. 굴리다가 조금 깨지고, 그 깨진 눈덩이가 다른 데 붙어서 점점 더 우스꽝스러운 형태가 되어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만든 구 아닌 덩어리 두 개. 둘의 크기는 거의 비슷했다. 영화에서 보던 눈사람은 위에 것이 훨씬 작았는데. 우리는 서로 욕심껏, 경쟁하듯 크기를 키워왔기 때문이었다. 그다음 문제는, 어느 것을 위로 올릴 것이냐. 귀찮았던 건지, 동생의 애달픈 눈빛을 거절할 수 없었기 때문인지, 아무튼 내가 만든 걸 머리로 하기로 결정한다. 원래 산 넘어 산, 문제 넘어 문제이듯, 이번에는 이걸 어떻게 올리느냐가 관건. 우리는 끙차 끙차 힘을 모아서 올려보지만, 반대쪽으로 그대로 넘어가서 바닥에 곤두박질친다.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점은, 이제 머리 부분은 정말 머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작아졌다는 사실뿐. 나는 곧 울음이 날 것 같은 심정을 겨우 추스르고, 깨진 덩어리 하나를 어떻게 그러모아 대충 동그랗게 만든다. 작아진 건 좀 더 수월히 몸통 위에 올릴 수 있었다. 어찌 저찌 그렇게 눈사람을 완성한다.
영화에서 나올 법한 새하얗고 동그란 눈사람은 아니었다. 흙더미가 여기저기 섞여서 지저분한 데다가, 꾸미기 용도로 사용한 재료 또한 나뭇가지 뿐이라서 눈코입, 팔이 모두 갈색 실선으로 이루어진, 뒷통수가 굉장히 납작하고 그래서 너무나 엉성한 눈사람이었다. 조금 아쉬웠지만, 그래도 많이 즐거웠고, 그래서 우리는 빨개진 코와 손을 한 채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뭐, 그런 장면이다. 왜일까, 겨울이 되면 간간히 이런 소소한 것들이 떠오르고, 그에 따라 아련한 마음이 들곤 한다. 그 시절의 엄마 아빠는 젊었고, 나와 동생은 순진무구하게 어렸다. 눈사람 하나 생각대로 만들지 못하면서 세상을 참 단순하고 쉽게 여길 수 있었다. 내 맘대로,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비록 그게 진실은 아닐지언정.
얼마 전에도 눈이 왔었다. 아마 길고양이들이 잔뜩 발자국을 찍어놓았을 그 눈 쌓인 거리를, 나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이불속에 들어간 채로 오들 오들 떨면서 이따금 밖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함성 소리를 듣고만 있었다. 그 시절의 나라면 과연 내가 이런 어른이 되고 말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번해에 또 눈이 온다면, 이번에는 그 시절처럼 동생과 눈사람을 만들어 봤으면 좋겠다. 동생이 청승맞게 무슨 짓이냐며 싫다고 난리를 칠 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