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1커밋 #8
지인의 반려동물이 결국 눈을 감았다는 소식을 접했다. 얼마 전, 지인이 씁쓸한 미소로밖에 보이지 않는 'ㅋ'을 덧붙이며 자신의 반려동물이 '암'에 걸렸다고 이야기했었기 때문에 크게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지인이 오래간만에 올리는 인스타그램 글이었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스마트폰 알림을 눌러 들어갔다가 갑작스럽게 맞이한 소식이었기 때문에 조금은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
그 지인과는 서로 간에, 마음만 먹는다면 사사로운 한담을 나눌 수 있을 정도, 그 정도의 친밀함이 있다. 그렇다고 자주 연락을 나눈다거나, 서로의 소소한 일상을 공유한다거나 하는 정도는 아닌, 애매한 거리감이 있는 친밀함. 아마 서로 죽고 못 사는 사이였다면, 내가 인스타그램으로 지인의 반려동물 사망 소식을 접했을 리도 없었겠지. 그래도 개인적으로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밖으로 나가서 기분 전환도 쉽게 할 수 없는 분위기에, 방 안에 박혀서 가만히 혼자 우울함에 잠식당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난 왠지 견딜 수 없는 심정이 되고 만다.
지인이 반려동물의 암 투병 소식을 다소 씁쓸하게 이야기할 때, 나는 나름대로 공감의 분위기를 이끌어내고자 본가의 강아지 이야기를 꺼냈었다. 벌써 13살 정도일까, 아빠의 손에 들려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노견이라 할 수 있는 나이가 된 우리 강아지는 이제 본가의 풍경과 배경음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서, 이질감이 드는 무언가가 그 배경에 침투할라치면 어김없이 배경음을 컹컹 왈와르르왈왈 내지르고, 난 거기에 편안함을 느낀다. 아무튼 겉으로 보기에는 왕성해 보여도 노견은 노견. 나는 간혹 그 아이가 배경에서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우리 엄마는 그 상황을 정상적으로 잘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그런 걱정을 하곤 했다.
그렇기 때문에 지인이 처한 사정이 그저 남일로 보이지가 않는다. 나는 반려동물의 흔적을 쓸쓸하게 정리하는 지인의 모습을 상상하다가도, 그 순간 소파 한구석에서 강아지의 하얀 털 뭉치를 발견하고 오열하는 엄마의 모습을 자꾸만 겹쳐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이럴 때, 돈은 편리했다. 적당한 거리 밖에서 축하, 애도, 그 어떤 감정이든 손쉽게 전달할 수 있다. 서로 간, 전혀 타협되지 않은 거리까지 들어가서 위로의 손길을 건네는 것은 서로에게 불경하고 소름 끼치는 일이니까. 그렇다고 적당한 거리 밖에서 위로의 말을 속삭이듯 건네는 것은 공허할 뿐이다. 아마 그 공허한 톡의 옆에 붙어있는 1은 한참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마 곧 그런 가벼운 손놀림에 대한 후회로 몸서리치겠지. 그렇기에 나는 그 하찮은 톡 대신,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의미 있고 재치 있어 보이는 선물을 골라서 보냈다. 돈도 편리하지만, 디지털화도 참 편리하다. 손만 까딱하면 된다니.
다행히 지인은 좋아해 주었다. 여전히 'ㅋ'에서 쓸쓸함이 느껴졌지만, 그건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물수건 하나 얹어 준다고 열이 씻은 듯이 내리진 않으니 말이다.
얼마 전에는 친구의 생일이었다. 저녁 9시가 넘어서야 친구의 생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는데, 그것도 다른 친구의 톡, '오늘 ㅇㅇ이 생일인데, 내 생일 선물 확인도 안 하네'가 없었다면 자칫 놓치고 말았을 것이다. 꽤 오래 사귄 친구들이고, 옛날처럼 눈물 나게 적은 돈을 쪼개서 살아가는 것도 아니니까, 서로 간의 우정의 징표라도 되는 것처럼 나는 이번에도 '선물하기' 버튼을 눌렀다. 친구는 가격에 비해 과분할 만큼 고마워했다.
'단단한 삶'이라는 책에서 저자는 화폐가 '신뢰 없이 교환을 가능하게 한다'라고 했다. 화폐가 신뢰 관계의 필요성을 삭제하고, 그래서 점점 더 물질적 가치로만 환산되는 관계를 맺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한 말이었는데, 당시에는 짐짓 고개를 끄덕였다가도 그럼에도 가끔은 이렇게 화폐의 득을 보게 된다. 화폐가 단지 신뢰 없음의 증표만은 아닌 셈이다. 세상사 뭐든 진리 하나로만 설명할 수는 없는 법이다.
이처럼, 나도 사실 돈으로 모든 관계를 적절히 처리할 수 있을 것처럼 묘사했지만, 실은 돈만으로 관계를 만족시킬 수 없을 때도 존재한다.
예컨대, 애인이 정말 깊은 슬픔에 잠겼을 때라던가. 아마 난 맛있는 밥을 사줄 수는 있을지언정, 그것만으로 애인의 슬픔을 온전히 품어주진 못할 것이다. 아무리 비싼 가방, 옷으로도 그 슬픔을 단단히 묶고 있는 족쇄를 풀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아마 가만히 애인을 안고 토닥여줄 것이다. 애인의 울음 섞인 이야기를 들어줄 것이다. 지갑은 뒷주머니에 찔러 넣고, 함께 눈물 흘려줄 것이다. 돈은 정말 편리하지만, 정말 편리하기에 정말 가까운 사람에게는 함부로 들이밀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그럼에도 돈은 편리하다는 것.
21. 12.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