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아이에겐 선물을 안 주신대

1일 1커밋 #5

by 김디트

아직 코로나는 전 세계를 마치 제집인양 눌러앉아서 나갈 생각도 하지 않는데, 어느새 크리스마스가 되고 말았다. 산타 할아버지, 제발 코로나 좀 데리고 가 주세요, 하고 싹싹 빌어 보지만, 내 상상 속의 산타 할아버지는,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는 놈이 할아버지라고 한다며 지팡이로 내 머리를 한 대 갈긴다. 그리고 이어서 게다가 넌 오늘 울었으니까, 선물은 줄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한다. 그제야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오늘 내가 울지만 않았어도 코로나는 종식될 수 있었는데. 전 세계 사람들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크리스마스니까, 애인과 점심을 먹기로 한다. 그리고 코로나니까, 곧장 집으로 가서 애인이 요새 한창 빠진 버블보블을 하기로 한다. 심플한 계획이었기 때문에 버블보블에 나오는 공룡처럼 거품을 물고 반대할 필요도 없다. 나는 긍정했다.


명동은 한산했다. 그야 그럴 것이, 나라도 코로나라는 위험 요소를 안고 밖을 나서는데 굳이 명동 거리를 찾을 것 같진 않았다. 명동에서 굳이 꼽을만한 긍정적인 요소는 길거리 음식, 그리고 쇼핑할 가게가 많다는 점, 백화점이 인근이라는 점, 걸어서 을지로를 갈 수 있다는 점 정도인데, 길거리 음식은 코로나 2.5단계에 씨가 말랐고, 쇼핑을 할 생각이면 서울 근교의 아웃렛, 스타필드 등 더 나은 선택지가 얼마든지 있다. 을지로를 걸어서 갈 수 있다, 음, 이 점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느낌이다.


아무튼 인근에 살면 가깝다는 것도 장점이 된다. 우리는 명동에서 대충 끼니를 때운다. 그리고 배도 꺼뜨릴 겸 거리를 조금 활보한다. 그러다, 나는 아침에 봤던 정보를 떠올리고 만다.


"닥터 마틴 공홈에서 할인하던데, 매장도 할인하지 않을까?"


애인은 눈을 반짝이며 발을 동동 구른다. 애인의 발을 곱게 싸고 있는 닥터 마틴 1460 8홀 모노가 바닥을 동동 굴린다. 7년째 사귀다 보면 싫어도 취향 따위는 곧잘 꿰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애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넘어가고 싶다. 내 애인은 취향이 매우 확고한 사람이다. 너무나 확고해서 가성비에 매달리는 나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대담한 결정을 쉽게 쉽게 내리곤 한다. 사실 내 가성비의 허들이 낮아진 이유도 애인의 덕분이 크다. 쫌생이에서 좀생이 정도로 조금 성장했다고 볼 수 있다. 일례를 들자면, 오늘 애인은 나에게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보조 영양제 사야 하는데 올리브영 갈래?"


나는 화들짝 놀랬다. 내 인생에서 보조 영양제의 구매처는 인터넷, 그중에서도 웬만하면 아이허브뿐이었기 때문이다. 그 외의 구매처들은 전부 다 사기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이하일 수도 있다. 즉, 컴공과 앞에서 컴퓨터 맞추러 용산 갈 거라고 하는 거나 매 한 가지다. 나는 쫌생이는 아니지만 좀생이기 때문에 극구 말렸고, 겨우 애인의 마음을 돌릴 수 있었다.


애인은 이런 결단력을 갖춘 사람이다. 자신의 취향과 니즈에 꼭 맞는 것은 어떤 가격이든 지불할 용의가 있는, 그런 용기가 있는 사람.


아무튼 나는 그만 크리스마스에 눈이 멀어서, 그리고 전부터 닥터 마틴 매장에 가기만 하면 신발을 만지작거리기만 하는 애인의 모습이 왠지 너무 마음에 걸려서, 오늘 선물 하나 사주겠다고 큰소리를 치고 만다. 그전에 조금 예상했어야 했는데. 애인의 그런 용기와 결단력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결과적으로 애인은 할인과는 동떨어진 제품을, 착용과 동시에 이것으로 결정했다고 마치 포켓몬스터 지우가 캐터피를 몬스터 볼 안에 집어넣고 나서 신나서 '넌 내 거야' 라도 하듯이 눈을 반짝였고, 나는 할부도 안 되는 일시불 25만 원을 그 자리에서 결제하게 된다. 할인도 없고, 할부도 안된다. 내 인생에서 이런 물건을 결제하게 될 줄이야. 애인이 좋아하는 모습에 마음이 훈훈하면서도 이상하게 가슴 한편이 아려온다. 그리고 왠지 눈물 한 방울이 찔끔 흐르고야 마는 것이다.


이게 바로 내가 오늘 코로나를 종식시키지 못한 이유다.


그래도, 애인이 없었다면 이런 소비를 평생 한 번도 해보지 못했을 것 아닌가. 남이 되어본다는 건, 남의 소비 패턴도 한 번 따라 본다는 것과 같다. 왠지 답답했던 가슴이, 앞서 나가며 닥터 마틴 가방을 흔들며 길거리에서 율동 같은 춤을 추며 신나 하는 애인을 보며 사르르 녹았다.


그래도, 미안, 전 세계 사람들. 나는 애인의 이 모습을 보느라 코로나 종식의 기회를 한 번 날렸어.


21.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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