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받는다고 프로일까

1일 1커밋 #4

by 김디트

이제 정말 연말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남아 있는 휴가들을 벅벅 긁어모아 만든 4일치 휴가를 단번에 사용했기 때문에, 올해의 업무는 이걸로 끝이었고, 그래서 오늘 퇴근길은 참 발걸음이 가벼웠다. 실은 재택근무를 했으니까, 퇴근'길'도 아닐 뿐더러 '발'걸음이 가벼웠던 것도 아니었지만.


연말과 새해는 왠지 한 번에 찾아오는 느낌이다. 나는 1월 1일이 다가올수록 정동진으로 훌쩍 떠나고 싶은 충동을 부쩍 자주 느끼는데, 아마 내가 지나간 시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래서 회고하는 것을 즐기는 것과 연관이 없진 않을 것이다. 정동진에서 떠오르는 새해를 보면서, 흘러내리는 코를 쓱 훔치면서 찬 바람에 손을 호호 불면서 할 만한 생각이야 사실 뻔하다. 새해에는 잘 살아봐야지 하는 뻔한 다짐들. 사실 내가 좋아하는 건 그 뻔한 새해를 맞이하는 일이 아니라 새해가 떠오르기 전까지의 적막하고 차가운, 길고 긴 새벽이다. 예전, 훌쩍 내일로를 끊어서 정동진으로 향했을 때, 역 안의 난로 주변으로 사람인지 패딩인지 모를 덩어리에 섞여서 가만히 손을 녹이던 때를 생각하면 일순 두근거린다. 그런 회고, 그런 자아 성찰. 그런 시간을 가지고 싶어 지는 것이다.


그렇게 과거를 정리하다 보면 가장 먼저 맞닥뜨리게 되는 것은 단연코 나이. 며칠 전에는 운동 후 스트레칭을 하던 중에 왠지 허리가 많이 뭉쳐서 으그그그- 소리를 내고 말았는데, 그래서 동생의 비웃음을 샀다.


"늙어서 그렇다."


나는 반박하는 대신


"응, 서른 살 어서 오고."


했고, 동생은 아직 만 나이로는 서른이 아니라는, 틀에 박힌 반박을 했더랬다. 아무튼 동생도 나도 그런 나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왠지 조금 서글픈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나이로는 그냥 조금 서글프고 마는 정도지만, 그 생각이 연차에 다다르면 아무래도 짐짓 심각해진다. 벌써 꽤 오래 이 업계에서 일을 했구나. 그런 실감이 듦과 동시에, 처음 이 업계에 들어왔을 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교차 비교하게 되게 마련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자아비판의 시간으로 돌입한다. 난 대체 어떤 점이 성장한 걸까. 성장하긴 한 걸까. 이러고도 난 프로라고 할 수 있을까.


난 일이 막히고 영 손이 가지 않을 때마다 트위터에 가곤 한다. 트위터에는 정말 재능 넘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프로와 준프로가 제각기 자기주장 강한 트윗들을 날리고, 그 모든 걸 한 화면에 보는 나는 그저 감탄을 금치 못한다. 이건 좋아요, 이건 리트윗. 이건 정말 완벽하잖아. 그렇게 감탄하는 사이에 내 마음은 조급해진다. 내가 트윗을 한다면 이 사이에 낄 수나 있을까. 내 토이 프로젝트를 가만히 떠올렸다가 고개를 젓고 만다. 당차게 내 작품을 올릴 용기도, 자신감도, 심지어 가진 걸 잘 다듬어 트윗할 마음가짐도 없었다.


학습을 잘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 글에는 여러 학습법들이 나열되어 있었지만, 단연코 눈에 띈 학습법은 바로 이것, 남을 가르쳐보라. 남을 가르쳐보면 내가 뭘 모르는지 더 확실히 알 수 있게 된다. 뭐 그런 글이었다. 나는 나름대로 시뮬레이션을 시작한다. 자, 만약 내가 언리얼 엔진에 대해 가르쳐 준다고 치면, 뭐 그런 식으로 차근차근,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한 단계 한 단계 가상의 학생을 가르쳐 본다. 음, 사실 가르쳐 본다는 말에도 어폐가 있다. 상상 속의 나는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인사를 하고 내 이름과 이력을 소개한 후, 그대로, 곧바로, 강의실 바깥으로 줄행랑을 쳐버린다.


역시 날 프로라고 소개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앞서 말한 대로 연말인지라 더 심각하고 진지하고 깊고 어둡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던 와중, 이런 글을 만나게 된다. '익숙한 새벽 세시'라는 책에 수록된 '교토, 배움'이라는 글이다.


이 책의 저자 오지은 님은 사실 작가보다는 인디 음악가로 더 유명세를 떨친 분이다. 이 책도 사실 그런 이유로 산 책이기도 하고. 좋아하는 작품과 작가가 있다면, 그 외에 다른 건 어떨라나, 조금 스토커 같은 마음이 들게 되는 것이다. 아무튼, 이런 사족을 붙인 이유는 '교토, 배움'이라는 글의 소개에 앞서 작가의 배경을 한번 언급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은 님은 이 글에서 담담하게 다음과 같은 충격적인 사실을 언급하고 시작한다. 자신은 기타를 잘 못 친다고. 그래서 교토에 온 김에 그 기타 실력 향상을 위해 배움의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다고. 나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다음과 같은 의심을 하기에 이른다. 기타를 잘 못 친다는 건 아마 겸양이 섞인 말이 아닐까. 하지만 이내, 벌써 게임 프로그래머 6년 차인 내가 '저 코딩 잘 못해요'라고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라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게 되는 것이다.


지은 님은 자신보다 한 살 어린 '코타니 선생님'에게 교습을 받기 시작한다. 어떤 부분은 굉장히 대담하고 어떤 부분은 굉장히 형편없는 이상한 기타라는 평을 들으면서 말이다. 그러다가 자신이 프로라는 사실을 들킨 후, 지은 님은 이렇게 말한다.


'엉망인 프로보다 의외로 잘하는 초보처럼 보이고 싶었다.'


나는 그만 이 문장에 격하게 공감하고 만다. 이 감정이 지극히 보편적인 감정이라는 사실에 조금 안심하게 된 이유로.


그리고 격한 공감을 참지 못하고 몸을 일으켜 내 CD장을 뒤진다. 그게 어디 있더라, 검지로 CD 재킷을 몇 줄이나 쓸어 넘기다가 겨우 찾은 '오지은 3집'을 끄집어낸다. 내 CD 플레이어에 집어넣고, 지은 님의 '서울살이는'을 플레이한다. 그렇게, 보편적인 감정을 만끽한다.


21.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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