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쇄하고 미세하게 글쓰기
1일 1커밋 #111
벌써 여기 글을 올리기 시작한 지도 반년이 흘렀다. 기간으로 치면 와 소리가 나올 정도로 했는데, 사실 숨만 쉬고 글만 적어온 건 아니었기 때문에 실질적인 시간으로 계산하면 그다지 길지 않을 것이다. 일주일에 네 시간을 잡아도 한 달에 16시간. 여섯 달을 해봐야 96시간 남짓 정도였다. 전체 기간에 대고 보면 하찮을 정도로 짧은 시간이구나. 괜히 민망한 정도의 분량이다.
고작 96시간으로 바뀌면 뭐가 얼마나 바뀌겠나 싶지만, 놀랍게도 무언가 바뀌긴 바뀌었다. 미세해서 신경 써 찾아보지 않으면 찾지 못할 정도로 변화했다. 인간의 세포도 변화한다. 심지어 몇 년의 주기로 모든 세포가 새로운 세포로 갈아치워진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옛날의 나와 현재의 나는 물질적으로는 전혀 동일인물이 아니라는 글을 본 적이 있었다. 아마 나의 변화는 그 죽은 세포와 그를 대체한 새로운 세포 사이에서 일어난 변이 정도의 차이였다. 어느 부분은 노쇄했고, 어느 부분은 능숙해졌다. 그래도 96시간을 투자했으니 능숙해진 부분이 노쇄한 부분보단 크지 않을까 생각 하려 노력했다. 그 정도로 미세하고 노쇄했다.
사실 나의 이 변화는 필연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무엇이든 새로운 경험은 내가 살던 세계를 완전히 뒤흔들어 놓곤 했으니까. 삶을 글로 이토록 본격적으로 옮겨 적은 경험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었다. 독후감 같은 걸 의무적으로 적어왔긴 했지만, 그 글의 중심은 책이었지, 내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독서 후에 지워지는 관성, 의무에 가까웠기에 글을 쓰는 것보단 노동에 더 가까운 행동이었다. 겨우 숨 쉬는 정도의 노력으로 발전을 바라기란 힘든 일이다. 그런 이유로 내 글은 참 꾸준히도 너저분했다. 내 독후감 목록은 마치 물건을 정리하지 못하는 사람이 몇 달간 사용한 방, 그런 방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는 여인숙 같았다. 그러면서도 채 정리하지 않은 그 방에다 마치 5성급 호텔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인테리어를 주문하고 배치했다. 제대로 된 방이 될 리 없었다. 그 제대로 되지 않은 방이 바로 내 글이었다. 하지만 막상 내 삶을 중심에 놓으니 마냥 글을 그리 방치할 수 없었다. 아무리 정리를 못하는 사람이라도 본격적으로 치장해 내보일 쇼룸까지 더럽힐 수는 없었던 것이다. 비록 아무런 노하우가 없어서 난삽해 보일지언정 그래도 기본적인 정리는 하려 노력했다. 고민을 하고 배치를 바꾸고 불필요한 것을 커다란 쓰레기봉투에 욱여넣는 방법을 배워나갔다.
얼마 전에도 변화를 체감한 일이 있었다. 난 글에 대해 오랜 시간 고정관념에 잡혀 살았다. 어릴 때, 친구들과 시시덕거리며 판타지 소설 초입 부만 도돌이표로 반복해 써나가면서 만들어진 고정관념이었다. 이를테면, 문체를 과도하게 신격화했다. 내 문체는 어떻네, 쟤 문체는 어떻네, 모든 글을 문체가 만들어내는 뉘앙스로만 판단했다. 그 관성이 아직 조금 남아있었다는 걸 얼마 전에 깨달았다. 마치 오래 사용한 책상 서랍을 뒤지다가 발견한 묵은 편지를 발견한 심정이었다. 그래, 그땐 그랬지. 그런데 이런 게 아직까지도 남아있었네. 그런 투로 생경하게 그 감정을 다뤄냈다. 그 아련함을 지나고 나니 반년 동안 내 글 속에서 어떤 점이 변화했는지 조금 더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글을 쓴다는 건 그런 단적인 행위가 아니었다. 머릿속의 것을 억지로 캐내어 나열하는 노동도 아니었고, 간단한 뉘앙스 몇 개로 설명할 수 있는 문체로 대표할 수도 없었다. 글쓰기는 마치 일상이 매일매일 반복되는 것처럼 보여도 막상 일기장에 그를 옮기기 시작하면 세세한 부분들이 모두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처럼 복합적인 일이었다. 그래, 굳이 대표를 내세워야 한다면 경험. 우리가 겪은, 그리고 겪을, 다시는 겪지 말아야 할, 반드시 겪었으면 하는 그 수많은 경험들이 글쓰기였고, 글쓰기여야 했다.
노쇄하고 미세한 세포 역시 글쓰기였다는 생각을 하고 나니, 앞으로도 더 써나갈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