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인생 답안지 훔쳐보기
1일 1커밋 #110
주말 간, 두 차례의 집들이가 약속되어 있었다. 집들이란 게 그렇게 흔한 일이었나. 어떤 이에겐 그럴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나에겐 아니었다. 무척 내향적이면서도 굉장히 외향적인 척 하는 인생을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생기는 모양이다. 하지만 내향적인 것이 본모습인 나에겐 둘 모두를 처리할 기력이 없었다. 결국 나중에 잡힌 집들이는 쳐내는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번주, 애인이 무척이나 바빴기에 둘 모두를 갔다간 애인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고 이번주를 지나가게 생겼던 터였다. 애인과의 시간을 희생할 정도는 아니었다. 결국 일요일의 집들이만 가기로 했다.
사실 집들이 같은 것에 초대받는 게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아웃사이더였던 난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집들이엔 그냥 맨손으로 가도 되는 걸까? 이런 걱정을 그분의 집에 가는 중에도 이어하고 있었으니 속으로 망했구나 싶었다. 체념하고 가서 필요한 걸 물어본 후 후일 선물해줘야겠다 같은 생각을 하던 차에 같이 초대를 받은 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고, 나는 눈물 나게 반가웠다. 그렇다고 해서 결론이 바뀌는 건 아니었지만. 우리는 필요한 게 있다고 하면 십시일반 돈을 모아 그걸 사주자며 결의 비슷한 모의를 하며 마음을 달랬다.
집은 정말 깔끔하고 예뻤다. 내가 과연 닿을 수 있을까 싶은 집이었다. 금전적으로도 그렇지만, 라이프스타일적으로도 그랬다. 그 미니멀리즘적이고 모던한 집안의 풍경은 그렇게 비현실적이었다. 집주인은 고기와 파스타와 콘치즈 같은 걸 일상처럼 구워냈다. 실제로 주말의 일상인 것 같았다. 정리할 게 많아서 정신이 없다고 한 집주인의 입을 통해 이 모든 깔끔하고 예쁘고 미니멀리즘적이고 모던한 것의 가치가 파편으로나마 흘러나왔다. 나는 더욱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방금 전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기대어 있던 식탁의 가격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을 땐 나뿐 아니라 함께 초대받은 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흠칫하는 게 느껴졌다. 그나마 인테리어에 조금 조예가 있는 이와 막 신혼을 시작한 이 둘만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 정도 퀄리티라면 그 정도 가격은 할 거라는 둥 했을 뿐이었다. 나는 땀을 삐질 흘리면서 혹시 흠집이라도 내지 않았나 테이블을 살펴야 했다.
그렇게 집주인이 살아갈 집의 단면을 구경하고 대접받다 보니 하루가 훌쩍 지나고 말았다. 타인의 삶을 겨우 하루 투자해서 빌려볼 수 있다면 수지맞는 타산이 아닐까 같은 덧없는 생각을 하면서 비가 쏟아지는 명동길을 걸어 올라갔다. 빗물에 빌렸던 삶을 흘려보내며 집에 도착하고 나니 문득 현실로 돌아왔다. 조금 허탈했고, 많이 안달 났다. 왠지 뒤처진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항상 그랬다. 내가 가지지 못한 걸 가진 남의 면모를 맞닥뜨리고 나면 안달이 슬며시 고개를 치켜들곤 했다. 왠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기분. 공허한 느낌. 비록 진실이 아닐지라도 그 안달은 진실로 진실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역시 진실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내 마음을 추슬렀다. 왜냐하면 삶은, 비록 프레임에 맞춰 사는 것이 훨씬 안정적이고 깔끔하고 예쁘고 미니멀리즘적이고 모던하게 보일지는 몰라도, 결코 정답이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비록 비혼으로 산데도, 딩크족으로 산데도, 비록 좀 맥시멀리즘적인 라이프스타일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 역시 삶이었다. 나만의 정답일지도 모르는 그런 삶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