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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일생을 바쳐 실수를 줄여온 세상

1일 1커밋 #109

by 김디트

슬랙이 띠링 울렸다. 클라이언트 단체 방에 팀장님이 채팅을 올린 것이었다.


팀장님의 말은 의미심장했다.


"저녁 시간에 게임 소리로 너무 시끄럽다는 기획팀의 컴플레인이 있었습니다."


기획팀은 지금 크런치 중이었다. 게임하는 소리가 유쾌하게만 들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팀장님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특히 ㅇㅇ우 님.' 하며 어느 누가 봐도 날 특정할 수 있는 말을 덧붙였다. 딱히 비난의 투가 아닌, 친한 이들끼리의 농담과 같은 말이었기 때문에 나는 키읔만 몇 개 연달아 입력해 답장했다. 좀 너무 무신경하긴 했구나. 그런 반성도 하고, 그래도 '너무 시끄럽다'고만 했으니, 조용히 게임을 하면 되겠지, 뭐 그런 궁리도 조금 했다. 아니 실은 꽤 많이 했다. 결국 우리가 늘 게임을 하던 탁 트인 클라이언트 팀 중앙을 벗어나 아무도 쓰지 않는 '게임방' 명목의 공간으로 우르르 몰려갔으니 조금 궁리했다고 말하긴 민망하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의 불편을 감안하는 건 참 면밀한 일이다. 조금만 무신경하면 스스럼없이 남의 불편한 지점을 침범할 수밖에 없었다. 개개인이 모두 그 불편의 지점이 다를 것이 분명한데, 그 지점들을 다 파악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아마 오늘도 난 몇 차례나 누군가를 불편하게 했을 것이다. 당장 아까 전,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면서도 실수로 앞사람의 가방을 두 번 연달아 쳤다. 마음속으로 죄송! 하고 연신 외쳤지만 앞사람이 고개를 돌려 눈을 부라리거나 하진 않았기에 표현할 길이 없었다. 그런 뻔히 보이는 잘못만 해도 몇 가지나 되는데 내가 자각하지 못한 것까지 포함하면 대체 얼마나 많을까.


모든 사람들의 불편을 챙길 수 없다. 그러니 그냥 포기하자. 이런 면책성 발언을 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그걸 포기했더라면 아마 오늘 저녁 내가 팀원 분들과 함께 게임 장소를 옮겼던 것과 같은 노력을 굳이 쏟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의 불편을 챙길 수는 없더라도 챙기기 위해 면밀하고 섬세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게 바로 타인과의 소통의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모든 사람들이 타인의 불편과 고통을, 비록 본인의 실제적인 경험과 바로 연결시킬 순 없더라도 그럼에도 이해하고 챙기려고 노력한다면 세상의 많은 갈등들이 눈 녹듯 사라지지 않을까. 예컨대 여성들이 남성 권력에 납작 엎드려 있었던 것을, 장애인이 불필요하고 차별적인 배려로 되려 역차별을 받는 것을, 타국의 어린이들이 학습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노동의 현장으로 떠밀려 가는 것을, 단지 이해 보려고만 해도 크고 작은 다툼들, 결국 그게 모여들어 큰 갈등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책을 읽다가 또 한 가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나의 무신경함을 발견했다.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절대 발견하지 못했을지도 모를 종류의 것이었다. 책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아직도 많은 사람은 과거가 좋았다면서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만, 언니로부터 힘을 얻은 많은 이들은 다시는 그 과거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버티고 있어."


난 정말 크게 충격받았다. 자주 언급했듯 나는 과거를 복기하고 되새기는 걸 즐거워하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복고풍이 유행하는 걸 두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과거를 그리워하기에 그럴 것이라 지레짐작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건 대다수의 의견일 뿐이었다. 만약 대다수의 의견만을 따랐다면 우리는 정말 세상을 바꿀 수 있었을까. 대다수의 반대펀에 있는 사람들은 '그 과거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말 그대로 발버둥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나는 부끄러웠다. 대다수에 포함되어 유유자적히 과거를 즐길 수 있는 것도 축복받은 일이었다. 그 축복이 무척이나 부끄러웠다.


이렇게 사소한 것도 남의 불편을 침범하는 법이다. 그러니 내가 겪은 세계만으로 타인의 삶을 판단하지 않고 좀 더 면밀하고 세심하게 타인의 불편을 감안해야 한다. 비록 앞사람의 가방을 치듯 실수할 때도 있겠지만, 그런 실수를 매일매일 줄여나가야 한다.


그런 실수들을 누군가가 일생동안 줄여온 세상이다. 빚을 지고 살고 있으니, 나도 내 반경 안에서나마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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