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 잘 하는 재능과 구매욕

1일 1커밋 #120

by 김디트

재능이라는 것과는 제법 먼 삶을 살아왔다. 무난 무난에 가까웠을까. 이따금 무난 무난보다 낮을 때도 있었고, 무난을 조금 상회할 때면 의외라는 시선을 받기도 했다. 그렇지만 무난. 평균을 내고 보면 결국 평균의 평균에 방점을 찍는 그런 삶을 살아왔다. 그래서 이따금 특출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삶이 어떤 삶인지 궁금하다. 바로 인접한 곳에서 그런 특출난 재능들을 직관한 적은 몇 번 있었다. 대표적으로 중학교 시절 친하게 지냈던 친구는 밤새 온라인 게임을 하면서 놀기만 하는 것 같은데도 시험 성적이 늘 상위권이었다. 그건 아마 재능이었다. 반짝반짝 빛나서 주위 사람들을 깜짝 놀래키는 게 재능이라고 한다면 그건 분명히 재능이었다. 돌이켜보면 그 친구의 재능은 '공부를 잘 하는 것'이 아니라 '놀랄만큼 잘 빠져드는 것'이었다. 친구는 온라인 게임도, 공부도, 심지어 그림까지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에 깊고도 심하게 몰두했고, 아마 그 덕분에 우리와는 궤를 달리하는 실력을 갖게 되었던 것일테다. 적당히 즐길 줄 아는 무난 무난의 나, 그리고 나의 친구들은 그 친구의 그 빛나는 몰입을 도저히 해석해낼 수 없었다. 그래서 '천재다.' 혹은 '타고난 머리는 따라갈 수가 없다'는 쉽고 간단한 방식으로 풀어 이해하려 했다. 실은 해석할 수 없는 게 당연했다. 그 나잇대의 이해와 능력으로는 당연한 일이었다. 만약 그 어린 시절, 그 친구의 재능을 해석할 수 있었다면, 아마 그것 역시 재능이었을 것이다.


무난 무난 평균의 나, 아무리 적당한 사람이라지만 그 수많은 평균의 능력치들 중에서도 그나마 재능에 가까운 것은 있다. 자를 대고 펜으로 쭉 그은 선도 확대하고 확대하면 잉크의 번진 정도에 따라 오돌토돌한 질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 오돌토돌 질감 중 유독 솟아 있는 것. 조금 민망한 능력이지만, 나의 경우에는 '후회하기'가 바로 그 능력이다. 후회하는 것도 능력일까. 사람에 따라 이견이 있을 의견임을 나도 안다. 더군다나 후회하는 능력이 결여된 사람도 있을까. 그것도 논의한다면 꽤 재미있는 토론이 될 것이라는 것 또한 잘 안다. 하지만 나의 능력들 중 고저를 매기는 것은 사실 표준편차와 대조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남들이 모두 남다른 후회하기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나의 능력 중 후회하기 라는 능력이 꽤 높은 순위에 랭크되어 있다는 점이 바뀌진 않는다.


아마 유독 후회하는 능력이 높은 이유는 나의 과거에 대한 집착과 꽤 깊은 상관관계가 있을 것이다. 과거를 복기하는 것, 추억하는 것은 높은 확률로 후회하는 것으로 이어지곤 하니까. 이를테면 대학교 시절을 돌이켜 보면. 지금 막 떠오르는 건 친구들과 함께 과제를 했던 것. 재밌었던가, 힘들었던가. 아마 둘 다였던 것 같다. 동아리 방에서 밤을 새면서 과제 마지막 날을 불태웠었다. 친구 하나와는 아이패드로 간단한 미니 게임을 하면서 웃고 떠들었다. 아니 잠깐, 분명 방금 전까지는 과제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아이패드로 미니 게임을 하는 기억으로 점프해 버렸다. 난 정말 집중력이 낮았었구나. 나는. 뭐 이런 식으로. 과거를 떠올리면서 은은히 미소를 짓다가도 갑작스럽게 과거의 나에 실망하곤 하는 것이다. 빠르게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기쁨과 후회 사이를 넘나든다.


이런 저런 생각을, 후회를 점멸적으로 하는 게 일상이지만, 그러다 보면 이따금 유독 하루를 온전히 점유할 정도로 큰 후회가 몰려오기도 한다. 오늘의 후회가 그런 종류였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도메인 정도는 이제 구매해도 되지 않을까? 도메인이 생각보다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니고. 일년에 만원 안팎이면 충분했던 것 같은데. 밥 한 번 사먹는 금액으로 일년의 편안함을 살 수 있다면 대체 왜 안 사는 거지.


난 개인 스토리지와 기타 개인 용도로 서버를 돌리면서도 꽤 오랫동안 쌩 ip로 서버에 접근해가며 사용하고 있었다. 매일같이 일일이 집 ip 주소를 브라우저 검색창에 입력하는 노고를 마다하지 않다 보니 난 어느덧 집 ip를 외울 수 있게 되었다. 도메인을 구매하는 걸 고려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사실 이는 나 혼자만 쓰는 서버니까 지극히 개인적인 피로감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피로감이라면 무시해도 되는 것일까. 게다가 언젠가 이사라도 하게 된다면 ip로 셋팅되어 있는 그 수많은 어플들의 설정을 다시 돌보아야 할 것인데, 그 거대한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닌게 아니라, 나의 서버는 조금 조금씩 몸집을 불려서 이제는 꽤 여러가지 일을 해내고 있는 중이었다. 아마 도메인을 사용한다면 손봐야 할 후속조치의 부담감이 확 줄어들 수도, 그래서 더더더욱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귀찮을 것이 분명했다. 예상하지 못한 문제에도 봉착할테지. 나는 서버에 대해서는 문외한에 가까웠다. 대충의 뉘앙스만을 가지고 구글링이라는 작대기에 의존해서 바닥을 짚으며 길을 걸어가야 하는 시각장애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음을 먹었다. 단단히 먹었다.


그리고 두 시간 남짓, 서버와 인터넷과 에러 사이를 헤엄쳤다. 몇 번의 문제에 봉착했다가 뚫었다가 또 봉착하는 걸 반복하다가 결국 기어코 성공했다. 나의 개인 서버들을 용도별로 서브 도메인으로 쭉 줄세울 수 있었다. 나는 그 도메인들이 잘 동작하는 게 왠지 너무 뿌듯해서 몇 차례나 이 주소, 저 주소를 왔다갔다 하며 시간을 축냈다.


그러고 나니 문득 이상했다. 어라, 이건 후회가 아니라 구매욕이 발단이 되어서 하게 된 거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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