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간 노쇠해지고 건강해진 신체에 대해
1일 1커밋 #121
오늘 왠지 열심히 운동을 하다 보니, 그리고 애인의 아픔을 인근에서 접하다 보니 문득 몸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어 졌다. 왠지 이렇게 불쑥 말을 꺼내고 보니 왠지 좀 그렇다. 말하고픈 바가 불명확한 것 같기도 하다. 뭐, 생각해보면 그도 당연하다. 몸이라고 자연스럽게 퉁쳐서 이야기하고는 있지만, 실은 몸은 굉장히 복합적인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말이다. 우선 머리, 몸통, 팔, 다리, 굵직한 구조들이 합쳐져 있는 건 당연지사의 일이고, 미시적인 관점에서는 수많은 세포들이 군집해서 피와 근육과 피부조직 같은 걸 이루고 있다. 이 어떻게 보면 크고 큰 군집을 뭉뚱그려서 한 방에 글 속에, 그것도 이 짧디 짧은 글 속에 축약하자니 막연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몸은 비유하자면 세포의 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 텐데, 사회학을 A4 한 면 정도로 줄이겠다는 말과 다를 바 없는 셈이다.
얼핏 들은 이야기인데,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세포가 자가 복구를 하면 할수록, 세포의 자가 복구에 서서히, 조금씩, 오차가 쌓여간다고 한다. 그 오차가 바로 나이 듦이라는 것이다. 프로그래머의 방식으로 말하자면 메모리 릭이 발생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끊임없이 메모리를 잡아먹다가 결국 메모리를 넘어서면 프로그램은 에러를 발생시키며 다운되고 말 것이다. 그게 바로 죽음이겠지. 서서히 메모리를 좀먹는 버그. 그런 걸 이미 내포하고 있는 인간이 버그가 없는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는 것은 아마도 언어도단일 것이다.
즉,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신체는 노쇄해진다. 아마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마냥 그걸 진리로 받들긴 힘들었다. 어느 지점은 왠지 께름칙했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나의 몸은 과연 10년 전의 나의 몸보다 노쇄하기만 한 것인가. 당장 그렇다고 말하기 힘들다. 왜냐면 10년 전의 나는 운동의 세계 같은 건 나와는 전혀 관련이 없고, 아마 평생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지극히 나약한 정신과 육체를 가진 오타쿠(혹은 그 경계에 있는 사람)였다. 건강했느냐면 고개를 갸웃하겠지만, 병환에 시달리지 않았냐면 그렇다고 할 수 있을, 딱 평균적인 20대 중반의 신체였다. 물론 지금도 그리 뛰어난 몸이라고 말하긴 힘들지만, 적어도 그 시절보다는 정성을 기울인 몸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 정도로는 가꾸어 왔다. 그렇다면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 둘 중 더 건강한 신체는 어떤 신체일까.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결국 극단적으로 좋고 나쁨을 가를 수 없는 것일 테다. 나의, 당신의, 모두의 신체가 세포들의 사회인 이상 어느 부분은 좋고 어느 부분은 나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나의 어떤 지점은 굉장히 좋아졌지만, 또 다른 어느 지점은 굉장히 나빠졌다. 특히 나빠진 부분은 경추. 아마 평생을 앉아서 공부하고 일하고 책 읽고 코딩하고 해온 대미지가 서서히 축적된 것이니, 마냥 억울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 억울했다. 똑같이 평생을 앉아서 생활해온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도 나의 경추는 특히 나약했기 때문이다. 최근 나는 한참이나 만성적인 두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두통이 끊임없이 뇌 언저리를 찌릿찌릿 찔러서 툭하면 무기력한 상태로 나를 몰고 가곤 했다. 애인은 그런 나의 두통, 그리고 거북목을 모두 유심히 지켜보다가 목이 거북이처럼 쭉 빠질 때마다 턱을 당기라고 왕왕 소리치곤 했다. 애인의 장난스러운 충고를 몇 번이나 방치하다가 얼마 전, 문득 그 충고가 진지하게 들려서 턱 당기는 것에 조금 힘을 쏟아 보았는데, 놀랍게도 그 방법은 굉장히 유효했다. 두통의 낌새가 하루 이틀 만에 스르륵 사그라들었다. 나는 매우 놀랐고, 조금 서글펐다.
그런 놀랍고 서글픈 지점이 아마 몇 군데나 더 있을 것이다. 그런 곳들을 조금 더 진심으로, 조금 더 확고하게 잘 살펴야 할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슬아 님이 본인의 수필집에서 이렇게 적었기 때문이다.
그는 검지와 중지 손가락을 피며 말했다.
브이 해보세요.
나는 그를 따라 브이 모양으로 손가락을 만들어보았다. 우리는 잠깐 서로를 향해 브이를 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다시 말했다.
이번에는 위장을 움직여 보세요.
네? 어떻게요?
못 움직이시겠죠? 아니면 지금 당장 땀을 흘려보세요.
나는 가만히 있었다. 땀은 한 방울도 나지 않았다.
선생님이 말했다.
의지의 문제가 아니에요. 자율신경계는 마음먹는다고 컨트롤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죠.
어릴 적의 나는 나이를 먹어서 달리지 못하겠다는, 또는 나이를 먹어서 허리를 아프다는, 나이를 먹어서 힘들다는 어른들의 말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다. 내 몸인데 대체 왜 힘들지? 내 몸인데 왜 아픈 곳이 생기도록 방치하는 거지? 그런 생각을 했었더랬다. 위장을 움직이고 땀을 흘릴 줄 아는 것처럼 그런 자만심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자만심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나는 나이를 먹어서 달리지 못하겠고, 허리가 아프고, 힘이 들었다. 아마 날이 갈수록 그런 나날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아파하고 있을 애인이 문득 떠올랐고, 조금 더 슬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