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눅해진 친구와 함께

1일 1커밋 #122

by 김디트

"너무 더워서 뭘 할 기력이 없다."


친구는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보이기도 했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구의 찜통더위는 굉장히 유명하니까. 나는 친구의 기력을 쏙 빼간 대구의 온도도 재미있었지만, 이렇게나 멀리 떨어져 있는데 이렇게 손쉽게 친구를 눈으로 볼 수 있고, 말을 건넬 수 있다는 점도 굉장히 재미있었다. 친구와 나는 영상 통화 중이었다.


갑자기 웬 영상통화. 이것의 발단에 대해 설명하자면 일주일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저번 주의 일이다. 오랜 친구와 오랜만에 연락이 닿았다. 이 오래된 친구와는 일 년에 몇 번 연락할까 말까 한 사이가 된 지 오래된 사이였다. 왜 오래된 것들은 필연적으로 소홀하게 대하게 될까. 물건도 그렇고, 취미도 그렇고, 오래된 것들은 깊은 타성에 젖어서 눅눅해진 것들로 가득했다. 이따금 너무 빛나는 새로운 것들에 밀려 구석으로 밀려나는 일이 수시로 발생하니, 그 음지 속에서는 어쩔 수 없이 눅눅해질 수 밖에. 하지만 그런 눅눅한 것들 일지라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계기가 하나라도 생긴다면 다시 서서히 빛을 내는 법이다. 저번 주의 일이 딱 그것이었다.


오래된 친구와의 대화는 늘 마치 각본이라도 있는 것처럼 비슷하게 흘러간다. 친구는 투덜거리고, 나는 딴죽을 건다. 아마 이 세상의 모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어떤 공식들을 세워나가야 한다면 이 친구와 나 사이의 공식이 가장 먼저 공리로써 성립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확고한 것이었다. 저번 주에도 역시 별반 다를 바 없는 흐름이었다. 그야, 공리였으니까. 친구는 어김없이 투덜거리고,


"요새 너무 게을러서 걱정된다."


나는 어김없이 딴죽을 걸었다.


"그래도 해야지."


친구는 웹툰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그의 꿈과 가장 맞닿아 있는 일을 돌아 돌아서 준비하게 된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마음속으로나마 응원하고 있었다. 음, 그게 응원 일지, 타박 일지 정확한 스탠스를 잡지 못하겠다는 것이 흠이었지만, 아무튼 본질적으로는 응원에 가까운 것이었다. 친구의 응원을 행동으로나마 보이기 위해서 나도 오랜만에 그림 연습을 시작하기도 했고 말이다. 친구와 함께 매일매일 차곡차곡 그림 한 장씩을 쌓아나가고 있었다. 아무튼 시작한 일이니까 나도 조금은 발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였다. 사실 직장인의 노력은 상당히 비루하기 짝이 없는 것이라서 하루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을 들여 그림 유튜브를 보고 그림을 그리는 정도였지만 말이다.


그래서 가끔 유튜브를 틀어 그림 강좌 같은 것들을 뒤적이게 되었다. 유튜브는 기계보다 정밀하고 사람보다 인간미 있게 알고리즘을 다듬었는데, 그래서 나의 유튜브 메인 화면은 어느새 그림 그리는 영상으로 가득 차고 말았다. 그만큼 양질의 것들을 잘 선별할 수 있게 되었으니 불평할 일은 아니지만, 어쩐지 조금 무서웠다고나 할까. 아무튼 그중 정말 마음이 단단하고 그만큼 기본기가 탄탄한 유명 일러레의 동영상들에 마음이 꽂혔고, 그분의 여러 상담 영상들을 보면서 친구를 생각했다. 그분이 상담하는 많은 사람들의 본질적인 고민들은 모두 친구에게도 속하는 것들이었다. 나는 마치 내가 고민을 하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불안에 떨면서 영상들을 정주행 해나갔다.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나의 타박은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나는 지속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다 과하게 TMI를 던지는 경향이 있었다. 친구는 조금 지친 기색이었다. 나는 아차, 싶은 마음이 들었다. 사실 말로만 하는 것은 허무할 따름이다. 마치 수많은 어른들의 그 껍데기뿐인 노력 타령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진실성을 어필하기 위해서 이렇게 말을 이었다.


"화상통화하면서 자기 계발 하자. 매일 한 시간만."


친구는 나의 타박에 질렸기 때문일까, 그러자며 얼른 대답했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지금도 영상 통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친구는 자신의 고양이가 야옹야옹 우는 것을 핑계로 들먹이며 '고양이가 하지 말라고 한다'라고 웃음기 섞어서 농담을 던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눈으로 볼 수 있고, 말을 건넬 수 있다는 점, 그 실시간의 효능은 굉장해서 친구는 이미 태블릿 앞에 앉아서 펜을 굴리고 있었다. 그 찜통 같은 더위와 고양이의 채근을 손쉽게 털어내면서 말이다. 그리고 나 역시 그 시청각적 자극을 고스란히 돌려받아서 이렇게 키보드 위에 손을 얹을 수 있었다.


게다가 오래간만에 친구와 얼굴을 보며 수다를 떠는 것은 톡을 주고받는 것과는 역시 그 경험적 차이가 어마어마했다. 나는 친구의 고양이 농담에 껄껄 웃으며 웃음처럼 키보드를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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