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었다

1일 1커밋 #123

by 김디트

더운 나날이, 아마 평생 이어진다고 해도 믿을 정도의 기세로 하루하루 들이닥치고 있었다. 저번 주부터 다음 주엔 열 돔이 형성돼서 30도를 웃돈다는 경고성 뉴스가 마치 물속으로 밀어 넣고 밀어 넣어도 다시 떠오르는 고무 오리 인형처럼 쉼 없이 떠올랐다. 이미 겪고 있는 그때의 더위를 상회하는 걸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지경이었음에도 뉴스는 그칠 줄을 몰랐다. 바깥 날씨는 저번 주부터 이미 사우나와 경쟁할 정도의 온도, 수영장을 방불케 하는 습도를 고루 갖추고 우리를 괴롭혀왔다. 애인은 마치 수영장에 빠진 것 같지 않냐며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나는 땀을 흘리는 데 온 힘을 쏟아붓고 있었으므로 애인의 말에 첨언을 할 여력조차 없었다. 그런데 그걸 넘어서는 더위라니. 우리는 두려움에 떨면서 이번 주를 맞이했다.


나는 집 안으로 대피했다. 좋은 핑곗거리도 있었다. 확진자가 1500명을 돌파했다는 뉴스가 열 돔 뉴스와 교대로 앞다퉈 달려 나와 메인을 차지하곤 했었으니까. 나는 저번 주에 이어 이번 주도 재택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집에만 있으면 비록 비타민 합성은 조금 덜 될지언정, 바깥의 햇살이 얼마나 뜨거운지 같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선풍기나 에어컨 같은 든든한 동지들이 뒤를 받쳐준다면 바깥의 더위 같은 건 전혀 아랑곳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우리 집은 지하에 있었기 때문에 햇살이 강하든 약하든 결코 뚫고 들어올 틈이 없다. 마치 바늘 같은 햇살 앞에서는 집이 지하라는 점도 제법 도움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웠다. 후끈한 건 둘째치고 조금만 방심을 풀면 습기가 연기처럼 스멀스멀 피어나서 집 안을 가득 메웠다. 나는 제습기를 켰다 껐다 하면서 집 상태를 뽀송함과 눅눅함의 경계선을 마치 고무줄놀이 하듯 치밀하고 팽팽하게 조절했다. 막 방학을 한 애인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아서, 끊임없이 에어컨을 틀어서 집 안 온도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한계까지 끌어내리는 중이었다. 나와 달리 애인은 더위에 정말 취약했다. 아마 애인이 느끼는 그 고통을 나는 평생 느끼지 못할 것이다. 나는 가장 좋아하는 계절 란이 있으면 언제나 여름을 적어왔을 정도로 여름 마니아였으니까. 이는 아마 여름이라는 계절에 쌓이는 추억이 가장 많아서 그런 탓이 클 것이다. 난 정말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추억 마니아 구만. 이 미친 듯한 찜통더위를 견디는 와중에도 그렇다니 혀가 절로 차질 수밖에 없다.


여름이었다. 요 최근 애인과 나 사이에서 유행하는 끝맺음 말이었다. 조금 불친절했으니 따옴표를 붙여서 다시 적어야겠다. '여름이었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어느 유머글에서 나오는 말이다. 그러니까, 어느 말이든 '여름이었다'를 붙이면 그럴듯한 문장이 된다는 누군가의 트윗이 그 발단이다. 애인과 난 그 트윗을 보고는 서로 깔깔 웃으면서 온갖 문장에 '여름이었다'를 붙여대기 시작했다. '야근을 했다. 여름이었다.', '결명자차를 마셨다. 여름이었다.' 별별 여름들이 다 튀어나왔고, 그때마다 우리는 깔깔 웃었다. 그리고 그 후로도 애인은 가끔씩 얼토당토않은 상황에 '여름이었다'를 붙이곤 했다. 이 그럴듯해지는 '여름이었다'의 뉘앙스는 아마 내가 여름이라는 계절을 좋아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일 것이다. 그래서 그럴까, 나는 가끔 애인이 말미에 붙이는 이 '여름이었다'는 말이 좋았다. 어이없어서 재미있기도 재미있고.


아무튼 정말 여름이었다. 매미가 맴맴 울고 아이들이 뛰어놀고 뜨뜻미지근한 여름 바다가 찰랑거리는 그런 여름이 아니라 비록 더위로 감금되어서 끊임없이 컴퓨터만 만지작거리고 있는 그런 여름이었지만, 애인의 경우엔 잠깐 김밥을 사러 가는 와중에도 힘이 들어서 눈물을 쏙 빼고야 마는 그런 혹독한 더위의 여름이었지만 그래도 정말 여름이었다. 어쩔 수 없이 조금 설레면서도 어쩔 수 없이 조금씩 올라가는 확진자 수를 걱정스럽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그런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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