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동안 이만큼 변했는데

1일 1커밋 #124

by 김디트

문득 애인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8주년 때도 사귀고 있을까?"


갑작스럽게 진지함을 물씬 풍겼다. 잠깐 우수에 젖고 만 것일까. 웬만하면 '사귀고 있겠지!' 하는 둥 애인의 진지함에 어울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상스럽게도 그게 쉽사리 되지가 않았다. 아마 방금 전까지 하던 대화의 우스갯기운이 남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거나한 7주년 식사 후 애인이 매우 당연하다는 듯이 '8주년에도 맛있는 걸 먹자'라고 이야기했던 게 곧바로 떠올랐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 저런 이유로 난 애인이 우리의 8주년을 의심하고 있다는 그 사실 자체를 의심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참내. 8주년 전에 헤어질 거라고는 전혀 상상도 안 하고 있으면서."


애인은 꺄르륵 웃었다. 비록 통신망과 텍스트와 스마트폰이라는 벽이 있었지만 그걸 뚫고 튀어나온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유쾌한 웃음이었다. 아마 일순 진지한, 하지만 알맹이 없는 감상을 내뱉은 것이 민망해서 그렇지 않을까 싶었고, 실제로도 그래 보였다. 애인은 곧바로 장난스러운 투로 나의 방금 말을 추궁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의 대화의 흐름은 물줄기가 자연스럽게 왼쪽 오른쪽 방향을 바꾸듯이 자연스럽게 다른 곳으로 흘러갔다.


애인과 나 사이의 오랜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다뤄왔지만, 늘 나는 과거에 대해 이야기해왔다. 지나온 기나긴 길. 길면 길수록 많은 일들이 있었을 것이고,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일도 많을 것이다. 그러니 필연적으로 지나온 길을 되짚는 것이 재미있을 수밖에. 하지만 미래라니. 8주년이라니. 그 후로 애인과 더 만들어갈 다른 이야기들이라니. 이상한 일이었다. 표본이 쌓이는 만큼 예측이 쉬워져야 하는 것 아니었나? 그렇지만 아마도 그건 변화할 여지가 무척 적거나 아예 없는 것들에 대해서만 그런 모양이었다. 우리는, 나는, 요 7년간, 아니 34년간 수없이 변화했고, 그런 이유로 내가 쌓아온 과거들은 내 미래 예측이라는 장르에서는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10년 전의 나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다면 아마 나는 그 유치함과 속좁음, 오만함 같은 것들을 견디지 못하고 당장 이야기를 끊고 자리를 박차고 나올 것이다. 10년 전의 내 관심사 중 많은 것들이 이제는 무감각해졌고, 일부는 소름 끼치게 싫어진 것도 있을 테니까,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오기 전에 이미 이야기는 끊어져서 정적만 감돌 지도 모를 일이지만.


미래를 상상하는 일은 아마도 재미있는 일일 것이다. 당장 나는 가까운, 하지만 제법 멀지도 모르는 그런 미래에 애인과 함께 동거를 하는 상상을 하면서 그와 나 사이에 있을 유쾌함을 상상하는 것이 좋고 즐겁다. 애인은 주로 유쾌함보다는 불쾌함, 다툼, 어긋남 같은 것을 상상하는 모양이지만. 그리고 옛날을 생각해봐도 미래를 상상하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었다. 미래의 내가 어떤 게임을 만들고 있을지 나는 끊임없이 상상해 왔었으니까. 더더욱 옛날로 돌아가면, 그 코흘리개 꼬맹이 나는 미술 시간만 되면 동그란 반원으로 감싸진 해저 도시, 가챠 캡슐처럼 생긴 우주 도시 같은 걸 그리곤 했다. 비록 상상의 디테일에 함몰되어서 건물과 그 사이의 길, 산책하는 사람들과 강아지 같은 것을 좁쌀만 하게 그리느라 시간을 다 보내서 완전히 완성했던 적은 드물었지만.


그런데 그렇게 즐거운 일을, 왜 나는 단편적으로만 해왔을까. 애인과의 동거 정도만 상상해왔을 뿐, 애인과의 8주년, 9주년 같은 가깝고 진지한 미래는 별로 상상하려 들지 않았다. 아마도 지금과 별반 다를 바 없지 않을까 싶은 마음 때문일까. 1년 정도가 지난다고 지금과 뭐 얼마나 바뀌었겠어. 하는 심드렁한 마음 때문일까. 하지만 애인과의 7주년. 그 사이를 통과하면서 변화한 나의 모습을 돌이켜보면 앞으로의 1년이 그저 심드렁한 일뿐일 리는 없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것이다.


결국 그래서 나는 괜히 조금 불안해지고 마는 것이다.


'우리가 8주년 때도 사귀고 있을까?'


의 무게에 순간 휘청거리고야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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